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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운야학(閑雲野鶴)
leed2017

 

桐千年老 恒藏曲 / 梅一生寒 不賣香

오동나무는 천년을 살아도 곡조를 간직하고

매화는 추위 속에서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젊었을 때 나관중이 쓴 ‘삼국지연의’에서 다음과 같은 대목을 읽던 생각이 난다. 유비의 군사(君師) 제갈공명이 수적으로는 유비 쪽의 몇 배가 넘는 조조의 정예부대와 맞부딪혀 일전을 벌일 판이었다. 워낙 숫적으로는 우세하고 훈련이 잘된 조조의 대군이 제갈공명의 성을 무자비하게 짓밟을 참이었다.

 이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위기상황에 처한 공명은 한가지 꾀를 냈다. 병사들은 모두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겨둔 그는 성문을 활짝 열어 제치고 자기는 성루에 올라 앉아 한가로이 거문고를 타고 있었다. 이 예상 밖의 돌출행동을 ‘준비된 자의 여유’로 본 조조군은 반드시 무슨 계략이 숨어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여 공격을 미루고 머뭇거리다가 퇴각해 버렸다. 이래서 공명의 성도 무사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것이 공명의 허실법(虛實法)인가, 왜 그는 그 급박한 상황에 하필이면 거문고를 탔을까? 내 생각으로는 음악이란 여유나 한가로움과 통하기 때문에 거문고를 탄다는 것은 조조의 대군에게는 ‘준비된 여유’로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다.

 음악은 우리에게 너그러움과 한가로움을 일깨워주는 불쏘시개가 될 수 있다는 인간심성에 대한 통찰 없이는, 그리고 이 예상 밖의 돌출행동이 적군을 호릴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 없이는, 우리 같은 보통사람은 꿈도 못꿀 실로 기발한 책략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소리를 내는 오래된 오동나무로 만든 거문고를 하나 가지고 싶어 하지 않는 가인(歌人)이나 선비가 있을까? 조선 선비의 방에 거문고가 놓여있는 풍경은 요사이 집집마다 벽에 그림이나 사진이 걸려있는 것과 별다름 없는 풍경이었다.

 서신혜가 노래하는 사람들이 비범한 삶에 대해서 쓴 ‘열정’이란 책을 보면 조선중기의 성리학자 김일손 이야기가 나온다. 김일손은 좋은 거문고가 갖고 싶어 오랜 시간동안 이곳저곳을 헤매다가 어느날 동화문 밖에 사는 한 노파의 부서진 문짝을 보니 오래된 오동나무였기에 그것을 사서 거문고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또한 후한 때 처음이라는 사람은 밥을 지으려고 불을 지피는데 나무 타는 소리를 듣고 그것이 오동나무인 줄 알고 타다 남은 오동나무를 얻어다가 거문고를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서신혜를 따르면 이것이 초미금(焦尾琴)의 고사다.

매화이야기로 말 머리를 돌려보자.

 

망호당 뜰 안에 한 그루 매화꽃

몇 번이나 봄을 찾아 말을 달려 왔던가

천리길 가는 길에 그대 저버리기 어려워

문 열고 벗 불러 옥산이 무너지듯 취하리

(望湖堂裏一株梅 … 敲門更作玉山頹)

 

 위는 퇴계(退溪) 이황의 ‘망호당에서 매화를 보며(望湖堂尋梅)’이다. 단군 이래 가장 큰 학자로 불리는 퇴계는 성리학자이자 평생 동안 2,000수가 넘는 시를 쓴 시인이었다. 그는 매화를 지극히 사랑하여 매화에 관해서만도 100수가 넘는 시를 남겼는데 모두 그의 문집에 실려 있다.

 매화가 어찌 퇴계만의 사랑이었겠는가. 남명(南冥) 조식에서 시작하여 위당(威堂) 정인보에 이르기까지 조선 땅에서 자기 자신을 선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에서 군자 상으로서의 매화를 예찬하는 시를 한 수도 써보지 않은 선비가 있을까?

 매화의 덕은 은은하고 깊은 꽃향기에 있다고들 한다. 그러나 나는 매화꽃에 아무리 코를 들이대고 킁킁거려 봐도 장미나 찔레꽃, 라일락 같은 꽃보다 더 나은 것은 없는 것 같다. 내 코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매화가 특석을 차지한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내 생각으로는 중국 어느 대문호가 처음으로 매화향기를 극찬하는 시를 쓴 뒤로 후대 시인, 묵객들이 너도 나도 다투어 매화의 향기를 예찬하였기에 매화, 매화를 입에 올리게 되었지 싶다. 조선의 선비들은 도연명이나 두보, 소동파 같은 중국의 대문호들이 쓴 시구나 산문에 나오는 표현은 무조건 그대로 따라서 쓰는 버릇이 있었기 때문이다.

 매화에 대한 예찬도 똑같은 과정을 거쳐서 형성되었지 싶다. 봄날, 들에 외로이 서있는 찔레꽃 넝쿨에서 나오는 향기를 마셔보라. 가냘프고 은은한 향기가 결코 매화에 뒤지지 않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을 건데-.

 오래된 오동나무로 만든 거문고에서 나오는 맑은 소리도 좋고 매화꽃의 은은하고 깊은 향기도 좋다. 그러나 나는 이 둘을 관통하는 메시지(message)가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는 더 절실한 덕목으로 다가온다. 즉 그것은 오래된 오동에서 나오는 청아한 소리, 추위를 이겨낸 매화가 풍기는 꿋꿋한 정조(貞操)와 고고한 절의(節義)를 본받으란 말이다. (2019.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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