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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의 장(場)
leed2017

 

 내가 대학교 4학년 때 박정희 소장이 쿠데타를 일으켜 당시 집권당이던 장면정부를 무력으로 해산시켰다. 기억은 희미해져가지만 그때 ‘사상계’에서 장준하의 “이제 무엇을 말하랴”의 여덟 글자가 전부인 사설을 인상깊게 읽었던 생각이 난다. 이 사설을 읽은 후 58년의 세월이 흐른 2019년 이른 봄, 캐나다 토론토에서 이 말이 나도 모르게 내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경우를 당했다. 그 자초지종을 얘기한다.

 지금도 캐나다에 이런 ‘놀이’를 하고 있는 학교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한 30년 전 어느 봄날, 온타리오 런던 시내 어느 초등학교에 들렀다가 그 학교 운동장에서 우연히 다음과 같은 장면을 본 일이 있다. 즉 학생들이 짝을 지어 한 학생을 두 눈을 가려 앞을 못보는 ‘맹인’이 되고 남은 학생은 그 맹인의 길잡이가 되어 학교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는 놀이장면이었다. 그 다음에는 역할을 서로 바꾸어 길잡이가 맹인이 되고 맹인은 길잡이가 되는 그런 놀이.

 지도교사의 말로는 서로의 신뢰를 기르기 위한 게임이라는 것. 눈을 가린 맹인이 한발짝이라도 옮겨놓기 위해서는 길잡이에게 자기 자신을 통째로 맡겨야 하는 것. 이렇게 하자면 상대방을 완전히 믿고 신뢰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원리라 한다. 맹인-길잡이 역할을 서로 바꿔봄으로써 서로가 믿고 신뢰하는 마음을 체험본다는 것이다.

 신뢰란 무엇인가? 신뢰란 서로 믿고 의지하는 것이다. 의심하지 않고 꼭 그렇다고 여기는 것이 믿음이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말은 철석같이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배신을 당하여 해를 입었을 때를 말한다. A가 B를 신뢰할 수 있을 때는 B가 A를 항상 지지해주고 우호적이며, 정적(正的) 강화를 제공한다고 예언할 수 있을 때에 생기는 마음상태를 말한다. 이렇게 보면 믿음은 사랑의 전조(前兆)가 된다.

 믿음이란 개인 간의 일, 즉 너와 나에 한정된 것만은 아니다. 너와 나를 에워싼 사회조직이나 단체 등 어떤 명사에도 갖다 붙일 수 있는 말이다. 우리가 가게에서 물건을 살 때 계산기를 두드리는 점원을 믿기 때문에 물건 값을 옳게 찍었는지 꼼꼼히 살펴보질 않고 가게 문을 나온다. 회계사를 믿기 때문에 해마다 내는 세금보고를 그에게 위임한다. 그러니 내 주위의 조직이나 단체, 기관과 접촉한 것이 믿음을 확인하는 과정, 곧 사회생활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나 이외의 다른 사람이나 사회조직을 전혀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남 얘기는 그만두고 나 자신도 그럴 때가 생각 외로 많다는 것을 고백한다.

 이렇게 남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왜 그럴까? 확실히는 모른다는 말이 제일 정직한 대답인 것 같다. 에릭슨(Erikson)이라는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을 이어받은 사람의 말로는 사람이 태어나서 신생아일 때 그를 일차적으로 보살피던 사람이 얼마나 규칙적으로, 감정이나 분위기가 친근하고 포근하게 돌봐주느냐에 따라 이 신생아가 평생 동안 지니게 될 세상에 대한 믿음의 기초가 결정된다고 한다.

 예로, 신생아를 돌보는 사람이 규칙적으로, 따스한 분위기 속에서 돌본다면 이 아이는 “이 세상은 예측할 수 있는 세상, 살맛나는 세상이구나” 하는 믿음을 갖게 되지만, 그 반대로 돌보는 이가 불규칙하게 이랬다 저랬다 차가운 분위기 속에서 신생아를  돌본다면 “이 놈의 세상, 믿을 게 못되는구나”는 불신의 버릇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럴듯하게 들리는 말이다.

 그러나 유아기 때 겪은 경험이 평생동안 지닐 성격을 결정한다는 주장에는 많은 심리학자들이 고개를 가로젓는다. 성격이란 태어나면서부터 유아기-아동기-청년기를 거치면서 겪는 대인관계의 질(質) 여부로 차차 형성되는 것이지 에릭슨의 주장처럼 영아기 짧은 시절의 경험이 평생 성격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지난 이른 봄, 토론토 한인회장 선거 때 나는 우리 교민들이 서로를 얼마나 믿지 못하느냐를 보여주는 불신의 현장(現場)을 내 눈으로 보았다. 이야기는 이렇다. 한인회장 선거날, 투표를 하러 갔더니 투표를 하자면 투표하는 사람의 주소와 사진이  붙은 증명서 2개를 내놔야 한다는 것이다. 사진에 붙은 증명서 하나도 아닌 2개를 내놓으란 말이다. 이걸 보면 교민들이 같은 동포라 해도 못믿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517년 조선왕조는 양반계급과 벼슬아치들이 백성들의 피를 빨아먹고 살았지 백성들을 살게끔 도와준 왕조는 아니라고 본다. 고을의 수령 3년만 살면 평생 먹고 살 재산을 모을 수 있다는 세상. 백성들의 재물을 약탈하지 않고서야 어찌 이것이 가능한 일인가.

 양반계급과 벼슬아치들에게는 풀뿌리 백성은 착취의 대상이었지 그들을 돌보면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이런 풍토에서 몇 백년을 살아온 백성들이 어찌 남과 사회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겠는가. 그것은 마치 보호자에게서 따뜻한 대접 한번 받아보질 못하고 의심증 많은 어른으로 자란 에릭슨의 신생아와 같다.

 오늘도 교회에서는 믿음, 소망, 사랑을 찬미하는 노래소리가 이른 봄 하늘로 울려 퍼지고 대자대비를 설법하는 스님의 목소리는 법당을 울린다. 그러나 투표장을 나서서 집으로 돌아오는 나에게는 모든 것이 허망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절반이 넘는 토론토 한인교민들이 종교를 가졌다는 한인사회, 위에서 내리누르는 그 어떤 압력이나 학정이라고는 없는 사회, 우리끼리 오순도순 살아보자는 이 조그마한 사회가 이 꼴이다.

 지금부터 58년 전, ‘사상계’에서 장준하 선생이 피곤한 펜을 들어 쓴 사설이 생각난다. ‘이제 무엇을 말하랴.” (201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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