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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
leed2017

 

 풀이나 나무에 상처가 나면 즙(汁)이나 진(津)이 나온다. 민들레나 봄, 여름이면 쌈을 싸먹는 쑥갓이나 상추를 따면 하얀색의 이눌린이, 소나무나 복숭아를 자르면 터펜스라는 물질이 들어있는 진을 낸다. 사람도 상처를 입으면 피가 나와 굳어져서 딱지가 앉아 병원균의 침입을 막는 것처럼 식물의 즙이나 진도 이와 같은 역할을 한다.

 마늘이나 양파, 부추, 달래와 같은 식물은 껍질을 벗기면 강한 자극성 냄새를 풍긴다. 외부로부터 공격을 받는 순간 세포 안에 있던 알리신이라는 휘발성 물질을 밖으로 뿜어낸다. 들깨나 더덕도 자극이 없을 때는 사람들이 느낄 만큼 강한 향기를 풍기지 않는다.

 여기까지는 내 얘기가 아니고 강원대학교 교수 권오길의 말이다. 그를 따르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느 식물이나 외부 침입에 대비하는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마늘 냄새가 강한 냄새를 수반하고 고추가 매운 물질을 뿜는 것도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물질 때문이라는 것이다.

 권오길을 따르면 삼라만상 중에 싸우지 않는 것이 없다. 흙 속의 미생물이나 곰팡이는 스트레프토 마이신 페니실린이라는 항생물질을 만들어 다른 생물체의 침공을 막는다고 한다. 고소한 흙냄새는 방선균과 같은 세균들이 토양 중의 유기물을 분해할 때 생긴다. 모래와 같은 매마른 사람에게서 사람 향기가 나지 않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내 생각으로는 사람에게는 다분히 의도적이고 여러가지 형태로 나타나는 자기 방어 기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가장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 자기의 자유를 구속당할 위험이 있을 때 나타나는 저항 내지 반항이다. 인간뿐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모든 생물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자기의 자유를 구속하려는 외부의 힘이 느껴질 때는 반사적으로 이에 저항함으로써 자기의 자유를 되찾으려는 노력을 한다는 것이다. 풀과 나무에 상처가 나면 즙과 진이 나오는 원리와 비슷하다.

 금주(禁酒)를 선전하는 광고문이 “술은 사람에게 해롭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잘 생각해 보시고 될 수 있는대로 술은 마시지 않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같은 부드럽고 약한 권고가 “술은 절대로 입에 대면 안됩니다. 술은 마시면 엄청 해롭다는 증거가 수많은 연구에서 나왔습니다” 하는 강한 광고문 보다 더 금주(禁酒)에 효과적이라는 보고도 있다. 강한 명령형 권고는 저항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자기의 자유를 잃어버릴 위험이 있을 때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자유를 확보하려는 저항행도의 원리는 심리치료에 써먹기도 한다. 예로, 불안을 호소해오는 환자를 가정해 보자. 이 환자에 따르면 아무리 불안을 쫒아버리려고 해도 자기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저절로 생기는 현상으로 믿고 있다는 것이다. 요컨대 불안을 느끼고, 느끼지 않는 자기 마음은 자기 마음대로 컨트롤(control) 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불안을 없앨 수 없다는 것.

 이 자기의사로 자기감정을 컨트롤 할 수 없다는 생각을 없애기 위해서 치료자는 환자에게 앞으로는 더 불안을 느껴보라는 지시를 준다. 불안을 줄이기 위해 찾아온 환자에게 그 반대되는 행동, 즉 불안을 올리라는 지시를 하니 환자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니 즉석에서 저항을 나타내는 행동을 하는 환자가 많다. “내가 그렇게 어리석은 바보는 아닙니다” 등의 자기도 긍정적인 힘이 있음을 내보이며 치료자의 지시를 거역할 것이다. 자기 마음대로 컨트롤 할 수 없다고 믿고 있던 불안이란 감정도 자기 의사로 컨트롤 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환자 스스로 깨닫게 되는 것이다.

 어른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어린 정식이가 노래를 불러 어른들에게 방해가 된다 해보자. 보통 “정식이 이제 노래 그만해라”는 지시 대신에 “정식이 여기 와서 크게 노래 한 번 해봐” 하면 정식이는 노래를 부르지 않을 것이다. “노래 한 번 불러보라”는 외부 지시에 저항해서 자기의 자유를 확보하려는 행동을 내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른이 하라면 하지 않고 저항하는 것이 어린이들의 너무나 정상적인 행동. 이런 치료적인 방법을 ‘역설적 기법’이라고 한다. 치료를 받으러 오는 사람들에게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특징의 하나, 즉 자기 힘으로는 자기를 컨트롤 할 수 없다고 (잘못) 믿고 있는 것을 컨트롤 할 수 있다고 믿도록 바꾸는 것이다.

 물론 인간은 정당한 합법적인 권위에서 나온 힘은 자유가 위협당하는 경우라도 저항이 아닌 복종의 길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정부가 세금을 내라는 지시, 부모가 자녀들에게 자기 방을 청소하라는 지시, 학교에서 선생님이, 병원에서는 의사가 내리는 지시 같은 것은 별 저항없이 따른다. 이렇게 복종하는 경우는 그 지시가 내려온 권위에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혜택을 받는 경우면 더 자주 복종의 길을 택한다.

 말을 잘 듣는 아이는 복종을 잘 한다는 의미이고 걸핏하면 저항을 하는 아이는 반항아로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어릴 때 어느 정도의 저항이나 반항은 너무나 정상적인 행동이다. 그러나 둘 다 정도가 지나치면 위험이 따르기 마련이다. 저항을 잘하던 아이는 커서 반항하는 성인이 될 위험이 있고, 부모 말 잘듣던 순종적인 아이는 커서 수동-공격(passive-aggressive) 어른으로 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부모는 반항하는 자녀들의 행동을 걱정하지, 복종하는 자녀들의 행동을 걱정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지나치게 반항만 하는 자녀건, 복종만 하는 자녀건 이들이 안고 있는 심리적 갈등의 무게는 같을 것이다.

 인생살이에는 정해진 길, 소위 모범답안이라는 게 있는 경우가 드물다. 많은 부모들은 그들의 자녀를 위해서 옳은 길을 찾는 데 옳은 길, 가야할 길이란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다. (201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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