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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어
leed2017

 

 나는 직업이 백묵을 쥐는 선생이다 보니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자연 관심이 많습니다. 다 마찬가지로 경험했지만은 나는 6년이라는 세월을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일요일 빼고는 하루 여섯 시간을 보낸 셈입니다. 시간 계산을 해보니 어림잡아 6,480시간이 되더군요.

 얼마 전 한국뉴스를 보는데 어느 문제가 된 고등학교가 화면에 뜨면서 그 학교 교무실에 교훈(校訓)이 걸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책임감이 있는 사람이 되자!’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이 되자’ ‘남을 존경하는 사람이 되자’. 이 세가지를 큰 사진틀에 넣어서 교무실 앞에 걸어놓은 풍경이었습니다.

 내가 다니던 중학교의 교훈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고등학교 교훈, 즉 자율, 협동, 강건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느것 하나 어른들의 말이지 청소년들의 말은 아니었습니다. 옴짝달싹 못하게 하고 선택이라고는 이름밖에 없는 환경에서 교훈은 버젓하게 자율이라 포장해 놨으니 이런 모순이 어디 있겠습니까. 뺨을 이러저리 때리면서 웃어보라던 벌(罰)이 생각납니다.

 우리 주위에는 교훈이나 사훈(社訓) 같은 표어가 너무 많은게 탈입니다. ‘자나 깨나 불조심, 꺼진 불도 다시 보자’로  시작해서 ‘전기를 아껴 쓰자’ ‘채식을 많이 하자’ ‘빨갱이 고발하여 상금 타서 잘 살아보세’. 갖은 악질적인 충고가 쏟아져 나오니 참 어리둥절할 뿐입니다.

 길거리에 나붙은 표어를 보고 ‘아 참 나도 저 표어가 던지는 말 같이 살아야겠구나’ 하고 그대로 행동하려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교훈이란 아예 없는 것이 제일 좋지만 있을 바에는 ‘개인화’ 되지 않으면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위에서 훈계 몇 마디가 내려왔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남의 물건 훔치지 말라는 표어가 있다고 도둑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몇몇 윗사람들이 의논해서 내려보낸 것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아무리 나이 어린 고등학생이라 해도 어떤 일을 할 때는 그들이 참여할 기회가 없으면 그 일에 대한 의욕이나 일의 성과가 절반으로 줄어드는 법입니다.

 고등학교 몇 학년 때였는지 모르겠으나 학급명을 학생들이 정해보라는 담임 선생님의 지시가 있었습니다. 반 아이들은 좋아라 흥분해서 ‘아리랑’ ‘백양’이니 하는 담뱃갑 이름부터 ‘양지’ ‘바닷가’ ‘만나리’ 같은 다방 이름이 나오더니 나중에는 ‘초원의 빛’ ‘황야의 무법자’ 같은 얼토당토 않는 영화 제목까지 등장했습니다.

 담임선생은 “결과가 매우 실망스럽다. 기껏해야 담배갑, 다방 이름이냐”며 웃으며 교실 밖으로 나가시던 것이 생각납니다. 똑 떨어진 결과는 없었지만 우리는 급훈을 정하는 동안 웃고 킬킬거리며 재미를 톡톡히 보았습니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웃고 흥분되어 있었습니다.

 급훈 하나 정하는데 이렇게 의견이 많은데 하물며 교훈이야. 나는 캐나다 온지가 50년이 넘었고 그동안 캐나다 초등학교 교실에 수십 번을 들어가 보았지만 교실에 이렇게 생각하자든가 어떻게 놀자 같은 표어를 본 기억은 없는 것 같습니다.

 한국 같은 집단주의 사회에서는 표어니 교훈이니 사훈(社訓) 따위가 유난히 더 많이 유행하나 봅니다. 집단주의 사회에서는 단원 간의 화합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생각되므로 교훈이나 사훈 같은 것을 통하여 단원들을 그 집단 속으로 들어오게 하자는 것이지요.

 이때 표어나 교훈은 그 통제력을 마련하는 수단이 되는 것이지요. 광고를 공부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집단주의 사회는 광고를 “상류사회의 회원이 되어보지 않으시렵니까?” 하는, 우리와 같이 살자고 잡아끄는 것들이 많다고 합니다.

 표어나 교훈 따위가 이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표어가 있다고 해서 사람들이 그 표어에 맞는 행동을 한다는 자료는 없습니다. 예로, 종교기관에서 정직, 정직 타령을 해도 정직성을 연구한 사람들은 종교를 가진 사람과 가지지 않은 사람 간의 정직성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것을 오래 전부터 지금까지 보고해 왔습니다.

 표어나 교훈 따위가 이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는 날에는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느냐에 대한 지표를 잃고 이리저리 헤맬 것 같아 걱정이 되겠지요. 그러나 우리에게는 누가 간섭하지 않고 가만히 내버려 두면 올바른 길로 찾아가는 자정(自淨) 능력이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걸음마를 시작할 때를 보십시오. 일어서려다가는 넘어지고 발을 떼려다가는 엉덩방아를 찧는 과정을 수없이 되풀이 하다가 결국에는 일어서서 혼자 힘으로 걸어가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201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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