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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천서주(陶泉書廚)
leed2017

 

 ‘도천(陶泉)’은 나의 아호이고 ‘서주(書廚)란 서실이란 말과 같습니다. ‘서실’이라 해도 되지만 ‘음식점’을 ‘식당’이라 하지 않고 ‘방비원’이니 ‘삼천궁’이니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서실’이란 말에서 한발짝 물러나서 ‘서주’라고 하면 더 멋있게 보이지 싶어 그렇게 이름지은 것입니다. ‘도천’이란 아호는 나의 서예스승 일중(一中) 김충현. 내가 그에게 서예를 배울 때 지어주신 것이고 ‘서주’란 말은 내가 갖다 붙인 서실이란 말입니다. 글씨는 40년쯤 되는 어느 무더운 여름 한국을 나갔던 길에 일중께 받아서 현판으로 표구를 해서 캐나다까지 가져온 것입니다.

 은퇴하는 어느 교수가 자기 집과 연구실에 있던 책을 모두 도서관에 기증했다는 신문기사를 읽으면 나는 몹시 부러운 마음이 듭니다. 집이나 학교 내 연구실 책꽃이에 꽂힌 책은 몇 권이 되질 않고 그나마 꽂혀있는 책들도 내가 현재 읽고 있는 것 말고는 4, 5년이 지난 것들이라 별 소용이 없기 때문이지요. 나는 학생들에게도 출판된 지가  10년 혹은 15년이 넘는 책들은 특별한 이유 없이는 읽지 말고 논문에 인용도 하지 말 것을 권고합니다. 학문이 발달하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 보니 5년이 넘으면 벌써 낡은 지식이 되어가고 있는 세상이 아닙니까? 이 낡은 지식만 수북이 담긴, 아무도 읽지 않을 책을 누구에게 준다는 말입니까.

 얘기가 난 김에 학국에서 몇 번 가본 교수은퇴식 얘기를 먼저하고 다음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은퇴를 하는 교수들이 교수에 임명되고나서부터 발표한 연구논문이나 산문 등 지금까지 쓴 것을 모두 모아서 두툼한 책으로 내서 이 책을 은퇴식에 온 손님들에게 한권씩 돌려주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두툼한 책 안에는 온갖 잡동사니, 산문, 신문에 낸 글, 교회 지하실에서 일반 학부모들을 위한 연설문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런 학술논문이 아닌 글을 왜 여기에 담았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습니다.

 설령 권위있는 학회지에 실렸던 연구논문이라 하더라도 평생 모은 저술이니 10년, 20년, 30년 전에 썼던 것들이라 지금은 케케묵은 지식에 지나지 않는 것들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책을 붉은 보자기에 싸서 논문 봉정식이 있겠다는 사회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은퇴교수와 사모님은 앞에 나가 서있고 그 붉은 보자기로 싼 논문집은 마치 국군장병의 유골(遺骨)을 받들 듯 장례식 분위기의 엄숙한 표정으로 주고받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두툼한 논문집을 내는 비용은 은퇴교수가 아니고 그의 제자들로 구성된 아무개 교수 은퇴준비위원회에서 부담한답니다. 이런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제자들에게 금전적 부담을 주는 일, 적폐청산의 대상이지요. 참으로 웃지도 울지도 못할 코미디입니다.

 내 서재에는 책이 별로 없습니다. 전공서적은 은퇴가 가까워오는 녀석이 새 책을 살 이유가 어디 그리 많겠습니까. 그래도 읽을 만한 책은 내 연구를 도와준 몇몇 대학원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한 페이지 읽는데 1시간 넘는 시간을 보내도 이해를 할까 말까 하는 영어실력으로 새 책을 사서 서가에 꽂아놓는다고 내 전공실력이 부쩍 늘어나겠습니까?

 읽을 만한 책이 별로 없는 빈약한 도천서주. 그래도 30년 전인가 40년 전, 이 서재를  꾸밀 떄는 내가 직접 소나무 판목(板木)을 사서 톱으로 잘라 천정에 닫는 크기의 책꽂이를 만들었습니다.

 ‘陶泉書廚’(도천서주)라는 일중의 예서로 쓴 현판, 인사동 어느 화랑에서 사서 들고 온 서애(西厓) 유성룡의 ‘재거유회’(齋居有懷)와 안동 하회마을 병산서원을 판각한 홍성웅 화백의 작품이 걸려있는 나의 서재. 겉으로는 갖출 것은 다 갖춘 멋진 서실. 그러나 알고 보면 부실하기 짝이 없는 외화내빈에 지나지 않는 엉터리.

 그러나 이 허약한 서실에 아내가 결혼 때 가져온 ‘청구영언(靑丘永言)’ 옛날판 한 권이 책꽂이 귀빈석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소화(昭和) 몇 년에 출간된 책이니 초본이니 무슨 본이니 떠들 것까지는 못되고 소화 몇 년이면 일제치하에 있을 때 발간된 책이니 나에게는 보물이었습니다. 이제 ‘청구영언’과 함께 살 날도 그리 많지 않을테니 책주인을 우리 말고 다른 사람으로 바꿔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내와 며칠을 두고 의논한 끝에 지금까지 나의 산문집을 7권이나 출간해준 ‘선우미디어’ 이선우 사장에게 기증하기로 했습니다. 키우던 개가 새끼를 낳아 강아지를 사람들에게 나누어줄 때 강아지를 가져가는 사람이 강아지 양육에 정성을 다 할 후덕한 주인이 될 것인가를 추측해 볼 것이 아닙니까? 마찬가지로 내책을 기증받은 사람이라면 그 책에 대한 애착을 책을 현금 가치로만 생각하지 않을 사람이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 점에서 이선우는 최고점수를 받았기에 ‘청구영언’의 운명은 그와 연결이 되었습니다.

 사람에게 명운(命運)이라는 것이 있듯이 서재같은 무생물에도 명운이 있나 봅니다. ‘도천서주’도 우리가 온타리오 런던에 살 때 내 나이는 30대, 조교수, 부교수, 교수가 되려고 발버둥을 치던 시절, 새책을 사오는 경우도 많고, 책을 뺏다 꽂았다 하는 횟수도 많았습니다. 그때는 멀리서 손님이 오면 잠자리는 꼭 서재에 마련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책 향기에 묻혀 잠을 잘 잤다고 말하는 손님도 있었지요. 이제 서재를 들어가는 횟수도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책을 읽기보다는 자료로 쓰는 경우가 더 많아졌기 때문에 뽑혀서 밖에 나가있는 시간도 줄어들었습니다. 서재에 들어가는 발을 옮겨 놓으면 쓸쓸한 생각이 듭니다.

 물유성쇠(物有盛衰)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흥망성쇠가 있다는 말입니다. 고려 때 최충이라는 사람이 지은 시조에도 이 말이 나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온 지는 오래고 이제는 내 서재에도 가을이 왔나 봅니다. (2019.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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