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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음악적 재능
leed2017

 

 사서삼경 중의 하나로 꼽히는 시경(詩經)은 공자가 지은 책이라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공자는 그가 살았던 당시 대륙 곳곳에 떠돌던 민요의 가사를 모아서 한 권의 책으로 내놨다.

 이 책에는 풍(風)이라 하여 남녀 애정표현 같은 음악의 노랫말과 아(雅)라는 공식연회에서 쓰이는 음악의 노랫말도 있고 송(頌)이라는 왕실에서 제사를 지낼 때 쓰는 노랫말도 있다. 이 책이 곧 시경(詩經)이다. 그러니 공자가 묶은 전국 ‘민요 대전집’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공자가 살던 때는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천하는 열 개 스무 개로 쪼개지고 또 쪼개져서 제후들은 다른 나라를 침략하여 자기나라의 영토를 넓히기에 정신이 없을 때였다. 이런 경우 제일 피를 많이 보는 것은 풀뿌리 백성. 어디를 가도 전쟁이요, 가뭄, 굶주림과 전염병에 시달려 살기는 점점 어려워질 때였다.

 이때 공자는 각 지방에서 떠다니던 민요의 가사를 모아 기록했다. 왜 그랬을까? 그는 음악이 인간의 삶에 끼치는 감화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으리만큼 크다는 것을 알고, 민요야말로 삶의 기쁨과 슬픔을 가장 절실하게 말해주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내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나는 어쩌다가 취미로 색소폰을 배우고 있다. 그러나 내가 음악적 재능이라고는 없는 사람이란 것은 색소폰에 입을 댈 때마다 확인하고 있다. 재능이 있는 사람이면 몇 달 연습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을 나는 몇 년이 걸려야 하니 재능 탓을 아니 할 수가 있겠는가.

 내가 음악적 재능이 없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나는 그 이유를 우리 가정의 내력으로 돌리기를 좋아한다. 즉 나는 어렸을 때 아버지나 어머니가 노래를 부르는 것은 한 번도 보질 못했다. 우리집 뿐만 아니고 유가(儒家) 어느 집에서나 마찬가지. 유가에서는 춤추고 노래하지 않는다.

 이런 노래없는 전통이 대대로 내려오다 보니 내 음악적 재능이 말라 붙어버렸지 싶다. 마치 지적(知的)으로 자극이 전혀 없는 환경, 이를테면 책이라곤 전혀 읽지 않는 가정이나 집안에 책이라곤 전화번호부 밖에 보이지 않는 문화적, 지적으로 불모지 환경이 대대로 이어오다 보면 생리적, 신체적으로는 아무런 결함이 없는 문화적-가정적 타입의 저능아가 나오는 경우가 많은 것처럼-.

 아무튼 내 변명의 요지는 “잘 되면 내 탓, 못 되면 조상 탓”의 꼴불견이다.

 한 가지 이상한 것은 사림파 선비들이 정신적으로 신세를 지고 있는 것은 중국 위나라 말기의 혜강과 완적 같은 죽림칠현들일 게다. 이들은 술 마시고, 거문고 타며, 산책하고, 담소하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도대체 어떤 정치적 문화적 화학반응을 통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조선 사림파 선비들에게는 노래하고 춤추던 전통은 찾아보기가 힘든 게 사실이다.

 ‘우리 음악 어디 있나’라는 좋은 책을 펴낸 이동식을 따르면 조선 군왕 중에 춤과 노래를 즐긴 사람은 이성계였다고 한다. 쉰 여덟에 왕위에 오른 이성계는 정인지 같은 측근들과 회의를 끝내고 술자리에서 흥이 나면 신하들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명하고 흥이 오르면 자기도 나가서 덩실덩실 춤을 췄다고 한다.

 이성계의 풍류를 이어받은 다음 임금들 즉 정종, 태종, 세종, 세조까지는 임금이 신하들과 어울려 노래와 춤으로 스트레스를 풀었다고 한다.

 성종 때 이르러 나이 어린 임금 성종은 개국공신파들의 세력을 눌러볼 의도로 과거를 통해 등장한 사림파 선비들을 대리 등용하였다. 그런데 멋이나 풍류보다는 자기 능력 과시에 바빴던 이 신진사류들은 춤추고 노래하는 것은 군왕이나 지체 높은 조정 신하들의 점잖은 이미지를 훼손한다고 생각하였지 싶다. 그러니 성종 이후는 춤과 음악이 시들해졌다.

 나는 대대로 유교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음악적 재능이 없다고 했는데 그것도 좋은 변명이 못된다. 내 주위에서 나와 비슷한 유교가정에서 자란 친구들 중에는 남다른 음악적 재능을 나타내는 녀석들이 한 둘이 아니지 않는가. 음악적 재능이 없다는 것을 숙명으로 받아 들인지 오래이니 지금 와서 새삼 문제가 될 것은 없다.

 아깝고 분한 것은 세종대왕 같은 성군이 신하들과 춤추고 노래 부르던 전통이 없어져 버린 것이다. 이동식을 따르면 영국의 에드워드 히드 총리나 독일의 헬무드 콜 총리,  폴란드의 파데레프스키는 그들이 공직에 있을 때도 가끔 연주나 지휘봉을 잡았다 한다.

 해방이 되고 난 후 우리나라의 수장으로 불리던 사람들은 그들이 좋아하던 애창곡이 있다는 말만 들었지 그들이 한번도 대중 앞에서 노래 부르는 것은 보질 못했다. 우리나라의 수장도 대중 앞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악단의 지휘봉을 잡는 날이 올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 오른다. (201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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