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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帽子)
leed2017

 

 내 최초의 기억은 무엇일까?

 최초의 기억(The earliest memory)이란 한 사람의 생애에서 맨 처음 일어난 일에 대한 기억, 그러니까 제일 어렸을 때 일어난 일을 기억하는 것을 말한다. 정신분석학을 주창한 프로이트(S. Freud)를 따르면 최초의 기억내용은 그 사람이 일생동안 지닐 성격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그가 주창한 정신분석이론은 흥미는 있으나 과학적 검증이 불가능한 부분이 너무 많기 때문에 현대 심리학에서는 그의 이론을 무시하거나 외면한다. 그러니 내 생각으로 요새 대학 심리학과에서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학과가 있다면 프로이트 정신분석 이론을 지켜가고 따르려고 생긴 학과이거나 아니면 그 학과는 현대 심리학 사조의 변화를 모르거나 무식한 학과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천당과 지옥이 있느냐 없느냐 같은 문제를 과학적인 방법으로 검증하기는 불가능한 것처럼 정신분석학도 과학적 검증이 가능하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프로이트의 이론이 그럴듯하게 들리는 때가 많기 때문에 그가 주창한 정신분석 이론이 이 세상에 나온 지 150년이 가까워 오지만 문학이나 예술을 제외하고는 그의 이론에 대한 흥미와 관심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앞에서 얘기했듯이 내 최초의 기억은 중절모자에 씌워져 있다. 내 바로 아래 여동생이 태어난 바로 그날 일어난 일이었으니 내가 만 4살 때였다. 아버지가 외출하고 집에 안 계신 어느 날, 나는 사랑방에 걸린 아버지의 중절모자를 쓰고, 아버지의 단장을 짚고, 아버지의 구두를 신고 집을 나가서 내가 어른이 된 기분으로 강 언덕 소나무에 기대서서 낙동강 물을 내려다 보던 생각이 난다. 바로 그 순간 내 여동생이 태어났으니 어서 집에 들어오라고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 황급히 집으로 돌아왔다. 이것이 내 최초의 기억이다. 물론 최초의 기억이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소망, 공상, 착각 등이 뒤섞여서 애당초 저장된 기억 내용과는 거리가 먼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네 살 난 꼬마가 자기 아버지의 중절모자를 눌러썼으니 모자는 눈, 코, 입, 턱까지 덮었을테니 꼬마는 앞도 제대로 못 보며 집을 나갔을 것이다. 이 무슨 형벌인가. 그래도 “어른같이 보이기 위해서는 앞을 못 봐도 모자는 눌러 써야 한다”는 게 네 살 난 아이의 어른스런 생각이었을 것이다.

 

 벌써 30년은 지났다. 한국 대구를 방문 중에 경주 안강에 있는 조선 중종 때의 거유(巨儒) 회제(晦齊) 이언적을 모신 옥산서원에 가서 선생의 신위를 알현(謁見)한 적이 있다. 신위를 알현할 때는 조선 때 성균관 유생들과 같은 도포(道袍)를 입고, 두건을 쓰고, 그 시절 선비들이 신던 신발을 신어야 한다.

 

 옛날 유생들이 쓰던 두건은 위로 우뚝 솟아난 것이 얼마나 멋있게 보이는지. 사극 같은데서 이 두건을 쓴 유생들을 보면 “나도 한번 써봤으면…” 하는 욕심이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곤 했다. 내 작은 소원이 경주 안강읍 외딴 골짜기에 있는 옥산서원에서 이렇게 쉽게 이루어질 줄이야.

 

 나는 모자를 생각하면 감투가 생각난다. 감투를 썼다 하면 벼슬자리를 얻었다는 말. 그러니 모자=감투=벼슬이다. 모자를 왜 쓰느냐에 대해서는 나도 신통한 대답은 없다. 모자를 쓰면 내가 뭐가 된 것 같은 허영심을 부인할 수는 없지 싶다. 그것은 공명심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국회의원들이 가슴에 금배지(badge)를 달고 “내가 이래 봬도…”의 허망된 위대함을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메리칸 인디언들은 모자라기보다는 머리에 띠를 두르고 깃털을 꽂고 다니는데 이것은 장식이라기보다는 전쟁에서 공을 세운 영웅에게 붙여주는 명예라 한다. 영어로 A feather in your cap!(네 모자에 깃털을!)이란 말은 그 사람의 공적이나 영예를 일컫는 말이다.

 

 깃털은 고대사회에서는 매우 중요한 존재로 인정되었다. 우리의 옛 문화 풍습에 대해 3권의 책을 쓴 역사학자 송기호에 의하면 삼한 때 장례식을 치를 때는 큰 새의 깃털을 묻어 죽은 사람이 하늘로 날아갈 수 있기를 빌었다고 한다.

 

 나도 내 검은색 중절모자에다 깃털을 하나 꽂아 볼까. 꽉 차고 의젓해 보이면 좋겠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모자에 깃털을 꽂는다는 것은 좀 간지럽고 나를 보는 사람들에게는 어딘지 좀 느끼하다는 인상을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어떻게 하나.

 

 남에게 지나치게 달콤하고 멋있게 보이려다가는 도리어 그 멋을 잃어 버리는 경우가 너무나 많지 않은가. 치장을 너무 요란스럽게 하면 결혼식 날 신부화장처럼 오히려 인상을 망치는 경우가 많은 것처럼-.

 

 그런데 도대체 이 나이에 내가 누구한테 잘 보이려고 이 야단인가? 이제는 누구한테 근사하게 보여도 그만, 근사하지 않게 보여도 그만인 나이다. 생긴대로 살자. (2018.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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