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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와 소설
leed2017

 나는 조선 제22대 임금 정조는 조선왕 27명 중에서 제4대 세종대왕과 함께 성군(聖君)의 칭호가 마땅할만큼 치세(治世)를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정조는 그의 할아버지 영조의 명으로 뒤주에 갇혀 여드레만에 죽은 사도세자의 아들입니다. 아버지 사도세자가 당쟁에 희생되었듯이 정조 역시 세자 시절에는 물론 임금이 되고 나서도 오랜 세월이 흐르도록 그를 죽이려는 무리 속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임금 자리에 오르자 천추(千秋)의 한(恨)을 품고 죽은 아버지에 대한 복수를 단행했습니다. 당시 아버지 사도세자를 죽이는데 앞장섰던 사도세자의 처삼촌 홍인한과 정후겸 등을 유배를 보내서 사사(賜死) 시켰습니다. 장인 홍봉한도 처벌대상이었으나 정조의 어머니자 사도세자의 부인 혜경궁 홍씨를 생각하니 차마 리스트에 올리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혜경궁 홍씨도 남편을 죽이자는 노론 압력에 굴복했으니 이 여자 역시 사도세자를 죽이자는 음모에서 아주 자유로운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가(史家)들도 있습니다.

 

 아버지 사도세자가 뒤주 안으로 끌려 들어가는 것을 본 11살의 어린 정조, 할아버지 팔에 매달려 아버지를 살려달라고 빌었던 한(恨)과 원(怨)을 품고 자란 정조는 아무에게도 그 울분을 털어놓지 못하고 묵묵히 자랐습니다.

 

 그러나 그는 천성이 어질고 학문을 좋아했습니다. 당시 집권세력이던 노론에 밀려 자기의 능력을 발휘할 기회조차 갖지 못하고 울분 속에 지내던 서얼 출신의 대단한 실력을 가진 선비들, 이를테면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과 같은 희대의 천재들을 기용해주는 한편, 이가환, 정약용 등 실학파 사상에 물이 든 개혁파 선비들에게 날개를 달아 주었습니다.

 

 이들 선비들은 정조가 세운 규장각이라는 왕실 도서관이자 정책수립기관을 드나들며 책읽고 공부하며 정조 치세에 도움이 될 정책을 활발하게 토론, 건의했습니다. 바야흐로 조선에는 실사구시(實事求是)의 학풍이 불어오는 듯했습니다. 짧으나마 조선에 문예부흥이 온 것이지요.

 

 정조는 경서와 역사에 무척 밝은 면학(勉學) 군주였지만 소설은 한번도 읽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가 보기에 소설은 문장이 천박하고 촌스러워서 선비들은 읽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겠지요. 정조는 ‘삼국지연의’ ‘수허전’ ‘홍루몽’ 따위의 중국에서 들어온 소설은 읽기도 쉬운데다 재미가 있어서 많은 선비들이 경서처럼 드러내놓고 읽지는 않았지만 돌려가며 많이 읽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정조는 소설에 담긴 남녀사랑 이야기(얼마나 재미있고 달콤합니까!), 사회비판 정신은 자기도 모르게 빨려들어갈 위험이 있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그는 소설 읽는 것을 금지하는 소설금지령을 내렸습니다. 정조는 신하들에게 다시는 소설을 읽지 않겠다는 반성문을 써내라고 요구하고, 신하들은 그 말에 복종하고 제각기 반성문을 써냈습니다.

 

 정조가 간지 15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르고 그 땅에서 박정희라는 무인이 총칼로 정권을 빼앗아 군사정권이 들어섰습니다. 그의 철권정치가 시작되었습니다. 곧 그는 좌익사상에 관한 책들을 금지하였습니다. 그 방면의 책을 읽거나 가방에 넣고만 다녀도 불온서적을 소지했다고 잡아갔습니다.

 

 이런 류의 책을 읽다가 잡혀가는 날에는 병신이 되도록 물고문, 전기고문을 당하기가 일쑤이지요. 본인 뿐만 아니라 가족이나 친지도 잡혀가서 실컷 두드려 맞고 병신이 되어온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었습니다.

 

 소설을 읽다가 정조에게 걸려든 선비로 가장 유명한 사람은 안동김씨의 김조순이었습니다. 김조순은 김창집의 아들로 젊어서부터 정조의 관심을 듬뿍 받아온 선비입니다. 나중에는 두 사람이 사돈관계로 발전해 가지요. 김조순의 딸이 정조의 며느리(순조의 본처)가 됩니다.

 

 안동김씨는 정조와 인연으로 온 나라를 휘어잡는 세도정치의 기반을 다지게 됩니다. 이 안동김씨의 세도정치는 정조가 죽은 후 시작되어 60년을 이어갑니다. 김조순은 분별력이 있고 은인자중하는 선비라 그가 살았을 때 세도정치가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그의 아들 김좌근, 손자 김병기로 세도정치가 시작되어 대를 물리며 이어집니다.

 

 나는 가끔 정조의 소설금지령을 들으면 박정희의 불온문서 금지령이 생각납니다. 정조는 어려서부터 유교경전을 많이 읽고 공맹(孔孟) 사상의 사고력도 매우 높은 지식층 임금이었고 박정희는 만주군관학교와 일본 육군사관학교에서 훈련받은 무인(武人)입니다. 정조는 서학(西學)의 접근을 속으로 걱정했을 것이고 박정희는 공산주의가 가까이 오는 것을 싫어했을 것입니다.

 

 정조에게 소설을 읽다가 들키면 반성문을 쓰고 다시는 소설을 읽지 않겠다는 서약으로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불온문서를 가지고 있다가 박정희에게 걸리면 감옥살이 몇 주에 물고문, 전기고문도 있을 수 있습니다.

 

 두 사람 다 훗날에 생각해보니 “그렇게 엄하게 굴지 않아도 될 것을 내가 왜 그랬나” 후회가 될 것입니다. 읽지 말라면 더 읽고 싶고, 부르지 말라면 더 부르고 싶은 저항의 심리가 우리 민족에게는 지하수처럼 도도하게 흐른다는 것을 아십니까?

 

 나라는 집권자가 의도하는대로 지휘봉을 들고 이리로 가라 저리로 가라고 아니 해도 저절로 흘러가야 할 방향으로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 한 나라의 수장은 민중이 가는 방향을 너무 간섭, 억제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일체 간섭을 안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중간 어디에 균형을 잡아야 하는 것이 치정(治政)의 미학이 아니겠습니까? (2020.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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