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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 잡던 시절
leed2017

 

 한국 E 여대에 있을 때 일본 고베에서 열리는 학회에 간 적이 있다. 머무르던 호텔에서 아침을 끝내고 지하철 정거장까지 걸어가는데 가는 길 양쪽으로 서 있는 가로수에서 매미들이 얼마나 시끄럽게 울어대는지 처음 듣는 순간은 “이게 정말 매미소리 맞나?”는 의심이 들 정도로 소리가 크고 우렁찼다. 한 놈이 독창으로 뽑는 게 아니고 여러 놈들이 합창을 해대니 내 귀가 어두웠던 게 다행이지 아니면 고막 파열로 이비인후과 의사 신세를 져야 할 뻔했다. 이 매미 녀석들은 한번 울기 시작하면 어찌나 열심히, 정성스럽게 울어대는지 호텔직원의 말이 옆에서 대포를 쏴도 아랑곳 않을 정도라고 한다.

 

 E여대 내 사무실(북미대학에서는 사무실, 한국에서는 거창하게 연구실이라고 부른다)이 사회과학관 6층에 있었기에 창밖으로는 사무실 밑으로 키가 큰 나무들이 내려다 보인다. 이 나무들을 매미가 좋아하는지 늦여름이면 낮에는 물론 밤늦게까지  울어대곤 했다. 요새는 밤에 가로등 불빛이 밝기 때문에 매미들이 밤낮을 구별하는 능력이 없어서 전깃불을 대낮으로 알고 그렇게도 열심히 울어댄다는 것. 그러나 이것도 어디까지나 인간 편에서 한 생각, 매미 편에서 보면 “전기불이 대낮같이 밝구나. 이 좋은 세상에 내가 앞으로 살 날이 꼭 엿새밖에 안 남았네. 허무한 인생, 실컷 노래나 부르다가 저세상으로 가자”고 생각하는지 누가 알랴.

 

 중학교 다닐 때 여름방학이 오면 과제로 곤충채집을 해서 학교에 제출하라는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아마도 이런 과제를 낸 선생님들의 의도는 곤충채집을 하는 사이에 학생들이 농촌환경, 즉 자연에 대한 이해와 애착을 높이려는 것이 주목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생각으로는 의무적인 곤충채집은 자연에 대한 이해는커녕 곤충 대학살을 내리는 명령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곤충채집하면 떠오르는 것이 매미, 잠자리, 나비, 아니면 메뚜기일 것이다. 하나같이 사람에게 해를 주는 곤충이 아니다. 그런데도 이들을 잡아 죽여서 학교에 갖다 바치라는 명령이다.

 

 매미는 소리내어 울며 일주일을 땅 위에서 살려고 땅 밑에서 5년이 넘는 유충기간을 보낸다고 한다. 가련한 매미. 이동렬의 여름방학 숙제를 위해서 포로가 되어 희생된 매미는 한여름에 모두 10마리는 되지 싶다. 과제용 매미는 잡아서 굶겨 죽이든지, 날카로운 바늘로 등을 찔러 천당에 보내야지 조선 때 죄수를 다루듯 능지처참을 해서는 안 된다.

 

 물론 먹이도 주지 말고 있는 그대로 천천히 굶겨 죽이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다. 나는 이럴 때 곤충만 보면 무조건 밟아서 죽여 버리지 않으면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못살게 굴다가 내던져 버리곤 했다. 왜 그리 잔인한 짓을 했을까? 남들도 다 그렇게 하는데 나도 따라한 것 밖에 없다. 어렸을 때는 미물들이 약자라는 생각은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나처럼 곤충을 못살게 구는 것도 약자에 대한 강자의 횡포로 볼 수 있다. 그러니 학교에서 곤충채집 같은 과제를 주는 것은 상대가 약자일 때는 강자로서의 주먹을 마음껏 휘둘러도 된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과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인간사회에서만 강자와 약자가 있는 것은 아니다. 약자는 이 세상에 살아있는 모든 생물, 그러니까 동물이나 풀벌레 같은 곤충들도 인간에게는 약자에 속하는 것이다.

 

 강자와 약자의 규정은 생물A와 B 중 누가 누구의 삶을 통제할 수 있느냐로 결정되는 것. 예로, 생물A인 뱀은 생물B인 생쥐의 생활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에 B는 A에 비해 약자라 할 수 있다. 옛날 신라 때 화랑도 계율(戒律)에서 살생유택(殺生有擇)이라 하여 함부로 생물을 죽이지 말라고 한 것은 인간의 사랑은 매미나 두꺼비, 잠자리 같은 모든 약자에까지 이른다는 부처의 말씀을 일러준 것이다. 인간의 사랑은 동물에까지 확장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매미는 우는 것일까, 노래하는 것일까? 우는 것이라면 무슨 눈물 흘려야 할 사연이 그렇게도 많으며, 노래를 한다면 재미있고 즐거운 일이 그리도 많단 말인가? 그런데 녀석들이 내 손에 포로가 되는 순간 계속해서 우는 놈은 없다. 이걸 보면 그들이 자유롭게 나무에 붙어있을 때는 울음이 아니라 노래를 하고 있었음이 틀림없는 것 같다. 인간의 포로가 되는 순간이 얼마나 참혹하고 슬픈 순간이랴. 이 비장한 순간에 울지 않는다는 것은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슬픔을 느끼는 순간일 것이다.

 

 고향생가 역동집 뒤로 가면 펑퍼짐한 밭에 8~10그루의 대추나무가 있다. 여기가 바로 나의 매미 학살장, 영어로는 Killing Field. 매미가 대추나무 수액을 좋아하는지 여기에 오면 네다섯 나무에 매미가 붙어 있다. 개학이 가까워 오는 늦여름이면 나는 부랴부랴 곤충채집 숙제를 하느라 그 대추나무 밭을 자주 찾곤 했다.

 

 그 밭에 있던 대추나무들은 없어진지 오래다. 그 대추나무에 열린 대추를 따 먹으며 뛰놀던 아이들도 자라서 노인이 되어 대부분 저세상으로 갔다. 방학숙제를 한다고 당시 최신무기 말총그물을 만들어 가지고 살금살금 발소리를 죽여가며 매미 목에 올가미를 씌우려던 소년 이동렬은 나이 올해 일흔아홉이다. 그때 내가 잡아서 학교에 제출하려던 매미들의 까마득한 후손들은 다른 곳, 다른 나무에 가서 “인생은 즐거워라” 목청을 높여 노래하고 있을 것이다. (201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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