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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락선은 떠난다
leed2017

 

쌍고동 울어울어 연락선은 떠난다

잘 가소 잘 있소 눈물젖은 손수건

진정코 당신만을 진정코 당신만을 사랑하는 까닭에

눈물을 씻으면서 떠나갑니다

아이 울지를 마셔요, 울지를 마셔요

 

 위는 박영호의 노랫말에 김송규(김해송의 본명)가 멜로디를 단 ‘연락선은 떠난다’의 1절이다. 1937년 평양화신백화점의 한 악기점 점으로 일하다가 15살 나이에 가수로 발탁되어 이난영과 함께 가요계의 신데렐라로 불리던 가수 장세정이 레코드에 처음으로 취입했다. 이 노래가 처음 발매되었을 때 ‘아이 울지를 마셔요’라는 부분이 너무 선정적이란 이유로 발매가 금지되었다 한다.

 

 오늘날 불러지는 노랫말과 노래가 처음 나왔을 때의 가사를 비교해보면 ‘눈물을 씻으면서’가 ‘눈물을 흘리면서’로 되어 있고 ‘울지를 마셔요’가 ‘울지를 말아요’로 되어 있다. 대중가요의 노랫말을 쓰거나 멜로디를 붙이거나 음반에 처음 취입한 가수가 북한으로 갔을 때는 ‘월북 작가’라는 딱지가 붙어 그들의 노래는 노랫말을 제멋대로 바꾸고 작곡자도 엉뚱한 사람으로 둔갑되는 경우가 많았다(물론 노래를 보전하기 위해 그럴 때가 많았지만). 이런 혼돈을 감안하면 ‘연락선은 떠난다’의 노랫말은 보전이 무척 잘되어 있다고 보아야겠다.

 

 장세정은 6.25 동란으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 가수다. 그는 1970년대 초부터 지병인 고혈압이 악화되어 노래를 부를 수 없게 되었는데 그 무렵부터 그녀의 인기곡 대부분이 월북 작가의 작품이라 금지되었다. 얼마 후 그는 아들이 있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가서 살았으나 고혈압 때문에 건강한 생활은 할 수 없었다고 한다.

 

 1978년 10월14일, 그녀의 노래를 아쉬워하던 재미한인 동포들이 로스앤젤레스 슈라인 오라토리움에서 ‘장세정 은퇴공연’을 개최하여 명가수의 말년을 화려하게 장식해 주었다. 6,500석의 슈라인 오라토리움에 은퇴공연을 처음 신청했을 때 오라토리움 관장이 “너희 한국 교민들이 5만 밖에 되지 않는다는데 그 숫자로는 이 큰 공연장을 반(半)도 못 채울 것”이라며 거절하는 것을 세 차례나 끈질기게 설득한 결과 장소 사용허가를 받아냈다고 한다.

 

 공연 날, 6,500석의 오라토리움은 초만원을 이뤘고 채 입장하지 못한 500여 명은 오라토리움 밖에서 공연을 지켜보았다고 한다. 재미한국인 70년 이민사에 남을 기록이 된 공연이었다. 여기까지는 박찬호가 일본말로 쓰고 안동림이 우리말로 옮긴 ‘한국가요사’에서 간추린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연락선이란 조선의 부산과 일본의 시모노세키를 연락하는 연락선을 말한다. 그것은 오늘날 대한민국과 일본을 오가는 호화 유람선이 아니다. 가난에 쫓겨 먹고 살 길을 찾아 처자식은 굶주림 속에 남겨두고 혼자서 연락선을 타고 떠나야 하는 비통(悲痛). 그 슬픔, 그 절절한 정한(情恨)은 어이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내가 일개 대중음악, 막말로 뽕짝 한 곡에 이렇게 많은 지면을 할애하는 이유는 뭘까? 내 나름대로의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리가 기뻐서 웃고, 슬픈 일로 울고 싶을 때 그 감정을 노래나 시, 소설로 표현하는 것은 고전적(古典的) 문학활동이나 음악보다는 대중가요가 몇 배 더 쉬운 것 같다. 마치 대중가요는 손전화기 같아서 돌연히 일어나는 사건들도 금방 기록으로 남길 수 있는 것처럼-.

 

 대중가요를 연구하여 서울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장유정은 ‘오빠는 풍각쟁이’라는 책을 썼다. 그 책머리에서 그는 힘들고 외롭던 대학생시절, 어느 날 새벽 텅 빈 버스에서 귀가 아플 정도로 크게 들려오던 뽕짝 트로트 한곡을 듣고 그만 꺼이꺼이 목놓아 울어버렸다고 고백하였다. “우리가 천박하고 저속하다고 비난하던 그 어떤 노래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삶을 살아가게 해주는 위로와 위안이 될 수 있다”는 저자 장유정의 말은 대중가요 애호가인 나로서는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는 말이다.

 

 유행가 혹은 대중가요라면 고개를 돌리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자기가 엘리트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살기가 힘들고 세상이 혼란할 때는 한 곡조의 노래도 큰 위안이 되고 웃음거리도 던져주고, 용기도 준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연락선은 떠난다’와 같은 노래는 그 노래가 가진 보편적인 정서와 삶에 대한 진정성이 높기 때문에 듣는 사람들의 공감을 얻게 되는 것이 아닌가.

 

 ‘연락선은 떠난다’의 노랫말을 쓴 박영호도, 멜로디를 붙인 김해송도 찬바람 부는 이북 땅에서 이 세상을 하직하며 눈을 감았다. 무대 위에서 그 노래를 불러 청중을 눈물짓게 하던 장세정도 저 세상으로 간 지가 20년이 넘었다. 그 노래가 나온지 3년 후에 이 세상에 태어난 나는 올해 한국 나이로 80이 된다. 그러나 나보다 나이가 세 살이나 더 많은 ‘연락선은 떠난다’를 가끔 흥얼거리고 있다. (2019.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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