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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이 헤오시매
leed2017

 

님이 헤오시매 나는 전혀 믿었더니

날 사랑하던 정을 뉘 손대 옮기신고

처음에 믜시던 것이면 이대도록 설으랴

 

 조선의 거유(巨儒) 송자(宋子)로 불리는 송시열의 작품이다. 호는 우암(尤庵), 효종 임금의 스승으로 숙종 15년에 원자 책봉을 반대하다가 제주도로 귀양갔다. 숙종 15년 6월 재심을 받기 위해 서울로 압송되어 오다가 정읍에서 사사되었는데 향년 83세였다.

 

 님께서 나를 생각해준다기에 나는 그 말을 진심으로 믿었는데 이제와서 날 사랑하던 정을 누구한테 옮겼는고? 차라리 처음부터 나를 미워했더라면 이대도록 섧지는 않았을텐데.

 

 위의 우암이 지은 시조를 읽으면 요새 노래가 하나 생각난다. 윤항기가 노랫말을 써서 멜로디를 달고 김수희라는 가수가 부른 노래 ‘너무합니다’가 생각난다. 노랫말을 이렇다.

 

“마지막 한마디 그 말은/나를 사랑 한다고/돌아올 당신은 아니지만/진실을 말해줘요/떠날 땐 말 없이 떠나가세요/날 울리지 말아요/너무합니다/너무합니다/당신은 너무합니다”

 

 위의 시조는 남녀간의 애정을 노래한 것이지만 우암의 “님이 헤오시매…”는 남녀의 애정이라기 보다는 정치적 사랑, 그러니까 임금의 사랑을 받다가 그 사랑이 식어가는데 대한 통분을 적어논 것 같다.

 

 우암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온다. 우암은 몸집이 크고 입고 다니는 모습에 별 신경을 안써서 언뜻보면 촌노(村老)로 보였다 한다. 그가 회덕에 살 때 이조판서에 제수되어 서울로 가는 도중 어느 주막에서 점심을 먹고 있을 때였다. 그때 마침 어느 젊은이가 충청도 수사(水使) 벼슬에 임명되어 내려오는 길에 우암과 같은 주막에 들르게 되었다. 수사는 우암이 점심을 먹는 방으로 들어갔다. 젊은 수사는 “저기 저 늙은이는 충청 수사가 와도 인사가 없네…” 하고 시비를 걸었다. 젊은 놈이 수사에 올랐으니 이 세상에 자기가 제일 잘난 인물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이 말을 들은 우암은 잠시 고개를 들어 꿈뻑 눈인사를 하고는 먹던 점심을 계속 하는게 아닌가. 이때 수사의 말몰이꾼이 밖에 있다가 지금 저 방안에서 점심을 하고 있는 늙은이가 우암 송시열로 이조판서에 임명되어 서울로 가는 길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말몰이꾼은 이 사실을 방에서 점심을 기다리는 수사에게 귓속말로 알려주었다.

 

 그러나 이 젊은 수사는 태연히 우암을 보고 물었다. “늙은이는 어디 사는 누구인고?” “회덕 사는 송생원이라” “회덕에 살면 우암 선생을 알텐데 우암과의 촌수는 어떠한고?” “내가 바로 우암이며 지금 바로 상경하는 길이로다” “예게 이 늙은이, 내 비록 무인이나 어릴적부터 우암선생 문하에 출입하며 가르침을 받은 사람이거늘, 내 앞에서 대학자 우암 선생 행세를 하다니…. 내가 손을 좀 봐야겠으나 오늘은 가야할 길이 멀어 빨리 일어서야겠네.” 하고는 이졸을 불러 “점심은 다음 주막으로 미뤄야겠네” 하며 말을 타고 휑하고 떠나 버렸다. 우암은 그 기지와 배짱에 감탄하며 그가 떠나는 길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나중에 우암의 추천으로 그 젊은 수사는 통제사의 자리에 올랐다 한다.

 

 우암이 어떤 사람인가를 몇장에 요약하기에는 그는 너무 큰 인물이다. 노론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우암이요, 주자학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우암이 아닌가. 설명해 보자.

 

 인조반정을 계기로 정권을 장악한 서인은 반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공신세력과 이를 관망하던 세력으로 분리되었다. 효종, 현종 떄는 우암을 중심으로 서인들이 규합되었으나 숙종 때 이르러 다시 노론과 소론으로 갈라지게 되었다. 분당의 계기는 경신환국 때 남인 탄압에 대한 입장차이 때문이었다. 서인 노장파인 김익훈 등은 남인에 대한 강경한 탄압을, 서인의 소장파는 남인에 대한 온건한 탄압을 주장하였다. 결국 서인 노장파 우암 송시열을 중심으로한 노론과 서인 소장파 한태동을 중심으로 한 소론으로 갈라졌다. 노론의 대표적 인물은 송시열, 김만기, 김만중, 김석주, 김수항 등이 있고 소론의 대표적 인물은 남구만, 박세채, 박태보, 윤증, 한태동 등이 있다.

 

내 정령(精靈) 술에 섞어 님의 속에 흘러들어

구곡간장을 다 찾아 다닐망정

날 잊고 남향한 마음을 다 쓸어버리려 하노라

 

 내 정신과 혼이 술에 섞여 님의 배 속으로 들어가서 구곡간장이고 어디고 모두 돌아다니면서 님의 마음에 다른 님을 향한 마음이 조금 남아 있으면 모두 깨끗이 쓸어버리겠다.

 

 위의 시조를 지은이는 조선후기의 가객 정3품 절충장군을 지낸 김삼현이다. 벼슬에서 물러난 뒤로는 음풍농월(吟風弄月), 시 짓고 노래하는 것으로 세월을 보냈다. 시조 6수가 전하는데 모두 명랑하고 낙천적이다.

 

하늘이 높다 하고 발 저겨 서지 말며

땅이 두텁다고 마구 밟지 말을 것이

하늘 땅 높고 두터워도 내 조심하리라

 

 하늘이 높다고 해서 발꿈치를 돋우고 서지 말며 땅이 두텁다고 마구 밟지는 말 것이다. 하늘 땅 높고 두터워도 나는 조심조심하며 살아갈 것이다.

 

 위의 시조는 앞에 소개하였던 “내 정령 술에 섞어…”의 작자 김삼현의 장인이 되는 주의식이 지은 노래다. 항상 조심조심하여 걷는데도 함부로 하지 말고 땅을 디디는 데도 조심해서 디뎌야 한다는 교훈적인 시조다.

 

말하면 잡류라 하고 말 안하면 어리다 하네

빈한을 남이 웃고 부귀를 시기하는데

아마도 이 하늘 아래 살 일이 어려워라

 

 말을 하면 잡것이라고 깔보고 말하지 않고 입을 다물고 있으면 어리석다 하네. 가난하면 못났다고 비웃고 부귀하면 사람들이 시기한다. 아, 이 하늘 아래서 살아가는 일이 무척이나 어렵구나.

 

 위의 시조도 앞서 소개한 김삼현의 장인 주의식의 작품이다. 내 생각으로 요사이 세상이 많이 험해져 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위의 시조를 보면 시조가 탄생할 때도 말을 해도 탈, 입을 다물고 있어도 탈, 가난해도 탈, 부자라도 탈-. 한마디로 세상살이가 어려운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였던 것 같다. (202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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