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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사 올라보니
leed2017

 

송광사 올라보니 법당도 좋거니와

삼일천 솟는 물은 사시무궁 청결하다

아마도 호남 대찰은 예뿐인가 하노라

 

 전라남도 순천에 있는 큰 절 송광사를 가보니 법당도 훌륭하고 삼일천 물 맛도 사시 어느 때나 깨끗하고 청결하도다. 아마도 호남의 큰 절은 바로 이 절인것 같다.

 

 지은이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요 시조작가인 이세보이다. 이세보는 본관이 전주로 풍계군의 후사가 되어 경평군이라는 작호를 받았다. 1860년 외척 세도가의 미움을 받아 강진 신지도에 유배를 갔다가 조대비와 흥선대원군의 배려로 풀려났다.

 

 이세보는 안동 김씨 일파의 세도정치로 혼미했던 철종시대에 종친으로서 흥선대원군 이하응과 함께 가장 뚜렷한 인물이었다. 여주목사와 개성유수로 있을 때는 선정을 베풀어 백성들의 어려움을 살펴주는 착한 목민관이었다. 저서로는 ‘풍아’ ‘시가’ 등의 시조집이 있고 458수의 시조를 남겼다.

 

 이세보가 외척 세도의 미움을 받아 유배를 갔다는 말은 무슨 말인가? 세도정치란 소수의 가문이 권세를 독차지 하면서 정치, 경제, 사회를 좌지우지 하는 것을 말한다.

 

 조선의 대표적인 세도가문은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 그리고 반남 박씨이다. 안동 김씨의 대표적 인물로는 순조의 장인 김조순, 풍양 조씨의 대표 인물로는 헌종의 외할아버지였던 조만영, 반남 박씨의 대표적 인물로는 박종경을 들 수 있다.

 

 반남은 오늘날 전남 나주를 가리키는 말. 정조의 아들 순조가 왕위에 오르면서 외할아버지인 박준원이 자연스럽게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박준원은 정치에 깊숙히 관여하는 것을 극히 조심스러워했다.

 

 그러나 그의 아들 박종경은 달랐다. 조선시대에 반남 박씨에게 문과급제자만 모두 215명이었다 한다.(문과 시험은 3년에 한 번 시행되고 선발인원도 33명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고려하면 215명은 대단한 실적이라고 할 수 있다)

 

 평안도에서 홍경래가 난을 일으켰을 때 세도정치를 지적하면서 지목했던 사람이 김조순과 박종경 두 사람이었다는 것도 흥미로운 사실이다.

 

꽃 없는 호접 없고 호접 없는 꽃이 없다

호접의 청춘이요 청춘의 호접이다

아마도 무궁춘정은 탐화봉첩이 아닌가

 

 꽃에는 반드시 나비가 오고 나비 없는 꽃은 없도다. 나비는 곧 청춘이다. 아마도 끝없는 봄꿈은 꽃을 찾아가는 나비와 벌이라고 할까. 그러니 남자에 있어서 가장 큰 기쁨은 사랑하는 여자가 그리워 찾아갈 때가 아니겠는가. 지은이는 이세보이다.

 

 이세보가 당시 세도가의 미움을 받아 신지도에 유배를 갔다가 흥선대원군 이하응과 조대비의 도움으로 풀려났다는 얘기를 했다.

 

 철종이 후사도 없이 죽자 후계자 지명권은 왕실의 웃어른에 있었다. 당시 웃어른은 헌종의 어머니자 익종(효명세자)의 부인인 조씨(조대비)였다. 당시 풍양조씨인 조대비는 안동김씨 세도에 눌려 지내고 있었다. 이때 흥선군 이하응(영조의 증손인 남연군의 넷째 아들)은 조대비에게 은밀히 줄을 댔다. 자신의 12살난 아들 명복(고종)을 철종의 후사로 세우고 조대비가 수렴청정하는 계획을 은밀히 세웠다.

 

 철종이 왕위에 있는 동안 안동 김씨는 왕실과 종친에 온갖 위협을 가했다. 조금이라도 똑똑해 보이는 종친은 역모자로 몰려 숙청 당하기가 일쑤였다. 흥선군은 자신을 보전하기 위해 시정의 무뢰한들과 어울려 파락호(재산이나 세력이 있는 집안의 자손으로 재산을 몽땅 털어먹는 망나니) 생활을 했다. 이런 행동으로 조대비에 은밀히 연줄을 대어 아들을 임금으로 올렸다.

 

 이에따라 흥선군은 흥선대원군이 되었다. 대원군이란 임금의 아버지에게 붙이는 호칭인데 흥선대원군은 살아 있으면서 대원군의 칭호를 받은 단 한사람이다.

 

 얘기가 나온 김에 철종에 대해서도 몇마디 붙여야겠다. 철종은 사도세자의 증손자이자 정조의 이복동생 은언군의 손자다. 사도세자가 죽고 정조가 세손이 되자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아내었던 세력들은 정조가 왕위에 오르면 자기들이 위치가 불안할 것이 염려되어 새 왕을 추대하려는 음모를 꾸몄다.

 

 이 일이 발각되자 정조의 이복동생 은전군은 자결하고 은언군과 은신군은 제주도에 유배되어 은신군은 병사하고 은언군은 강화도로 옮겼다. 은언군에게는 아들 셋이 있었는데 셋째 아들 원범이 (어느날 갑자기) 양자로 입적되어 왕통을 이으라는 교지가 내려와서 임금 자리에 앉게 되니 이 청년이 곧 철종이다.

 

 원범은 강화도에서 나고 일자무식의 농부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비꼬아서 ‘강화도령’이라고 불렀다. 19살에 느닷없이 왕이 되는 바람에 처음에는 순원왕후(순조의 비)가 수렴청정을 했다.

 

 한편 안동김씨 세력은 자신들이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임금을 올려놓고 풍양 조씨에 일시적으로 넘어갔던 권력을 되찾으려 했다. 철종은 임금이 되어 점차 학문을 가까이 하면서 정치적 역량을 기르는 것을 우려해 안동 김씨 세력은 후궁과 궁녀를 계속 들여보냈다고 한다.

 

 술과 여자에 빠진 철종은 재위 14년, 33세를 일기로 세상을 하직했다. (202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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