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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산책-십년을 경영하여
leed2017

 

십년을 경영하여 초려삼간 지어내니

나 한간 달 한간에 청풍(淸風) 한 간 맡겨두고

강산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 두고 보리라

 

 십년을 벼르고 별러 초려삼간 장만하니 한 칸은 내가, 또 한 칸은 달이, 나머지 한 칸은 맑은 바람이 차지하게 되었네. 이 좋은 강산은 둘 데가 없으니 우선 초가집 주위로 그냥 놔 두는 수밖에 없구나. 그야말로 청빈낙도(淸貧樂道)의 삶을 눈으로 보는 것 같은 기분이다.

 

 이 노래의 저자는 성낙은의 ‘고시조 산책’에는 면앙정(?仰亭) 송순으로, 김종오의 ‘옛시조 감상’에서는 무명씨로, 이태극의 ‘우리의 옛시조’에는 사계(沙溪) 김장생으로,  내가 배우기는 면앙정 송순으로, 제각기 다르게 기억하고 있다. 시조 한 수를 두고 작가가 둘이 넘는 것은 위의 시조뿐이 아니다. 성낙은이나 김종오나 이태극도 ‘청구영언’이나 ‘해동가요’나 ‘가곡원류’ 같은 책을 참조했을 것이니 이 책에서는 확실한 저자가 나타날 때까지 무명씨로 남겨두는게 가장 무난할 것 같다.

 

세상에 약도 많고 드는 칼이 있다 하되

정(情) 벨 칼이 없고 임 잊을 약이 없네

아마도 이 두 일은 후천에 가 하리라

 

 세상에는 병 고칠 약도 많고 잘 드는 칼도 있지마는 정(情)을 벨 칼이 없고 임을 잊어버리게 할 약이 없네. 아마도 이 두 가지 일은 죽고나서 저 세상에 가서나 할까. 어느 무명씨의 노래다.

 

사람이 사람 그려 사람 하나 죽게 되니

사람이 사람이면 설마 사람 죽게 하랴

사람아 사람을 살려라 사람이 살게

 

 그리워 죽겠으니 어서 빨리 와서 살려내라는 아우성이다. 이 44자 밖에 안되는 시조에 사람이란 단어가 음악의 론도(Rondo) 형식으로 9번이나 나오는게 특색이다. 그러니 사랑의 119(긴급 구호차량 요청)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집 방석 내지 마라 낙엽엔들 못 앉으랴

솔 불 켜지 마라 어제 진 달 돌아온다

아이야 박주산채일망정 없다 말고 내어라

 

 집방석 내 놓을 필요가 없다. 낙엽에 앉아도 좋은데 방석이 무슨 필요가 있겠느냐. 관솔 불 켜지 마라 어제 진 달 돌아온다. 아이야, 맛이 좋지 않더라도 무슨 상관이겠느냐, 술과 산나물이 있으면 없다 말고 얼른 내 오너라.

 

 위의 시조 작가는 한호이다. 한호의 호는 석봉(石蜂), 진사시에 합격하여 가평 군수를 지냈다. 글씨로 출세하여 사자관(寫字官)으로 외교문서를 도맡아 썼다. 서예 유작으로는 ‘허엽 노래비’ ‘서경덕 신도비’ ‘기자묘비’ ‘선죽교비’ 등이 있다. 글씨의 신속, 정확성이 요구되는 사자관 출신이라 그런지 석봉 글씨는 예술성이 다소 부족하다는 세평이 있다.

 

 ‘한호’하면 사람들은 “어디서 들어본 이름인데…” 하다가도 ‘한석봉’ 하면 ‘아, 그 명필’ 하고 대번에 누군지 안다. 내가 초등학교 때 읽은 한석봉에 대한 이야기는 대략 다음과 같은 것으로 기억한다.

 

 집에서 30여리 떨어진 곳에 글씨를 배우러 가서 집 생각이 너무 간절한 나머지 석봉은 글씨공부를 마쳤다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아들 공부를 위해서 떡을 팔고 다니던 석봉의 어머니는 “네가 글씨 공부를 마치고 왔다니 반갑다. 어디 나와 시합을 한 번 해보자. 너는 종이에 글씨를 쓰고 나는 떡을 썰겠다” 하고는 불을 껐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석봉은 글씨를 쓰고 어머니는 떡을 썰었다. 모두가 끝나자 어머니는 불을 밝혔다. 어머니가 썰은 떡은 하나 같이 같았으나 석봉이 쓴 글씨는 ‘삐뚤삐뚤’ 일정하지 못하고 제멋대로였다. 어머니는 “아직 글씨가 멀었구나. 당장 돌아가서 글씨 공부를 더 하고 오너라”며 아들을 글방으로 돌려 보냈다.

 

 내 생각으로는 예술은 석봉 어머니의 떡 썰기처럼 꼭 같은 크기의, 마치 공장에서 기계로 뽑아낸듯한 같은 크기의 떡을 써는 게 아니라 예술적 표현 욕구에 따라 크기가 다르고 색깔도 다른 기발한 떡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한석봉은 커서 사자관(寫字官)이 되었다. 사자관이란 글씨를 써서 문서로 보관하는 것이었으니 그의 글씨가 예술성이 다소 부족하다는 세평도 이해야 간다.

 

편지야 너 오느냐 네 임자는 못 오더냐

장안 도상 넓은 길에 오고 가기 너 뿐이라

이 후란 너 오지 말고 네 임자만…

 

 편지를 기다리는, 아니 님을 기다리는 어느 무명씨의 노래다. 아마도 편지는 연인으로 부터 오는 것을 눈이 빠지게 기다리는 것 같다. 편지야 왜 네 주인은 오지 않고 너만 왔느냐. 서울 장안에 넓고 큰 길을 오가는 것은 편지 네 뿐이구나. 이 후에도 너는 오지 말고 네 주인만 오면 오죽 좋겠느냐.

 

 컴퓨터가 나오고 나서는 나에게 오는 편지는 거의 없다. 모든 통신이 전화, 아니면 전자우편으로 오가는 세상. 이런 것들도 나에게 온 ‘편지’라고 우기기엔 낮간지럽지만 물세, 전기세, 전화, 텔레비전세 같은 각종 고지서가 수북히 쌓인다. 한번은 내 육필(肉筆)로 답을 했더니 상대편에서 육필 답장을 받게 되어 황공하다는 호들갑까지 왔다. 이러다가는 앞으로 수십 년만 지나면 손으로 쓰는 글씨는 아주 영영 사라지지 않을까.

 

꽃이면 다 고우랴 무향이면 꽃 아니요

벗이면 다 벗이랴 무정(無情)이면 벗 아니라

아마도 유향유정 키는 임뿐인가 하노라

 

 꽃이라고 다 고운 것은 아니고 향기가 있어야 꽃이라 할 수 있고, 친구라고 다 친구가 아니요 정(情)이 없는 사이면 친구가 아니다. 아마도 향기도 있고 정도 있기는 내 임 밖에 더 있겠나.

 

 자기 님이 사람 향기도 나고 정(情)도 있다고 은근히 뽐내는 어느 무명씨의 시조다. 그 ‘님’이라는 녀석과 사이가 좋은 때에야 향기도 있고 정(情)도 생겨나는 것. 아무리 님이라고 해도 마음이 한번 뒤틀리면 향기가 어디 있고 정이 어디 있단 말인가?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는 부부들의 표정을 보라. 이들 사이가 한창일 때는 신랑신부 모두 향기와 정으로 터질 것 같은 기쁨이다. 1년만 지나면 그 뿜어나오던 향기와 정은 반으로 줄어든다고들 하지 않는가? 이들 부부는 애정교환이 4년만 되면 바닥을 치고 사느니 못사느니 갈등이 많은 것이다.

 

 누가 만들어냈는지 모르나 이런 우스게 소리가 있다. 미국 뉴욕에 가면 크고 높은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 있다. 그 높은 건물 꼭대기에서 어느 녀석이 창문을 열고 밑으로 내리 뛰었다. 막 땅으로 떨어져 내려오는데 또 어느 녀석이 밑에서 창을 열고 지금 막 밑으로 떨어지는 녀석을 보며 물었다. “기분이 어때?” “아직까지는 기분 만점”.

 

 사람의 감정이란 것도 마찬가지. 10분 후에 어떻게 될지 모르면서 웃고 떠들며 즐거워 한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는 신혼부부들이여, 살아 보시오. 그 사랑스럽게 보이던 그 얼굴, 다정하게 보이던 그 얼굴, 그다지도 훤칠하게 보이던 그 얼굴도 어딘지 꾀죄죄하고 무심하고 첨지 같이 보일 때가 있을 것입니다. (202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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