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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산책- 나비야 청산가자
leed2017

 

나비야 청산 가자 범나비 너도 가자

가다가 저무거던 꽃에 들어 자고 가자

꽃에서 푸대접 하거든 잎에서나 자고 가자

 

 내가 무명씨의 작품으로는 수작으로 꼽는 시조다. 그야말로 시조의 주인공은 물따라 구름따라 살아가는 운수행각(雲水行脚)의 수도자인가, 억지를 부리지 않고 순리대로 살아가는 소박하고 넉넉한 자연인의 모습이 엿보인다. 떠도는 말을 빌린다면 아직 한 번도 성형 전문의사의 칼날이 그의 몸에 닿은 적이 없는 100% 자연인의 삶이라 할까.

 

 이 시조는 우리 민요 ‘아리랑’과 비슷해서 신이 나서 부르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고 신바람이 나고, 그 반대로 기분이 울적하여 마음이 무거운 상태에서 부르면 마음이 납덩이처럼 무거워지고 우울하게 된다. 꽃에서 푸대접하면 잎에서라도 자고 가겠다니 이는 우리 백성이 수천년을 당한 서름, 아무리 발버둥 쳐봐야 말짱 헛것이니 순종하고 살아가자는 관습에 젖은 버릇이지 싶다.

 

한숨은 바람이 되고 눈물은 세우 되어

님 자는 창밖에 불면서 뿌리고져

날 잊고 깊이 든 잠을 깨워볼까 하노라

 나를 잊고 깊은 잠에 떨어진 님아 내 한숨은 바람이 되고 눈물은 가랑비 되어 나를 잊고 깊이 잠을 자고 있는 님의 창밖에 뿌려댈테니 그리 알아라.

 날 잊어 버리고 잠만 자는 녀석, 어디 네가 잠이나 편하게 잘 줄 아느냐. 어디 내가 이기나 네가 이기나 한 번 해보자. 여자의 마음 치고는 결코 곱다고는 할 수 없는 마치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귀신의 심보이다. 이 정도 결심이 굳은 연인과는 아예 인연을 맺지 않는 것이 현명한 일인 것 같다.

 좀 부풀려 말하면 남녀 관계에서 한 쪽이 정말 싫다 하면 그만인데 가만 두질 못하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싫어하는 감정을 되돌리려는 사람들을 보면 이해가 잘 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님이 나를 잊어버리고 깊은 잠에 빠졌다면 가랑비가 되어 유리 창문을 두드린다거나 귀뚜라미나 두견새가 되어 잠을 못자도록 울어대겠다는 것도 위의 시조와 비슷한 심술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술아 너는 어이 달고도

먹으면 취하고 취하면 즐겁고야

인간의 번우한 시름을 다 풀어볼까 하노라

 

 달고도 씁쓸한 술을 먹으면 취하고 취하면 즐겁구나. 우리가 가진 걱정거리, 모든 시름을 다 잊게 해주는 술이여 오늘은 실컷 마시고 일만 근심 걱정 다 잊어보련다. 어느 무명씨의 작품이다.

 

술을 취케 먹고 두렷이 앉았으니

억만시름이 가노라 하직한다

아이야 잔 가득 부어라 시름 전송 하리라

 

 술을 마시고 빙 둘러 앉았으니 일만 근심이 사라지네. 아이야 한잔 가득 부어라. 이 근심 잊어버리게. 양파(陽坡) 정태화의 시조다.

 

 양파 정태화는 인조 때 우의정,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을 5차례나 지냈다. 양파에게는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전해온다. 이야기는 이렇다.

 

 양파가 하루는 자기 사랑방에서 동생 지화와 함께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청지기로 부터 우암(尤庵) 송시열 대감이 왔다는 전갈이 왔다. 우암과 양파와는 당파도 다르고 동생 지화는 우암을 무척 싫어하는 사이였다. 아무튼 우암이 찾아왔다는 말에 동생 지화는 “형님, 내 그 자를 보기 싫으니 다락에 올라가 있다가 그가 가면 내려 오겠습니다”며 다락으로 올라가 버렸다.

 

 양파와 우암은 10여 분이 넘도록 서로 아무 말이 없이 앉아 있었다(양파와 우암 둘 다 워낙 말수가 적은 사람들이었다). 다락에 있는 지화는 아무리 기다려도 방에서 말하는 기척이 들리지 않자 우암이 떠난 줄(잘못)알고 “형님 그 자식 갔습니까?” 하고 소리를 내질러 버렸다. 입장이 난처해진 양파는 “아, 아까왔던 과천 산지기는 돌아가고 지금 우암대감이 와 계시네” 하고 둘러댔다.

 

 우암이 떠나고 난 후에 양파는 동생에게 “나는 네가 내 뒤를 이어 영의정에 오를 줄 알았는데 오늘 보니 그럴 인물은 못 되는구나” 하였다고 한다(동생도 나중에 영의정에 올랐다).

 

 위의 시조 세 수는 모두 술을 먹으니 그렇게 좋다는 음주 찬사이다. 술을 먹으니 일만근심을 잊겠다는 것은 저 난세(亂世)의 영웅 조조(曹操)가 남긴 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손종섭의 번역이다)

 

술을 마시면 마땅히 노래를 부를 것이니

사람의 한 평생은 과연 얼마나 되나?

무엇으로 이 근심 풀 것인가?

오직 술이 있을 따름이다.

 

술깨면 시름이 많고 날 저물면 고향이 생각나니

내 언제 시름없이 고향으로 돌아갈고

아마도 이내 정회(情懷)는 언지무궁(言之無窮)인가 하노라

 

 술깨면 시름이 많고 날 저물면 고향이 생각나니 내 언제 시름없이 고향으로 돌아갈 날이 있을까. 아마도 나의 이 정회(情懷)는 말로는 다 표현하지 못할 것인가 보네.

 

 박양좌라는 사람의 노래인데 그의 생몰연대에 대한 기록은 없다. ‘청구영언’에 그의 작품 54수가 전한다. 박양좌는 해남에서 태어나 평생 산수의 경치를 찾아 노닐고자 뜻을 세웠으나 자신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고만 적혀 있다.

 

하늘에 뉘 다녀온고 내 아니 다녀온다

팔만 궁녀를 다 내어 뵈데마는

아마도 내 님 같은 이는 하늘에도 없더라

 

 어느 무명씨의 노래다. 하늘에 누가 다녀왔느냐, 내가 다녀오지 않았느냐. 8만이나 되는 궁녀를 다 니게 보여주었지마는 아마도 내 님 같은 어여쁜 임은 그 중에 없더라.

 

 내 님이 제일 예쁘다는 것을 확인하려고 구테여 하늘까지 가서 8만 궁녀를 볼 것까지는 없다. 요새 세상에서는 나라 안 뿐이 아니라 온 세계에서 예쁘기로 이름난 여인을 텔레비전을 통하여 볼 수 있지 않는가.

 

 이러나 저러나 하늘에 있는 8만 궁녀보다는 자기 님이 제일이라는 데는 단순히 얼굴만 가지고 하는 말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얼굴 뒤에 도사리고 있는 마음씨를 보고 궁녀보다는 낫다, 못하다를 결정했을 것이다. 아무리 얼굴이 빼어나게 잘 생겼더라도 늙으면 윤기가 빠지고 바스라지는 법.

 

 그러나 마음의 아름다움이야말로 세월이 흘러가도 변치 않는 것. 그러나 이 시조를 지은이에게 물어 볼 수도 없다.

 

 또 한가지 지은이에게 드리는 마지막 충고 한마디. 이 세상에 좋다, 나쁘다, 멋있다, 멋대가리 없다, 잘 생겼다, 못 생겼다 같은 말은 그것을 보고 판단하는 사람이 보는 눈에 달렸다는 것. 즉 제 눈에 안경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도록-. (202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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