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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묘지
leed2017

 

 ‘그 무덤들만큼이나/ 무거운 하늘 아래/ 풀피리 잃어버린/ 옛 동산은 잠이 들고/ 서라벌 천 년을 돌아/ 봄은 다시 왔구나’


 내가 좋아하는 시인 백수(白水) 정완영의 탄식이다. 나는 어떤 날이면 별다른 이유없이 공동묘지를 간다. 우리가 사는 콘도미니엄에서 자동차로 한 10여 분만 가면 공동묘지가 있고, 죽으면 내 육신을 태운 재가 담긴 항아리를 묻을 자리도 이 공동묘지에 사 두었다. 그런데도 막상 공동묘지를 갈 때는 내가 묻힐 공동묘지 보다는 한국 교포들의 유택(幽宅)이 많은 노스욕 공동묘지(North York Cemetery)를 찾는다. 


 그 공동묘지에 가면 여기저기 50기(基)가 넘는 한인 교포들의 묘비들이 마치 한국의 옛날 초가집처럼 옹기종기 모여 있다. 교회에서 장로나 권사직을 지낸 사람들은 000장로니 000권사니 하는 교회 직분을 묘비에 새겨 넣은 것을 볼 수 있다. 장로나 권사 직을 하늘나라에까지 가지고 가면 천당에 들어가기가 식은 죽 먹기인 줄 아는 모양이다.


 이곳 북미 대륙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죽은 사람의 이름 말고 다른 직함은 좀처럼 적지 않는다. 예로 토론토 초대 시장을 지낸 윌리엄 맥켄지(William Mackenzie)도 이름만 달랑 적었지 이름 뒤에 시장이라는 말은 붙이지 않았다. 미국의 저명한 상원의원 케네디의 무덤도 마찬가지. 그냥 에드워드 케네디(Edward Kennedy)지 상원의원 케네디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박사, 교수, 변호사, 의사, 장로, 권사 따위가 무슨 큰 벼슬이라고 생각하는지(설사 벼슬이라 한들 죽고 나서야 그게 무슨 소용이 있는가!) 통상적으로 불리는 직함이란 직함은 다 적는다. “내가 이래봬도 뭣이랑께(I am somebody!)”라고 무덤 속에서도 외치고 싶도록 한(恨) 서린 명예욕이 꿈틀거리는 모양이다.


 캐나다 대사를 지낸 진필식 대사 부부도 나란히 누워있다. 묘석에는 대사란 말은 없고 진필식이란 이름만 적혀 있다. 역시 격(格) 있는 사람…. 


 벌써 25년이 넘었다. 우리가 토론토에서 2시간 걸리는 런던이라는 도시에 살고 있을 때다. 어느 주말 토론토에 놀러왔다가 교민들 상가가 많은 블루어(Bloor)가(街) K화랑에서 행서로 쓴 힘찬 현판 글씨 하나가 눈에 띄어서 샀다.


 得好友來如對月 有奇書讀勝看花(좋은 벗이 오는 것은 달을 대하는 것 같고/ 좋은 책을 읽는 것은 꽃을 보는 것보다 낫다)라는 싯구. 낙관을 보니 진필식 대사의 글씨였다. 집에 들고 와서 10년 넘게 우리집 서재 벽에 걸어두었다. 2006년에 은퇴를 하고 지금 살고 있는 콘도미니엄으로 이사를 올 때 걸어 둘 공간이 마땅치 않아 런던에서 세의(世誼)가 두터운 P형 댁에 기념으로 주고 왔다. 


 붓을 들었던 진대사는 선계(仙界)로 가고, 내게 현판을 팔았던 K화랑도 없어지고, 그 화랑 주인, 마음씨 좋은 K씨도 간단 말도 안남기고 토론토를 떠나 버렸다.


 공동묘지에 가서 ‘인생은 즐겁다’거나 ‘힘찬 내일을 약속’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반대, 즉 산다는 게 별 것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드는 곳이 공동묘지다. ‘인생이 허무하다’는 생각이 뼛속까지 스며드는 때는 장례식장에서 일 것이다. 


 묘지에서 느끼는 허무감은 장례식장에서 느끼는 그것보다는 조금 더 순화(純化)된 상태. 즉 장례식장에서는 망자(亡者) 한 사람에 집중된 회억(回憶)일 때가 많지만 공동묘지에서는 일반적이고 광범위한 허무감이 연기처럼 온 몸을 휘감는다. 


 또 공동묘지에서는 봄이면 꽃이 피고, 여름이면 비바람 불고, 가을이면 단풍잎 굴러가는 일 년 사계절을 살아있는 우리와 함께 보낸다는 친근감이 배어 있는 곳. 공동묘지에서 ‘나도 언젠가는 저기 가서 드러누울 것’을 생각하면 그 친근감은 배로 늘어나는 것이다.


 무덤 얘기가 나오면 영랑(永朗) 김윤식의 4행시를 빼놓을 수 없다. 대학교 3학년 때, 그러니까 지금부터 꼭 50년 전이다. 시(詩)가 마음에 들면 베껴 둔 옛 공책을 뒤져보니 다음 4행시가 튀어 나왔다.

 


 ‘좁은 길가에 무덤이 하나/ 이슬에 저지우며 밤을 새인다/ 나는 사라져 저 별이 되오리/ 뫼 아래 누어서 희미한 별을’
 천길 만길 외로움뿐인 공동묘지. 이제 외로움이 버릇이 된 이 평원에 싸락눈이 뿌리고 찬바람이 분다. 내일이면 또 해가 솟아오를 것이다. (20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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