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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와 고향
leed2017

 

 C씨, H씨, K씨, M씨, 그리고 우리 부부 이렇게 다섯 가족. 모두 10명이 자리를 같이한 적이 있다. 좌중 이야기는 단연 전날 저녁에 있었던 H씨의 음악회였다. K는 그 음악회에서 내가 노랫말을 쓰고 H가 곡을 붙인노래 두 곡을 연달아 불렀기에 이야기는 자연히 그의 ‘전보다 훨씬 더 나은’ 노래 솜씨에 대한 칭찬 일색이었다. K는 노래 부르는 것을 무척 좋아해서 무대에서 노래를 부른지 20년이 넘었다.


 나는 장난삼아 K를 몇십 년 전 예술가곡계를 휩쓸었던 세 사람의 테너에 비유해서 ‘3인의 테너(three tenors)’라고 부른다. K에게는 무척 영광스러운 장난이다. 사람들이 그가 무대에서 노래를 부를 때마다 ‘이전에 비해서 훨씬 낫네요”하는 칭찬을 했으니 그 말이 정말이라면 지금쯤은 국내 정상급 테너가 되고도 남았을 것이 아닌가. 


 K도 나처럼 남의 칭찬에 약하디 약한 사나이. ‘잘했다’는 말 한마디에 속으로 기분은 뛸 듯이 좋겠지만 그래도 겉으로는 별 것 아닌 척 덤덤한 표정으로 남아 있으려고 애쓴다.


 K는 17년 전, 내가 처음으로 ‘이동렬 색소폰의 밤’을 할 때 테너 가수로 우정 출연을 해준 적이 있다. 이때 무대에 나와서 갑자기 머리가 가려운지 머리를 벅벅 긁어대던 사람이 H의 음악회에서는 확고부동한 테너가수 자세로 자신만만하게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니 ‘Practice makes perfect(배우기보다는 익혀라)”라는 중학교 때 배운 영어 격언이 생각났다. 


 머리 긁는 것으로 흠집 내려는 데 대한 그의 ‘반격’을 따르면 나도 마찬가지. 소위 색소폰 연주를 한다는 사람이 무대로 물을 한 컵 들고 나와 꿀꺽 꿀꺽 붕어처럼 마셔대더라는 것. 좋다. 나야 목이 타서 그랬겠지만 K는 무대 위에서 왜 그리 머리가 가려울까? 이제는 둘 다 그런 것쯤은 옛날 이야기로 돌린다.


 그런데 K는 그날 저녁에 내가 수필에서 고향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하는데 좀 다른 주제, 이를테면 사랑 같은 것에 대해 쓰면 어떻겠느냐는 제의를 해왔다. 내게 이 말은 대중가요를 부르는 어느 가수에게 오페라 아리아를 부르는 게 어떠냐는 말로 들린다. 사랑도 지칠 줄 모르는 이야기이긴 하나 고향도 마찬가지다. 내게 마음이 더 끌리는 소재는 역시 고향이다. 마음이 덜 끌리는 소재로 글을 쓸 때는 억지로 꾸며야 한다.


 조사를 해보진 않았지만 수필 쓰는 사람이 책을 내면서 자기 고향에 대한 그리움 한 편 없는 수필집을 내는 이는 없을 것이다. 이 생각을 조금만 확대하면 고향은 곧 문학의 산실(産室)이 된다. 내가 좋아하는 백수(白水) 정완영 시인은 30수(首)가 넘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시를 썼다. 그의 아호 백수(白水)도 고향인 추풍령에 맞닿은 황악산 아래에 있는 김천(金泉)의 천(泉)자를 따로 떼서 백(白) 수(水)가 되었다.


 나는 고향생각을 많이 한다. 고향의 들과 산을 뛰어다니고 여름이면 낙동강에서 미역 감고 고기 잡던 천진무구한 유년시절을 어찌 잊을 수가 있으랴. 내가 고향을 남보다 더 그리워해야 할 이유는 없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남보다 좀 더 심하다면 그저 단순한 산골에서 자라 생각할 대상이 남보다 많지 않아서 그럴 것이다.


 고향도 사랑 같아서 마음속에서 좀처럼 떠나질 않는다. 그러나 막상 가보면 시들하다. 어느 대중가요 가사처럼 ‘헤어지면 그립고 만나보면 시들한’것이 고향이다. 고향이라고 가보면 온통 슬픈 회억(回憶)뿐이다. 같아 살던 식구들이 보이지 않고, 강 건너 어릴적 동무 창환이가 없는 공간은 텅 빈 공간, 회억뿐이다. 회억은 나는 슬프게 한다. 그러나 떠나면 또 다시 그리워진다.


 고향 얘기가 나온 김에 백수이 시 한 수를 적는다.


‘세월에 핑계가 많아/ 돌아 못 간 수 삼 년에/ 더러는 이미 산자락/ 숙과(熟果)처럼 떨어지고 생각만 고향 까치집/ 동그맣게 걸려 있다’ (20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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