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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채기
leed2017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으로 평생 재채기를 하지 않고 산 사람은 없지 싶다. 일단 재채기가 걸려서 ‘에취’가 터지는 순간, 그 순간이란 것이 1초도 되지 않는 찰나에 지나지 않지마는, 그것은 영원으로 이어지는 무상무념(無想無念)의 세계, 망아(忘我)의 경지다.


 생리적으로 재채기는 비강(鼻腔)에 있는 점액, 이물(異物) 등의 해로운 물질이 속기관에 들어가지 않도록 막기 위해서 일어나는 현상으로 콧속이 간질간질하다가 ‘에취’하고 큰 기운을 내뿜는 신체 동작에 불과하다. 재채기의 ‘즐거움’은 ‘에취’가 일어나기 전 십 분의 일 초, 아니 백분의 일 초 전에 시작되어 ‘에취’가 터질 때까지 이르는 쾌감이랄까 기대감이다. 이 재채기가 터지는 순간에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모든 세상만사는 배후로 들어가고 ‘에취’만 남는다. 


 재채기 하는 순간에 어찌 남북대화, 핵실험, 개성공단, 노무현의 대화록, 사대강 공사 같은 굵직굵직한 일을 걱정하며 성가연습, 딸에게 사준다고 약속한 강아지, 친구와의 약속같은 일에 신경을 쓸 것인가. 이 세상 모든 것이 수면 아래로 잠수하고 마는 것을… ‘에취’ 하는 순간이야말로 아무 보이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두려운 것도, 놀라는 것도, 보고 싶은 것도 없는 지고지순(至高至純)의 경지, 찰나의 망아(忘我) 경지이다. 만일 천당에서 재채기의 ‘에취’ 순간을 무한대로 연장해 준다고 하면 나는 지금 당장 천당행을 자원하겠다.


 사람은 일생동안 재채기를 몇 번이나 할까? 내가 앞으로 할 재채기가 얼마나 남았는지는 모르지만 그 재채기를 모아서 한꺼번에 해버릴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도 재채기를 하는지 나는 모른다. 한 번도 보질 못했다. 또한 아내처럼 재채기를 했다 하면 두 번 연달아 하는 사람을 보면 바로 옆에서 폭발음을 듣는 것이 좀 성가시긴 해도 속으로는 얼마나 시원할까 몹시 부럽다. 


 한 가지 이상한 것은 결혼식이나 장례식 같은 엄숙하게 행동해야 할 자리에서는 재채기를 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주례 앞에 선 신부가 갑자기 천정을 멍하니 노려보다가 ‘에취’하고 재채기를 하는 장면을 상상해보라.


 인간의 감정의 극을 경험하는 재채기 말고도 또 한 가지가 있다. 섹스를 할 때 사정 직전의 절정감, 영어로는 클라이맥스다. 섹스의 절정감과 재채기는 분명 비슷한 데가 있다. 


 첫째 둘 다 그것들이 일어나는 순간에 짜릿, 아득하고 구름 위를 둥둥 떠가는 것 같은 망아감(忘我感)이 존재한다. 재채기는 섹스의 절정감보다 시간으로는 더 짧지 싶다. 섹스의 절정감은 2~3초는 되지만 재채기는 0.1초도 되지 않는 것 같다. 콧속의 간질간질에서 거의 동시에 터지는 ‘에취’로 끝난다. 


 둘째, 둘 다 코카콜라를 마실 때처럼 뒤에 남은 여운이 그리 길지 않다. ‘에취’ 뒤에 오는 마음의 고요와 안정은 내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평상시로 돌아온다. 이에 반해 섹스의 절정감은 여운이랄까 파장이, 특히 여자의 경우, 좀 더 길다는 주장이 있다. 


 셋째 재채기를 하는 사람이나 섹스의 절정감이나 그것을 느끼는 감각적 쾌감은 이명(耳鳴) 처럼 본인 이외에는 느낄 수가 없다.


 조물주에 탄원서를 낸다고 하면 나는 인간에게 재채기의 ‘에취’ 시간을 10배로 늘려주고 섹스의 절정감도 20배 정도 더 늘려달라고 하고 싶다. 아, 섹스의 즐거움은 봄꽃 지듯 가버렸다. 늙어서 재채기가 줄어든다는 얘기는 못 들었으니 내 재채기 마일수(mileage)는 아직 좀 남아있지 싶다. 하루종일 앉아서 재채기를 하고 또 하고 평생 할 재채기를 한 자리에서 다 할 수는 없을까? 권투나 레슬링 같은 흥분과 긴장이 높은 운동은 늙은이들의 심장에 무리가 가니 가급적 피해라, 이것도 피하고 저것도 피해라, 하지 말라는 게 왜 이렇게 많은가. 


 옛날 같으면 이런 충고는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치부해 버렸다. 그러나 이제는 천명(天命)을 거역하고픈 욕심 때문에 이런 충고를 대하는 태도가 이전과는 달라졌다. 그러다 보니 내 즐거움이 어디에서 오랴? 재채기나 하고 또하고, 재채기 하는 기분으로 살며 망아(忘我)의 상태로 살아가고 싶다. (201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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