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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의 미적분(微積分)
leed2017

 

 이 세상에 태어나서 세상살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자기 자신에 대해 일종의 착각을 한다. 여기서 말하는 착각이란 그 범위가 퍽 넓은 것으로 자기 분수(처지나 현실)에 넘치는, 비(非)현실적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의 갖가지 야망이나 희망, 혹은 꿈도 포함된다. 예로, 나이 60인 어느 고위공직에서 은퇴한 사람이 ‘값 비싼 새 자동차를 하나 살까한다’고 했을 때는 그 목적달성이 비교적 쉽고 도달 가능성이 높으니 많은 경우 새 자동차를 갖는다는 것은 희망이요 꿈이다. 그러나 같은 나이에 연금으로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이 ‘값 비싼 새 자동차를 하나 살까한다’라고 한다면 그 목표가 지금 처한 그의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느니 비현실적이라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니 희망과 공상을 구별하기 위해서는 그가 놓인 처지와 목표를 저울질해봐야 한다.


 테일러(E. Taylor) 교수 같은 인지심리학자들에 의하면 사람은 타고날 때부터 자기 자신의 성격을 무조건 좋게만, 긍정적으로 보려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예로 친절이나 정직성 같은 덕목에서는 남들이 자기를 보는 것에 비해 자기는 훨씬 더 많이 가진 것으로, 거짓말이나 사기성 같은 부정적 특성에 있어서는 남들이 자기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보다 자기는 훨씬 더 적게 가진 것으로 생각한다는 말이다. 


 둘째 자기 주위에 일어나는 일들을 통제(control) 할 수 있고 이들 일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너무 자신하는 것도 많은 경우 착각이다. 자동차 사고나 질병에 걸리는 것 같은 부정적 사건이 일어나는 데 자기가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은 사실상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자기는 이들이 일어나고 일어나지 않는 것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셋째 자기 앞에는 좋은 일은 남들보다 더 많이, 나쁜 일은 남보다 더 적게 일어날 것이라고, 한 마디로 내 앞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금빛찬란한 경사뿐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착각이다. 이런 착각은 이 세상에 몰아치는 비바람에서 ‘나(ego: 自我)를 외부의 위험에서 막아주고 감싸준다는 의미에서 ‘긍정적 착각’이라고 부른다. 이들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정상적인 사람일수록 이런 류의 착각을 많이 하고 우울증이나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은 이런 착각이 적다고 한다.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정신의학에서 정신적으로 건강한 모델은 착각을 적게 하고 자기가 남에게 어떻게 보이는지를 정확하게 알고, 이를 받아들이는 것이었는데 건강한 사람은 건강하지 못한 사람보다 자기를 끌어올리는 쪽으로 착각을 더 많이 한다니 퍽 놀라운 주장이다.


 지나친 착각은 기회를 놓치게 한다. 자기의 능력에 도취해서일까 긍정적 착각을 많이 하는 사람든은 기회가 왔을 때 그것을 잡지 못하고 놓쳐 버려 화를 당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는 역사책을 훑어보면 헤아리기도 어려울 만큼 자주 눈에 띈다. 이덕일 교수가 지적한 몇 사람을 소개해 보자.


 고종의 생부(生父)요 민비의 시아버지인 흥선대원군 이하응도 착각 때문에 그의 인생을 망쳤다. 그는 12살 어린 나이에 갑자기 왕위에 오른 아들 고종이 성인이 되었을 때 임금 아버지로서의 권력을 더 이상 행사하지 말고 조용히 뒤로 물러났으면 세상 사람들 칭찬이 자자했을 것이다. 임진왜란에 잿더미가 된 경복궁을 2년 만에 다시 짓고, 전국의 서원을 47개만 남기고 모두 헐어버린 것은 보통 군왕으로서는 흉내도 못낼 큰일들이 아닌가. 이런 역사에 남을 일을 하고도 이름을 천추만세(千秋 萬世)에 길이 남기지 못한 것은 그가 물러갈 기회를 놓쳤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도 마찬가지. 나라를 건국하는 일을 실로 눈부신 외교로 이뤄냈고,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6.25 전쟁도 고생스럽게 이겨냈고, 어눌한 말솜씨와 초연한 외모로 만인의 지도자다운 풍모가 몸에 배인 우남(雩南) 이승만. 그러나 그도 물러갈 시기를 놓치고 사사오입이니 3.15 부정선거니 하는 꼼수를 쓰다가 나라 밖으로 쫓겨나 산 설고 물 설은 나라의 요양원에서 외롭고 쓸쓸히 마지막 눈을 감고 말았다.


 물러설 기회를 놓친 사람은 또 하나 있다. 1960년 총칼로 정권을 뺏고 철권정치를 하다가 비운의 총탄에 간 박정희다. 한국의 보릿고개를 없애고, 근대화의 초석을 깐, 어쩌면 세종대왕에 버금가는 업적을 이룬 통치자로 불릴 뻔했던 그도 자기의 정치적 생명을 더 늘리려고 유신헌법을 만들고 갖은 꼼수와 악질적인 수법으로 분탕질을 하다가 물러설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이들은 다 같이 물러날 기회만 놓치지 않았더라면 청사에 빛나는 통치자라는 말도 들었을 사람들이다. 그러나 자신들에 대한 착각 때문에 그동안 쌓은 업적은 어딜 가고, 그들의 정치적 비리(非理), 더러운 음모 욕심만 남아 떠돈다.


 사람은 앞으로 나아갈 때도 중요하지만 뒤로 물러설 때도 중요하다. 이 설명하기도 쉽고 알아듣기도 쉬운 사실이 어찌 그리 실행하기가 어려울까. 나 같은 딸깍발이 서생(書生)이야 나아간 적도 없으니 물러설 필요도 없음은 물론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인생살이에는 아직도 내가 모르는 그 큰 무엇이 있는게 틀림없는 모양이다.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나는 아직 세상살이의 미적분(微積分)을 절반도 모르면서 내가 뭘 아는체 떠들고 있으니 이것도 하나의 큰 착각임에 틀림없다. (201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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