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 오늘 방문자 수: 290 전체: 219,939 )
나는 컴맹이다
leed2017

 

 중국 사람이 한시(漢詩)를 모르면 중국 사람이 아니요, 일본사람이 하이구(俳句)를 모르면 일본사람이 아니라는 말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뭘까? 우리 옛시조가 아닐까 생각된다.


우리는 고려 말부터 조선왕조를 거치면서 수 천수(首)가 넘는 시조(時調)가 쌓였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을 좀처럼 애송하지 않는다. 크나큰 문화유산에 대한 홀대다. 몇 년 전 내가 <세월에 시정을 싣고>라는 시조 감상 책을 펴냈을 때 대학 동창 하나가 "너는 요새 유행하는 것은 하지 않고 왜 그리 고리타분한 것에만 열심이냐?"며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말을 걸어왔다.


 그 친구가 말하는 요새 유행하는 것이란 컴퓨터와 영상미디어, 그래픽 디자인 같은 것을 말한다. 맞는 말이다. 나는 오늘까지 컴퓨터를 쓰지 않는다. 요새 점점 들어보기 어려운 말, 즉 컴맹이다. 컴퓨터를 쓴데야 내게 오는 전자우편이나 받아보는 정도. 그 외 다른 것, 이를테면 편지를 보낸다거나 문헌 조사 같은 것은 하지 않는다. 오늘날 컴퓨터를 모른다는 것은 문화적으로 태곳적 동굴 생활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컴퓨터는 고사하고 나는 스마트폰이니 디지털카메라 같은 첨단 문명의 이기(利器)와는 인연이 없는 모양이다. 예로, 컴퓨터를 통해서 온 편지를 받으면(내게 편지를 보낸 여러분에게는 대단히 죄송스러운 말이지만) 무슨 공지 사항을 알리는 홍보물을 받는 기분이 든다. 편지에는 보낸 이의 땀과 숨결을 느낄 수 있어야 하는데 이런 것들을 전자우편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고리타분한 것에만 열심이라는 것은 내가 옛시조를 감상하는 책을 썼다는 이유다. 우리는 호머(Homer)의 서사시 <오디세이(Odyssey)>나 셰익스피어의 비극 <맥베스(Macbeth)> 각본을 읽을 때는 고리타분한 짓을 한다기보다는 '고전 탐구'니 '명작 섭렵' 따위의 고상한 말로 포장하지 않는가.


 텔레비전도 흑백을 보다가 남들보다 이삼십 년은 뒤늦게 들여놓았다. 뉴욕에 살던 친구가 한국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면 주고간 스테레오(stereo)다. 음반을 조용히 두 손으로 잡아서 제자리에 앉히고 바늘을 갖다 대면 음반이 돌아가며 소리가 나오는 것이 요새 유행하는 CD 음악의 2배, 3배는 노래 듣는 기분이 난다. 내게 있어서 음악은 분위기다. 이런 사례를 살펴보면 분명 나는 정신적으로 중세기 사람이다.


 나의 이런 성향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나도 모른다. 현대 심리학도 이에 대한 시원한 답을 내놓을 만한 수준은 못된다. 고려 때 임금이 난리를 피해 도망와서 숨었던 심심산골, 보이는 것이라곤 산과 계곡, 강줄기 밖에 없는데서 어린 시절을 보낸 나같은 사람이 고리타분한 것을 좋아하는 성향을 가졌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어릴적 시절을 시골에서 보냈기 때문에 최첨단 문명의 이기를 회피하게 되었다는 요지의 이론은 허점이 너무 많다. 하나의 예로, 두메산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 한 둘인가. 이런 배경을 가지고 자랐어도 대부분 사람들은 시골티를 말끔히 벗어버리고 모든 면에서 최신을 좋아하는데 나만 왜 이렇게 제자리 걸음인가는 설명되지 않고 있다.


 위의 의심은 곧 "왜 이 사람은 이것을 좋아하고, 저 사람은 저것을 좋아할까?" 하는 문제로 연결된다. 이 문제에 대한 답은 나도 모른다. 몇 십 년 전에 하버드대학교 교수 로(A. Roe)라는 사람이 "왜 어떤 이는 철학이나 역사학 같은 문과(文科)에 흥미를 갖고, 어떤 이는 물리학이나 지질학 같은 이과(理科)에 흥미를 갖는가?"라는 직업 흥미의 기윈에 대해 발표한 논문을 읽은 적이 있다. 그 후부터 지금까지 흥미의 기원에 관한 두드러진 학설은 없는 것으로 안다. 인간의 집단행동에 대한 설명도 잘 못하는 수준인데 이동렬이라는 한 개인이 왜 복고적인 성향을 가지게 되었는가를 설명하기는 더욱더 어렵다.


 무속인(巫俗人)들에게 어쩌다가 무속인이 되었느냐고 물으면 가장 자주 나오는 대답이 "신(神)의 내림을 받아서 무속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하늘의 부르심, 즉 소명(召命)이 있어서 그렇게 되었다는 말이다. 앞으로는 나도 왜 그리 고리타분한 것을 좋아하느냐고 물어오면 구구한 설명을 늘어놓기 보다는 무속인을 닮아 신이 들려서 그렇게 되었다면 더 간단명료한 대답이 되지 않을까?


 조선 제 22대 임금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가 당쟁에 휘말려 억울하게 죽었다. 아들 정조가 천신만고 끝에 왕좌에 올라 등극 첫 마디가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하는 외침이었다 한다. 자기 아버지를 뒤주 속에 넣고 굶겨 죽인 무리들에 대한 보복을 선언한 것이다. 나는 정조 같은 원(怨)도 한(恨)도 없다. 그러나 나도 다짐을 새롭게 한다는 의미에서 정조를 본따 크게 외쳐본다.


"나는 컴맹이다!"  (2012. 9.)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