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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기(俗氣)
leed2017

 

 초등학교 2학년 때였던가, 우연히 붓글씨 쓰는 분을 알게 되어 그때부터 집에서 붓글씨를 배우게 되었다. 내 고향은 경상북도 안동, 그때까지도 내 고향에서 붓글씨를 쓴다는 것은 남자가 가졌으면 좋을 덕목의 하나. 대학에 다닐 때는 서울로 자리를 옮겨 일중(一中) 김충현 선생의 문하생으로 파고다공원 앞 관철동에 있던 동방연서회 회원이 되어 열심히 글씨를 배웠다.


 나는 속으로 "내가 이래봬도 글씨는 좀 써 본 놈인데. " 하는 자만심은 하늘에 닿고도 남을 철없던 시절, 선생님 말씀이 제대로 들릴 리가 없었다. 그런데 하루는 일중 선생이 "글씨에 속기(俗氣)가 있으면 못쓰니 조심하라"는 말씀을 하셨다. 내가 이 말의 의미를 깨달은 것은 그 후 몇 년의 세월이 흐르고 난 뒤였다. 멋이라는 게 뭔지 말로 설명하기는 어려운 것처럼 속기(俗氣)가 뭔가를 설명하기는 퍽 어렵다.


 속기(俗氣)란 세속적인 시정(市井) 한복판에나 나돌 약삭빠르고 점잖지 못한, 상스럽고 천한 특성을 가리키는 말이다. 속기가 많은 글씨나 그림을 사람에 비유하면 치졸, 조속, 지저분하고 말과 행동거지에 점잖은 구석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사람과 같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로 있다가 월북한 저명한 미술평론가요 수필가인 근원(近園) 김용준은 속기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사람에게 폼이 있고 없는 사람이 있는 것과 같이 그림에도 화격이 높고 낮은 그림이 있다는 것이다. 복잡한 곳을 곧잘 묘사하였다고 격 높은 그림이 될 수 없는 것이요, 실물과 똑같이 그려졌다거나 수법이 훌륭하거나 색채가 비상히 조화된다거나 구상이 웅대하거나 필력이 장하거나 해서 화격이 높이 평가되는 것도 아니다. ”


 속기(俗氣)는 나이, 글씨를 햇수, 학벌과도 별 상관이 없다는 사실이 자못 신기하다. 아무리 글씨가 달필(達筆)이요 능(能)해 보여도 속기는 그대로 있다는 말. 어느 화가가 더러운 똥을 그렸다 해서 그 화가의 그림이 더러운 것은 아닌 것처럼 그림의 대상도 속기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속기는 마음의 풍요로움과 관계가 있다. 한국의 저명한 피아니스트 한 분이 젊은 시절에 수학(修學) 목적으로 음악의 명문 줄리어드(Juilliard)에 갔을 때 그를 지도하던 교수는 늘 "피아노를 손가락으로 치려 들지 말아라. 요가, 명상, 무용, 시(詩) 감상 같은 것을 해서 네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라."고 권하시더란 회고담을 들은 적이 있다. 피아노 같은 기악이든, 그림이든, 서예든 모든 예술은 손끝으로 하는 게 아니라 가슴으로 한다. 이 모두가 마음을 풍요롭게 하면 예술의 격이 높아진다는 말일 게다.


 "글씨를 잘 쓰자면 사람부터 바로 되어야 한다."는 사람됨과 작품을 연결짓는 말은 귀가 따갑도록 듣는 말이다. 마치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만이 시(詩)를 쓸 수 있다는 말과 같이. 그러나 나는 이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인격=작품을 강조하는 주장은 언뜻 들으면 수긍이 가는 말이지만 조금만 더 깊이 살펴보면 이 주장에 회의가 가지 않을 수 없다. 이름을 날리는 예술가  중에서 윤리 도덕면에서는 남의 손가락질을 받아 마땅한 저질스런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한 둘인가. 물론 이들 이름을 날리는 예술가 중에서 그들이 대가(大家)로 불리고 난 뒤부터 저질스런 생활을 시작한 사람도 있겠지만.


 격이란 어디까지나 작품이 풍기고 있는 정신적인 내면세계를 말하는 것이니 보통 사람의 눈에는 잘 잡히지 않는다. 일필휘지(一筆揮之) 능한 달필로 휘갈겨서 보통 사람의 눈에는 기운차고 뛰어난 글씨로 보이지만 기실 온통 속기 투성이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걸작, 이를테면 반 고흐(Vincent Van Gogh)의 <별이 빛나는 밤(Starry Night)>이나 대원군이 친 난초에서 뿜어 나오는 그 맑고 강렬한 기운이 예술에서는 문외한들에게도 전류처럼 감전되는 경우가 있지  않는가. 옛날 이발소 벽에 걸려있는 그림을 보고 이런 느낌을 갖기는 어렵다. 그림의 격(格)이 달라서 그런 것이다.


 지도해주는 사람 없이 혼자 연습만 한다는 것은 속기를 향한 지름길로 달려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10년 동안 산속에 들어가서 혼자 썼다는 사람의 글씨를 상상해보라. 이런 서예를 정도(正道)를 걸어온 서예라고 할 수 있을까. 좋은 지도는 물론이고 자기 작품에 대한 비평도 받아보고, 남의 작품도 감상할 기회가 있어야 한다. 예술은 교제요 소통이다.


 한국에 가서 서예 전시회를 대여섯 군데 가보았다. 전시회장이나 작품의 화려함에는 옛날의 그것과는 비교가 안 된다. 내 초라한 서예 경력에 외람된 생각인지는 몰라도 글씨의 정도(正道)를 밟아온 사람의 작품은 무척 드물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이 자기의 특유한, 그야말로 자기만의 특유 서법(書法) 창시자가 되었구나 생각하니 쓴웃음이 나오는 것은 어찌할 수 없었다. (201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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