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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전의 6월
leed2017

 

 올 6월 어느 날 토론토 신문에는 어느 동양인의 전신을 담은 큰 사진 한 장이 올랐다. 어떤 여자아이가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울부짖으며 알몸으로 거리를 뛰쳐나오는 사진. 사진에 대해서 좀 더 설명하자.


 월남전의 포화가 날로 뜨거워가던 1972년 6월, 월남의 어느 작은 마을에 살던 9살의 푹(Kim Phuc)이라는 소녀는 미군이 퍼부은 네이팜탄에 화상을 입고 거리로 뛰쳐 나와 다른 아이들 셋과 함께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울부짖으며 뛰어오고 뒤에는 미국 군인 두세 명이 걸어오는 장면을 담은 사진이었다.


 이 사진을 찍은 사람은 당시 21살의 AP 종군기자 웉(Nick Ut)씨.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 대부분이 언젠가 한 번은 보았을 이 사진. 네이팜탄의 화염 공격을 받고 두려움에 울부짖으며 알몸으로 거리로 뛰쳐나온 9살 소녀를 찍운 이 사진은 전쟁의 비극을 말해주는 무언의 증거물이 되었다. 기독교의 사랑을 가장 잘 실천하고 있다고 자랑하는 은총의 나라, 전쟁을 일으키면서까지 온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려고 애쓰는 전도의 나라, 바야흐로 민주주의의 꽃이 만개(滿開)했다는 무지개의 나라 미국, 이 미국이 저지른 또 하나의 전쟁에서 일어난 양민학살의 증거를 제시한 것이다. 종군기자 웉은 이 소녀를 향해서 반사적으로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그녀의 몸에 찬물을 끼얹고는 자동차에 싣고 곧바로 병원으로 달려갔다.


 40년의 세월이 흘러 올해 61살로 접어든 사진기자 웉씨는 아직도 AP에서 일하고 있다. 이 사진으로 유명한 퓰리처(Pulitzer) 상을 받은 그는 그의 집 거실 벽에 이 사진을 걸어두고 요사이도 매일 한 번씩은 들여다 보는데 그 사진을 볼 때마다 나오는 눈물을 참기 어렵다고 한다. 미국을 대신한 속죄의 눈물인가.


 푹 씨를 도운 사람은 사진기자 웉 씨만이 아니다. 푹 씨의 치료를 위해서 그를 독일병원으로 옮겨준 크레츠(Perry Kretz) 씨, 푹씨가 살던 마을에서 네이팜탄을 목격했고 화상을 입은 푹 씨를 성형수술 해줄 수 있는 병원으로 옮겨준 웨인(Christopher Wain) 씨가 있다. 모진 것이 목숨이라 푹 씨는 살아서 회복을 하여 2012년 현재 캐나다에서 살고 있다. 그때 성심성의껏 푹 씨의 망명 신청 수속을 도와주었던 오스먼드(Murran Osmond) 씨, 마지막으로 월남 사이공의 어느 병원에서 화상을 입은 푹 씨를 간호했던 올해 91살의 간호사 아세놀(Martha Arsenault) 씨가 있다.


 2012년 6월 어느 봄날, 푹 씨를 위해서 헌신적인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던 다섯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삶을 축하하는 자리, 눈물의 찬란한 빛을 노래하는 자리였다. 어떻게 보면 푹 씨는 억세게 재수 좋은 사람. 왜냐하면 그가 언론에 소개되어 유명하게 되었으니 말이지 푹 씨가 살던 마을에서 온몸이 화염 속에 쌓여 비참한 최후를 맞은 농민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전쟁은 한 인간집단이 다른 인간집단에게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횡포다. 모든 전쟁은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이라 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말장난,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에서 발전이나 진보는 있어도 혁명이나 쿠데타는 있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전쟁을 일으킨다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합리화가 안 된다. 


 이유없이 전쟁을 일으켜 사람의 생명을 희생시키는 자는 하늘이 벌을 내린다고 하나 그것도 거짓말. 이웃 나라들을 침범, 전쟁을 일으켜 수많은 인명피해를 입힌 몽고의 징기스칸(Genghis Khan)이나 수백만의 동족 사상자를 낸 북한의 김일성이 하늘이 내린 벌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다. 더 최근에 와서 미국의 전쟁 연구가 파웰(Powell)이 지구상에서 가장 전쟁을 많이 한 나라로 지명한 전쟁의 금메달리스트 미국(모두 180번이라던가?)이 어떤 천벌을 받았다는 얘기도 없다.


 미국 군대가 퍼부어댄 네이팜탄 공격이 아니었으면 푹 씨는 언제 어디서 이렇게 따뜻한 사랑의 숨결을 느껴볼 수 있었을까? 목숨을 걸다시피 한 인류애나 도움의 손길은 월남의 어느 한적한 마을에 쏟아진 네이팜탄이 아니었으면 애당초 일어나지도 않았을 일이다.


 우리 인간에게는 남을 죽이는 지극히 악독하고 사악한 면이 있는가 하면 남을 도와주고 하늘도 감격할 온정의 손길도 내밀 줄 아는 착한 면도 있다. 둘 다 전쟁 같은 비극이 없이는 동시에 경험하기 어려운 인간들이 가진 특성일 게다. 1972년 6월에 시작한 다섯 사람의 한 인간에게 퍼부은 사랑은 40년이 지난 오늘까지 연연히 그 빛을 잃지 않고 이어오고 있다. 천사여, 사랑의 천사들이여! (201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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