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 오늘 방문자 수: 79 전체: 117,236 )
자기 계발
leed2017

 

 나무나 골동품은 오래되어 나이가 먹을수록 뭇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으나 꽃이나 사람들은 그렇질 않다. 꽃이 시들거나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윤기가 빠지고 볼품이 흉해진다. 그래서일까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늙게 보이지 않으려고 많은 돈과 시산을 아끼지 않는다. 


 여유가 있으면 그렇게 하는 것은 신라시대 때 성골(聖骨) 진골(眞骨) 귀족부터 오늘날 압구정동까지 내려오는 극히 자연스런 인간의 욕심인 것 같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겉으로 나타나는 외모를 젊고 아름답게 꾸미려는 욕심은 물론, 자기 내부랄까 자기의 속도 젊고 아름답게 꾸밀 수 있기를 바란다. 사람의 안팎이 모두 젊고 아름답고 넉넉한 자신을 꾸미고 싶은 욕심은 자기 자신을 충실하게 꾸민다는 의미에서 자기계발이라고 부를 수 있지 싶다. 이런 욕망이 전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런데 인생의 자기계발을 언제 구상해야 하느냐에 대한 정해진 시간은 없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나이가 비교적 젊은 청춘시절에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것이라는 데는 의견이 일치할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욕심, 자기계발을 가장 크게 마음껏 구상해보고 싶은 부류의 사람들은 누구일까? 말할 것도 없이 대학생들이다. 대학은 바로 자기계발 내지 자기 실현을 계획하고 꿈꾸는 도장인 것이다. 젊음은 무한한 가능성을 내포한다. 가능성이 없는 젊음은 죽은 젊음이다. 젊음이 대학의 혼(魂)이라면 대학은 젊음의 육신(肉身)이라 할 수 있다.


 "청춘이 아름다워라"라고 외친 사람들을 보라. 청춘은 이미 그를 저 멀리 떠나버린 사람이 아닌가. 학교에 오는 학생들에게 청춘이 아름다운가 물어보면 긍정적인 대답은 극히 드물지 싶다. 하루라도 빨리 이 청춘을 벗어나서 기성세대로 뛰어들고 싶다는 대답이 대부분일 것이다. "아, 지긋지긋한 이 청춘, 청춘이 아름다워요? 누가 그랬어요?" 하는 반응이 더 많을 것이다.


 우리 주위에 청춘의 아름다움을 방해하는 요소는 너무나 많다. "내 아니면 네 죽기"식의 시험제도, 나이, 선후배로 짜여진 위계질서, 내 실력대로 살 수 없는 억울함, 생존경쟁이라는 이름 아래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지나친 경쟁, 그리고 어지러운 사회현실. 이 모두가 청춘의 아름다움, 자기계발의 꿈을 방해하는 요소인 것 같다.


 시험이건 무엇이건 간에 '실패'가 많은 사회에서 아름다운 일이 많을 수 없고, '성공'이 많은 사회에서 아름다움이 적을 수 없다. 더더구나 실패와 성공이 남과 비교하는 데서 결정된다는 것은 쓰라린 실패감을 부채질하고 이 실패감은 청춘의 아름다움은 물론, 결국에 가서 자기계발을 줄이는 것이다.


 나는 학생들이 어렸을 때는 피아노, 발레, 스케이팅, 미술 등을 배우다가 인생의 어느 시점에 가서 이건 "입시에 필요 없다"고 집어치우는 것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물론 피아노를 치고 발레를 해야 자기계발을 한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인생의 거의 모든 것이 대학입시를 위해 존재하는 것일 때는 문제가 되는 것이다. 


 말로만 '자기능력'을 최대한 발휘한다고 해놓고는 대학입시 때문에 그만 두어야 한다는 것은 옆에서 지켜보기에 참 애처로운 일이다.


 젊은이들이여, 가만 있을 것이가? 흙탕물 속에서 연꽃은 그 청초함을 드러낸다. 오늘부터라도 늦지 않았으니 "내가 내 자신을 계발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냐?"를 계획해보자. (2003 .3.)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