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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돕는 사람들
leed2017

  

 올 봄에 사회복지학과 K교수와 어느 재단에서 약간의 연구비를 얻었다. 연구 내용은 이타심이 많은 사람들의 심리적 특성 연구였다. 이타심(利他心) 내지 이타적 행동이란 남에게 신경을 써주고 도와주려는 마음 상태나 행동을 말한다. 반대되는 말은 물론 이기적(利己的) 행동이다.


 이타적 행동은 사람이 정신적으로 얼마나 건강한가, 건강하지 못한가를 판가름하는데 하나의 중요한 기준이 된다.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사람이 남에게 신경을 써주고 도와주는 경우는 극히 드물지 않는가.


 이 연구의 책임연구원의 한사람인 L씨는 "이타적인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아온 사람들인가?"를 알아보기로 했다. L씨는 이타적인 행동을 베풂으로써 M방송국의 [칭찬합시다]라는 프로그램에 방영된 사람들 300여 명 중에서 담당 PD들의 도움을 얻어 다시 60여 명으로 줄였다. 300명만 해도 남을 돕는데 있어서는 보통사람과는 비교도 안될텐데 그 중에서 또 60명이라니 영어로 말하면 그야말로 최고의 최고(the best of the best)를 뽑은 셈이다.


 이 60명의 직업을 살펴보면 이발사로부터 성직자, 미용사, 구두수선공, 교수, 환경미화원, 의사, 식당주인, 판.검사, 주부, 경찰관, 선원에 이르기까지 없는 직종이 없다. 어느 한 직종에서 집중적으로 쏟아져 나온 경우도 없으려니와, 어느 한 지역에서 쏟아져 나온 것은 더더구나 없다. 제주도에서 울릉도, 전라도에서 강원도, 서울, 시골 각지 어디에서나 이타주의자들은 골고루 흩어져 있었다.


 전형적인 예를 하나 들어보자. 경찰관 생활 10년째 접어드는 30대 중반의 아저씨가 있다. 자기 살림을 꾸려가기도 빠듯한 박봉으로 고등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자기 근무시간이 아닌 여가에는 불량 소년소녀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하고, 그것이 끝나면 다시 어느 양로원에 가서 돌볼 사람 없는 노인들의 저녁밥을 준비해드리는 일을 7년째 계속하고 있는 순경 아저씨다. 참으로 믿기 어려울 만큼 드문 사람이 아닌가!


 L씨는 이 60명의 이타주의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최소 1시간 내지 2시간 가량의 개인적인 면담을 하기로 하고, 대학원 학생들에게 면접을 위한 훈련을 시켰다. 훈련을 받은 학생들은 전국으로 흩어져서 미리 준비해둔 질문에 대한 이들이 말하는 내용을 녹음기에 담아왔다. 실로 장장 7000분에 이르는 금쪽같이 귀한 자료임을 물론, 그것을 분석하는데도 몇 달이 걸리는 방대한 자료이다.


 나는 우연히 제주도로 울릉도로 뛰어다니며 면접을 가장 많이 한 사람들인 두 K양에게 이들 이타주의자들의 "겉으로 나타나는" 인상에 대해 물어볼 기회가 있었다. 두 K양이 들려주는 그들에 대한 인상은 다음과 같다.


 첫째, 그들은 처음에는 보통사람들과 별 차이를 느끼지 못할정도로 냉랭하고 형식적이다가도 이야기가 진전되어 상대방을 신뢰하고 나서부터는 보통사람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솔직하고 따뜻한 성격의 일면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또한 그들은 자신감에 차있었고 항상 인생에 비전을 가지고 있는듯 보였다.


 둘째,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어린 시절에 심한 심적 혹은 물질적 고통을 겪었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은 이 세상에서 극히 뛰어난 창의력을 발휘해서 이름을 떨친 사람들, 천재의 천재랄까 혁신아들 중에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현상과 일치한다. 다시 말하면 뛰어난 창의성으로 이름을 날린 사람들 중에는 어렸을 적에 행복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들도 없진 않지만, 그 반대로 부모의 이혼이나 사별, 부모의 술과 마약 중독, 뼈저린 가난 등 그야말로 불우한 환경에서 그 어려움을 딛고 일어선 사람들이 많다. 


 특히 문학이나 예술에서는 그런 인물들이 압도적으로 더 많다. 사람이란 말로 다 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어도 그 틈새를 뚫고 올라오는 잡초같이 끈질긴 데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린 시절이 불행했다고 장래의 문제아가 된다고 생각하면 큰 잘못이다.


 셋째, 남을 도와주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자기 자신이 어렸을적에 어려움을 겪었던 바로 그 영역에서 허덕이는 사람들을 도와준다는 것이다. 예로, 신체불구로 고생을 했던 사람들은 신체 불구인을, 가난에 시달렸던 사람들은 가난에 고생하는 사람들을 도와준다는 말이다.


 넷째, 일반적으로 남을 도와주는데 앞장서는 사람들은 자신의 경제적 형편이 부유하기보다는 앞에 예를 든 경찰관처럼 그다지 넉넉하지 못한 사람들이 그야말로 '혼신의 힘'을 기울여 돕는 경우가 많다.


 나를 가장 슬프고 두렵게 만들었던 것은 다음과 같은 두 K양 중의 하나가 들려준 말이었다. 어떤 환경미화원을 면접하는데 그가 갑자기 울더라는 것이다. 이유를 물었더니 자기가 남을 도운 아름다운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지자 사람들이 전화를 하고 "네까짓게 뭔데 남을 돕느냐?" "도움을 받아야 할 처지에 있는 사람이 남을 도와?" 하는 따위의 경멸과 질투가 섞인 말을 듣고 너무나 억울하고 분해서 운다는 것이다.


 세상에는 참 여러 유형의 사람들이 있다. 남을 도와주는데 온갖 정성과 힘을 기울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런 착한 사람들의 행동을 고맙게 생각하지는 못할망정 그들에게 상처를 입히는 부류의 사람들도 있으니 말이다.


 괴테(Goethe)가 말했던가, 하늘에는 별이 있어 아름답고, 땅에는 꽃이 있어서 아름답고. 여기에다 나는 하나 더 달고 싶다. 사람에게는 사랑이 있어서 아름답다고. 사랑의 향기를 뿜어 이 세상을 그윽한 향기 속에 잠기도록 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이타주의자들이 아닌가. (200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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