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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불감증
leed2017

 

 토론토대학교 철학 교수로 있는 킹웰(Mark Kingwell)이라는 사람에 따르면 현재 이 세상에 알려져 있는 정신병은 모두 374개로 거의 400개에 가깝다 한다. 이것은 10년 전의 297개에 비해 무척이나 많이 늘어난 것이다. 이렇게 정신병 종류가 많이 늘어난 것은 문화적으로 바람직한 것과 바람직하지 못한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정신상태의 혼란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최근 사회심리학에서 나오는 얘기를 들어보면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생리적이랄까, 타고난 성향이 상상외로 큰 역할을 한다고 한다. 얼른 생각하기에는 자신에게 좋은 일, 즉 자신에게 긍정적인 사건이 일어나는 횟수가 많은 사람들은 그만큼 행복감이 높은 반면 자신에게 좋지 못한 일, 즉 부정적인 사건이 일어나는 횟수가 많은 사람들은 행복감이 낮을 것 같다. 그러나 주관적으로 느끼는 행복감은 자신에게 일어나는 객관적인 사건과는 관계가 그다지 크지 않다는 것이 행복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사건에 관계없이 언제나 행복감에 젖어 있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행복감이라곤 느끼지 못하고 불평불만으로 찌푸린 얼굴을 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돈이 많고 교육 정도가 높거나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은 행복감이 남보다 높긴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높지는 않고, 가난하거나 사회적 지위가 낮은 사람이라고 해서 행복감이 낮은 것은 절대 아니라는 말이다. 좋은 소식이다. 신(神)은 이 세상을 참 공평하게 만들었나보다. 그러나 우리는 지난밤에 두 아이를 둔 아버지가 생활고로 자살을 했다는 아침 뉴스를 듣고 "생활조건이 좋지 못한 사람은 불행하구나" 하는 결론을 내릴 때가 많다. 그런데 그 결론이 터무니없이 과장된 것일 때가 많다는 것이다.


 재물이나 사회적 지위 같은, 소위 우리가 말하는 객관적 조건은 행복감과 그다지 큰 관련이 없다는 연구보고는 이루다 헤아릴 수 없으리만큼 많다. 사회적 지위, 돈, 이 세 가지가 종합해서도 행복변량의 8%~15% 밖에 설명 못한다는 것이다. 행복감과 가장 큰 연관을 보이는 것은 재물이나 사회적 지위가 아니라 건강이라고 한다. 역시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평범한 말은 천년을 내려와도 변함이 없는 진리의 말씀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는 건강을 잃고 나서야 비로소 건강이 곧 행복의 원천이라는 것을 깨닫지 않는가.


 그런데 상대적으로 행복감이 높은 사람들과 낮은 사람들 간에는 자기에게 일어난 사건을 해석하는 데에 뚜렷한 차이가 있다. 즉 좋은, 긍정적인 사건에 대해서는 행복감이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 간에 별 차이가 없다. 그러나 좋지 못한, 부정적인 사건을 받아들이는 데는 행복감이 높은 사람들과 낮은 사람들 간에 뚜렷한 차이가 있다는 것 즉, 행복감이 낮은 사람들은 부정적인 사건을 더 부정적으로, 행복감이 높은 사람들은 부정적 사건에 대해서도 그 사건의 긍정적 면을 찾아내어 덜 부정적이 되도록 해석한다는 주장이 있다. 


 예로 시험에 낙방을 한 것 같은 부정적인 사건이 일어났을 때 행복감이 상대적으로 낮은 사람들은 "창피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다. 내 인생은 이제 막다른 골목에 왔구나" 하는 극히 부정적인 해석을 한다는 것. 그러나 행복감이 높은 사람들은 "내가 시험에 떨어지다니.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란 말이 있다. 이번 낙방을 좋은 경험으로. " 하는 식의 덜 부정적으로 만든다는 말이다.


 그런데 내가 지도하고 있는 I양의 석사논문에서는 그 반대 결과가 나왔다. 노인들은 연구 대상으로 한 그이 논문 결과는 다음과 같다. 즉 노인들은 부정적인 사건을 해석하는 데는 자기가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노인들과 행복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노인들 간에 차이가 없다. 그러나 긍정적 사건을 해석하는 데는 뚜렷한 차이가 있었다. 즉, 행복감이 높은 노인들은 긍정적인 사건을 더 기분이 좋은 것으로 해석하지만 행복감이 낮은 노인들은 행복한 사건이 있어도 그다지 행복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결과이다. 


 우리는 아직 이 선행연구와 다른 결과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어리둥절해 하고 있다. 미국과 한국문화의 차이 때문인가, 아니면 노인과 젊은이들 차이 때문인가. 젊은이는 늙은이에 비해 부정적 사건에 관심을 더 많이 가진다는 연구 보고가 많다.


 사람의 일생이란 것도 끊임없이 행복을 추구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건강을 찾고, 돈을 벌고, 지위를 찾는 것도 행복하기 위한 간절한 소망 때문인 것이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이 세상에서 행복을 완전히 거머쥔 사람도 없고, 행복을 한 번도 맛보지 못한 사람도 없다. 듣기 좋은 말이다. 


 행복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속에 있다. 이렇게 가까운데 두고 그걸 찾아 그렇게 멀리 헤매는 것이 인생살이라 생각하니 사람이란 게 무척 어리석다는 생각이 든다. 청마(靑馬) 유치환의 노래처럼 "내 아무것도 가진 것 없지마는 머리 위에 푸른 하늘 있어 이렇게 행복되노라"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2004,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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