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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지송(墓地頌)
leed2017

 


 요사이 들어 묘지를 찾아가는 횟수가 부쩍 늘었다. 지난 9월에 장모님이 돌아가셔서 집에서 자동차로 10여 분 정도 걸리는 동네 공동묘지에 모신 후다. 사실 나는 장모님이 돌아가시기 전부터도 묘지에 가서 돌아다니길 좋아했으니, 이 버릇은 꽤 오래 된 셈이다. 


 지금부터 20여 년 전인 1974년 중반에 캐나다 서부의 레드 디어(Red Deer)라는, 우리 말로 옮기면 '붉은 사슴'이라는 인구 3만 명이 조금 넘는 작은 마을에 있는 앨버타 학교 병원(Alberta School Hospital)이라는 기관에서 심리학자로 일한 적이 있다. 그 기관은 웬만한 크기의 대학보다도 더 넓은 부지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나 부속 건물들도 서로 1천 미터나 되는 거리를 사이에 두고 A군(群)과 B군으로 갈라져 있었다.


 A군에서 B군 건물 사이에는 작은 계곡이 하나 있고 바로 그 계곡 옆으로는 큰 공동묘지가 하나 있었다. 그래서 다른 건물군(群)으로 오갈 때는 그 공동묘지 옆을 지나가곤 했다. 그러다가 호기심으로 몇 번 그 안으로 들어가 여기저기 묘석을 살펴보며 다닌 것이 그만 습관이 되고 말았다. 간혹 중국 산동성(山東省) 어디에서 태어나서 캐나다에 와서 죽었다는 것을 한문으로 적어둔 묘석을 볼 때는 아련한 향수나 슬픔 같은 것이 배어들어 한참 그 묘비의 주인공에 대한 상상을 해보기도 했다.


 장모님 묘소에서 한 200미터쯤 떨어진 곳에는 우리 동네에서 살다가 세상을 뜬 우리 마을 사람들의 묘석도 대여섯 개가 눈에 띈다. 그 가운데 C형의 묘석은 볼 때마다 애처로운 생각이 든다. 마흔여섯 살 나이에 저세상으로 간 C형은 대학에서 농학을 전공했었는데 평생 결혼도 하지 않고 혼자 살았다. 캐나다에 친척은 물론 가까운 친구도 별로 없어서 뼈에 저리도록 외롭게 살았을 C형. 췌장암으로 목숨을 잃었다. 나는 그가 죽기 며칠 전에 문병을 가서 임종석에 누워 눈을 껌벅이며 씩 웃던 그를 본 생각이 난다. 바다가 보이는 양지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하나 바다가 천리만리 밖인 우리 동네에서 그 유언은 사치스러운 빈말이 되었고, 그 대신 템스강 물줄기가 저 멀리 내려다 보이는 공동묘지에 잠들게 되었다. 아내도 자식도 없이 갔으니 그가 묻힌 후 15년 동안 그를 찾아온 사람이 있었을까? 아무도 없지 싶다.


 내가 공동묘지를 좋아하는 데는 무슨 별난 사연이나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굳이 이야기 한다면, 술이 내 기분을 들뜨게 만든다면 묘지는 내 마음을 가라앉혀 주는 진정제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묘지는 내가 세상을 때문에 안달하고, 성내고, 시기하는 것은 물론, 기뻐하고, 흥겨워하고, 뻐기는 그 모든 일체를 한순간에 가라앉혀 버리는 것이다.


 인생이 허무한 것이라는 생각을 뼛속까지 느낄 때는 장례식에서 돌아올 때일 것이고 세상살이를 그렇게 바둥대며 살아야 할 이유가 어디 있느냐, 좀 마음을 놓고 쉽게 살아가자는 다짐이 간절할 때는 묘비 앞에서일 것 같다.


 묘지는 내 삶의 모든 것과 심지어는 삶 그 자체까지 새털처럼 가볍게 만드는 위력을 가지고 있다. 묘비 앞에 서면 죽음과 친숙해질 수 있어 죽음에 대한 불안이나 공포도 줄어든다.


 생각해보면 죽음에 대한 생각이 무서운 것이지 죽음 그 자체가 무서운 것은 아니다. "삶이 끝나면 죽음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삶이 끝나면 죽음도 끝난다"고 한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죽은 뒤의 일을 우리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죽은 뒤의 일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10여 년 전에 같은 동네에 살던 S형이 마흔일곱 나이에 간암으로 목숨을 잃었을 때 나는 걸핏하면 그의 무덤을 찾아가곤 했다. 장모님은 "공연히 그런데 가는 게 아니다"는 충고를 여러 번 한 적이 있다. 죽음이 상서롭지 못하고 불쾌한 것이라는 생각때문일 것이다. 


 오늘도 오전에 장모님의 무덤을 다녀왔다. 나보고 "일없이 그런데 자꾸 가는 게 아니다"고 충고하시던 장모님이 오늘은 어느 시인이 그의 친구 무덤 앞에서 읊은 노래처럼 "아, 벌써 가느냐고, 언제 또 오느냐"고 무덤 속에서 쓸쓸한 표정을 지으실 것만 같았다.(199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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