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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다는 것
leed2017

 
 학생들에게 이번 방학에 무얼 하느냐?고 물어본다. 대부분이 영어 강습소를 다녀 영어 실력을 올리겠다는 대답이다. 나는 친구들과 여행을 가든지, 소설이나 보며 집에서 실컷 놀기나 하라고 권한다. 생각해 보면 사람이 놀 수 있는 때가 그리 많지 않은데, 그때는 바로 학창 시절, 그것도 방학 때일 것이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학생들은 여행은 참 좋은 생각이지만. 하고 뒤끝을 흐린다. 아마도 여행할 돈이 없기보다는 할 일이 이렇게 많은데 뒤로 물려놓고 여행을 쉽게 갈 수 있겠느냐는 것 같다. 요새 학생들은 이런 의미에서 참 불쌍하다. 웬 학생이 해야 할 일이 그렇게도 많은지!


 여행은 노는 것이다. 노는 것은 즐거운 것. 여행에서 밖으로 나타나는 것은 어디까지나 소비성 행사이다. 그런데 우리는 노는 것과 일하는 것을 엄연히 구분한다. 책을 들여다보며 영어 단어라도 하나 더 외우려 할 때는 공부, 만화나 보고 낚시질을 가는 것은 노는 것이라 생각한다. 맞는 말이다. 놀이는 일 않고 세월을 보내는 것이니까.


 '놀다'라는 말은 재미있고 즐거운 일이니 여가가 있어야 쓸 수 있는 행위이다. 옛날 옛적에는 놀이는 일과 함께 존재했다. 즉 놀이는 노동을 즐겁게 해주는 목적으로 있었다. 농사일을 하며 부르는 농요나 고기를 낚으며 부르는 뱃노래를 보면 알 수 있다. 


 고인돌을 운반하는 것을 생각해 보자. 무거운 돌을 움직이다가 잠시 쉬는 시간에 어떤 사람은 술을 마셨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노래를 흥얼거렸을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풋잠을 잤을 것이다. 모두 다 다음 차례릐 힘든 노동을 준비하기 위해서 제각기 다른 놀이를 한 것이다.


 한편 일은 힘들고 고단한 것이다. 옛날 옛날 그 옛날, 일과 놀이가 나뉘어지기 전에는 노는 꼴이나 노는 양도 사람들 사이에 별로 다를 것이 없었다. 그러나 계급 사회가 되어,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가 나타나면서 가진 자는 고된 노동을 적게 함으로써 시간적 여유가 더 많았고 놀 시간이 더 많아졌다.


 놀이에도 동서양에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같이 집단주의 유교권 사회에서는 노는 데도 '건전하게', '점잖게', '신분에 맞게' 놀아야 한다. 그러니 서당깨나 다닌 사람은 여가에 난초를 치거나 서화나 창을 즐길 것이요, 놀이패 같은 것은 못 배운 사람이나 하는 놀이다. 놀이에 대한 경직성이 크고 여가선택의 폭도 극히 좁다. 예로, 봄이면 널 뛰고, 연 날리고, 윷판 벌리고 여름에는 그네나 씨름, 가을이면 강강수월래나 농악이 전부인 것이다. 


 그리고 놀이도 스타일이 있어야 한다. 도박을 한다든지 버스간에서 춤은 비난의 대상이 된다. [여가 사회학]이라는 책을 쓴 김문겸님 주장에 의하면 우리 놀이에는 TV나 술집, 바둑이나 장기처럼 자리를 뜨지 않고 "앉아서 깔고 뭉개는" 놀이가 많다고 한다. 땅을 떠나기 싫어하는 농경사회의 유물이 그대로 있는 것 같다.


 반대로 서구의 개인주의 사회에서는 놀이가 사회 공익만 해치지 않고 자신에 기쁨만 주면 OK이다. 고로 여가문화도 개인주의 사회에서는 민주주의 의식만큼 여러 가지여서 개인이 원하는 것을 선택하는 그 자체가 여가이다. 여가의 범위는 여러 가지이다. 도박, 마약 등이 사회적으로 큰 거부감 없이 여가활동으로 수용된다는 것이 Godbey라는 사람의 주장이다.


 우리나라 같은 농경국가에서 출발한 나라의 놀이는 협동을 요구하거나 집단 단결을 유지하는 놀이, 예를 들면 줄다리기나 횃불싸움 같은 것이 많다고 한다. 우리는 좀처럼 혼자서 노래방이나 술집을 가지 않는다.


 그런데 요사이 놀이의 여왕벌로 뜨는 것이 하나 있으니 이는 다름 아닌 노래방이다. 노래방은 참으로 단군의 피를 받은 자손 적성에 맞는 놀이인 것 같다. 첫째 그것은 노래 중심이니 노래를 좋아하는 한국사람 취향에 꼭 맞는 것이요, 둘째 노래방은 여러 사람이 빙 둘러앉아서 제 신명나는 대로 하는 것이니 미리 정한 순서가 있는 것도 아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나이 많은 사람이 첫 번째 노래를 하는 사람으로 지목되는 경우가 있으나 이것도 알고 보면 어디까지나 나이 많은 사람을 빨리 잠재우고 젊은 사람들끼리 놀겠다는 속심이 있는 경우가 많다. 


 셋째, 마이크를 잡은 사람이 노래를 잘 하거나 못 하거나는 큰 상관이 되질 않는다. 마이크를 잡은 사람이 정말 노래를 잘못할 때는 응원군은 얼마든지 있다. 노래를 잘하고 잘못하고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노래방이 한국 사람의 놀이 문화에 차지하는 비중은 생각보다는 크고 오래갈 것 같다.


 한국의 놀이문화는 굿판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한다. 굿판에서는 흥을 잘 내든 못 내든 별 상관이 없고 모든 사람들이 동등한 대접을 받는다. 술을 마실 줄 모른다 해도 억지로 술을 권하는 것도 굿판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처럼 가진 자라 할까 지배계급의 놀이행사도 이중적으로 되어 있는 사회도 드물지 싶다. 우리나라에서 지배계급은 겉으로는 ‘건전’을 외치지만 뒤로 돌아서서는 ‘호박씨 까는’, 원색적인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을 볼 때가 많다. 건전을 외치던 지배계급이 은밀히 또 하나의 ‘사모님’을 두고 있다든지 원색적인 오락을 즐기고 있을 때가 많다는 말이다.


 오는 겨울방학에는 학생들이 뭐좀 달라졌겠지. 어떤 녀석은 소설을 많이 읽었을 테고, 또 어떤 녀석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워 동해안 눈바람을 맞고 왔을 것이다. 이 모두가 어른이 되면 해 보기가 예상했던 것보다는 쉽지 않은 놀이들이라는 것은 녀석들이 어른이 되어보면 알 일.


 1주만 있으면 겨울방학이다. 신난다. 나에게 시작되는 영원한 겨울방학, 즉 은퇴가 내년으로 성큼 다가왔다. 나는 은퇴하면 무엇을 할까? 읽고 싶은 책을 읽는다? 그것도 쓸데없는 일. 10분만 보면 눈이 어른거려 책도 읽을 수 없을 것이다. 그때는 색소폰이나 부- 부- 불어보고 싶지만 그럴 기운이 있겠는가. 걸어서 10분 남짓 거리에 큰 저수지가 있으니 낚시질이나 갈까. (2004. 1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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