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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 문화
leed2017

 


 요사이 들어 급하게 줄고 있는 현상이지마는 아직까지 도시보다는 농촌에서, 젊은 층보다는 나이 많은 층에서 더 주주 찾아볼 수 있는 한국문화로 겸손 문화 내지 겸손의 미덕을 꼽을 수 있다. 겸손 문화란 한마디로 자기 자신을 남에게 내보이는 데 있어 높이는 것보다는 낮게, 나서기보다는 한발 물러서는 것을 권장하는 것이다.


 자기 자랑을 늘어놓는다든지, 아는 척하고 우쭐댄다든지, 할 수 있다고 뽐내기보다는, "잘 모르겠다", "자신이 서질 않는다" 등의 겸허한 자세를 취하는 것이 더 칭찬받는 행동이다. 그래서 우리 이름에도 "크게 어리석다"는 태우(泰愚), "늦게 좋다"는 만길(晩吉) 같은 이름이 심심찮게 눈에 뜨이지 않는가. 


 세상만사에 너무 자신만만한 태도를 가지면 "까불지 마라" "빈 수레가 더 요란하다"는 훈계로 한방 얻어 맞을 확률이 높다. 그래서 "이런 것 할 수 있어요?" 하고 물으면 "아이고, 제가 뭐 압니까? 힘껏 해 보겠습니다"고 대답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대접받는 행동이다. "어리석게 살아라" 하는 겸허한 태도는 어릴 때부터 가르치는 덕목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나 부처 같은 사람을 봐도 한마디도 속지 않으려고 눈을 반짝이는 영리한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어딘지 빈 데가 많은 사람들 같다. 도스토예프스키가 그의 소설 백치(白痴)에서 묘사한 예수의 이미지도 그렇다. 심리치료에서도 심리치료를 하는 상담사나 정신과 의사는 겸손의 미덕을 배우며 자란 환자를 사람을 자신감이 좀 모자라는 사람으로 판단하기 쉽다. 그러므로 심리치료를 하는 사람은 환자의 이 같은 지나친 겸손이나 어리석게 행동하라는 문화적 요구에 민감할 필요가 있다. 


 "글쎄요 통 자신이 없는데요" 나 "모릅니다" 하는 사람의 말을 정말로 "이 사람이 자신감이 떨어지는 사람이구나"로 단정하면 큰 잘못이다. 대학교수를 구하는 자리에 원서를 낸 사람이 "저는 배운 것도 보잘것 없고 잘 알지도 못하지마는 귀 대학교수직에 원서를..." 하는 것이 "귀 대학교수직 광고를 보니 내가 이 분야에서 제일 좋은 훈련을 받고 잘 가르칠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합니다"라고 하는 것보다는 더 좋은 점수를 받을 확률이 높다.


 앞에서 급속히 줄어든다고 했는데 이 겸손의 미덕이야말로 요사이 "내가 제일", "조금도 겁나지 않아요" "준비된 사람" 등의 자기선전에 바쁜 구미 대륙 개인주의 사고의 물결을 타고 빠르게 사라져가고 있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에 출마한 사람들을 보라. 얼굴이 뜨거울 정도로 한결같이 "내가 제일 잘난 사람", "내가 제일 적격자"라고 고래고래 외치는 것을 보면 겸손의 미덕은 우리 문화에서 꼬리를 감추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모든 일에 자신 있는 태도를 가진다는 것은 그리 나쁜 것은 아니다. 이것을 남에게 너무 거창하게 드러내 보일 때 문제가 된다. 정말 자신이 있어서 그렇다면 모르겠으나 자기의 부족감을 숨기려는 얕은 꾀에서 나온 것이라면 그 사람에게 무척 고민스러운 경우가 많을 것이다. "자신 있다"고 수선을 떨던 사람이 장담했던 것처럼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어떡하나? 이럴 때에도 부끄럽다는 생각을 전연 하지 못하는 "낯두꺼운" 사람도 있다. 


 이런 자신만만에 비해서 애당초 겸손한 태도를 보였던 사람은 위험이 적다. 작전으로 말하면 한 수 높은 작전이다. 운동선수들이 상대편 팀을 강팀이라고 칭찬하는 것과 같다. 시합에 져도 강팀에 졌으니 별로 부끄럽지 않은 일, 이기면 강팀에 이겼으니 우리가 더 강팀이란 말이다. 영어로 말하면 win-win(이래도 이기고 저래도 이기는) 상황이다.


 몇 년 전에 내 강의를 들었던 학생에게서 편지 한 통이 왔다. "....저는 많은 시간을 빈둥빈둥 놀기만 하다가 이제 와서 공부하려고 하니 잘 안돼요. 영 자신이 서질 않아요. 그러나 유학을 가면 열심히 공부할 거예요. 선생님 추천서 잘 써주세요..." 그런데 내가 보관하고 있던 성적기록을 보니 이 학생은 백여 명이 넘는 반에서 2등을 한 우수한 학생이었다. 


 자기 겸손에 쩔은 이 학생이 "나는 정말 자신 있어요"를 외치는 이 지구상에서 가장 개인주의 사회라는 미국에 가면 잘 견딜 수 있을까 은근히 걱정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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