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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d2017

 

 

술을 마시면 마땅히 노래를 부를 것이니
사람의 한평생은 과연 얼마나 되나?
무엇으로 이 근심 풀 것인가?
오직 술이 있을 따름이다

 


 위의 시는 중국 한(漢)나라가 망할 무렵에 황건적 난을 평정하여 천하에 이름을 떨쳤던 조조(曹操)의 시다. 그는 후일 그의 세력을 구축하여 중국 북방의 통치자가 되었다. 우리가 어렸을 때 읽었던 [삼국지]에서 적벽대전에 패하여 유비의 촉(蜀), 손권의 오(吳)와 조조의 위(魏), 이렇게 천하를 셋으로 나누어 가지게 되는 이야기가 나온다. 조조 같은 난세의 영웅으로 불리는 사람이 무슨 근심 걱정이 그렇게 많아서 술로 마음을 달래야 할까?


 [삼국지]에서 다음과 같은 일화를 읽은 것이 어렴풋이 생각난다. 한번은 조조가 싸움에 패하여 혼자서 쫓기는 길에 옛날 자기로부터 많은 신세를 진 어느 농부의 집에 몸을 피하여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새벽녘에 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 화다닥 일어난 조조는 가만히 살펴보니 그 집 주인이 숫돌에 사각사각 칼을 갈고 있는 게 아닌가. 놀란 조조는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가서 칼을 갈고 있는 그 집 주인의 목을 한 칼에 베어버리고 그 집을 떠나버렸다. 가다가 달밤에 이쪽으로 걸어오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조금 전에 목을 베어버린 집 주인의 큰아들이었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헤어져서 갈 길을 가던 조조는 갑자기 되돌아가서 그 농부의 아들 역시 한 칼에 베어버렸다. 그런데 사실은 그날 밤 칼을 갈다가 조조에게 죽임을 당한 농부는 귀한 손님이 왔다고 닭을 잡아 옛날 자기에게 은혜를 베풀었던 조조를 귀빈 대접하기 위해서 숫돌에 칼을 갈고 있었던 것이다. 달밤에 조조에게 죽임을 당한 농부의 큰아들은 조조를 대접하기 위해 마을에 내려가서 막걸리를 사 오던 참이었다.


 이 일화를 보면 조조는 무척 의심증이 많은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의심증이 전혀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마는 그것이 지나치면 방금 말한 일화 같은 불행을 가져오기 쉽다. 조조 같은 사람에게는 세상만사가 오로지 '내 복리나 내 목적 달성에 어떤 이익과 손해를 끼치는가?'만 보이지 우리가 귀한 덕목으로 생각하는 신의라든가 의리, 협동, 우정 따위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도망쳐 다니는 사람에게 하룻밤 은신처를 제공하고, 닭을 잡아 대접을 하려고 칼을 가는 사람을 죽였을 때 "차라리 내가 남을 배반할지언정 남이 나를 배반케 두지는 않겠다(寧我負人, 而母便負我)"라고 서슴없이 뇌까린 권모술수의 대가 조조, 그도 죽을 때 가서는 자기에게 억울한 죽임을 당한 사람들이 자신의 무덤을 파헤칠 것을 걱정해서 자그마치 72기의 무덤을 만들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한다.


 이 세상에 자기가 죽고 난 후에 일을 걱정한 사람이 어찌 조조뿐이랴. 중국 진(秦)의 시황(始皇)이 그랬고 임진왜란을 일으킨 일본의 풍신수길이 그랬다. 플루타크에 따르면 알렉산드로스는 적국 페르시아를 세운 국부(國父) 퀴로스(Cyros)의 무덤이 도굴된 사실에 큰 충격을 받고 퀴로스의 무덤을 파헤친 도굴범을 잡아 처형하고 퀴로스의 무덤에 다음과 같은 명문(銘文)이 적힌 비석을 세웠다.

 


"나그네여, 그대가 누구든, 어디에서 온 분이든(Whoever thou art and from whencesoever thou comest) 나는 그대가 올 줄을 알았소. 나는 페르시아 제국의 건설자 퀴로스, 바라건대 내 몸을 덮고 있는 한 줌의 흙을 탐내지 마소서(Do not grudge me this little earth which covers my body.)"

 


 남을 믿지 못한다는 것은 세상일을 믿지 못하겠다는 말이다. 그런데 정신분석학을 공부하는 사람 중에는 남을 믿을 수 있고 없는 것은 생후 1년 사이에 그 기반이 잡힌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의 주장을 따르면 남을 믿는다는 것은 곧 신체적으로 편안하고, 공포가 적고, 미래에 대한 걱정이 적어서 "이 세상은 살기에 쾌적하고 한번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다" 하는 요지의 기대감을 형성하는데 이러한 긍정적인 기대감은 아빠 엄마가 영아의 기본욕구, 특히 먹는 욕구를 민감하게 알아차리고 빨리빨리 만족시켜 주어야 잘 형성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성인이 되어 다른 사람을 믿고 못 믿는 것은 갓난아기 때부터 부모에게서 경험한 애착 정도와 깊은 관계가 있다는 말이다.


 이렇게 보면 난세의 영웅 미스터 조(曹)는 어렸을 때 그의 부모들로부터 사랑을 듬뿍 받지는 못했다는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두사람 다 부모의 애착이 없이도 A는 성인이 되어 남을 믿는 사람이 되고, B는 조조처럼 남을 믿지 못하는 사람이 되는지 심리학은 이 정도까지 완벽하게 설명할 지식이 없다.


 아무튼 죽은 후에 자기 무덤을 걱정한다는 것 자체가 다음 세상이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사형집행을 기다리는 어느 사형수에게 담배를 권하니까 "건강에 해롭다"는 이유로 담배를 거절하더라는 일화처럼 인간은 실제로 저 세상이 있고 없고 간에 선천적으로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자기 자신에 대해 충실하려는 욕구가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무엇으로 이 근심 풀 것인가?
오직 술이 있을 따름이다
근심이 있고 없고 간에 요사이 술을 마시는 양이 부쩍 늘어 걱정이다. (2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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