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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방
leed2017

 

 그것을 노래방이라 부르든, 노래연습장이라 부르든, 가라오케라 부르든 상관없다. 우리의 감정을 노골적으로 혹은 은유적으로 거침없이 쏟아놓는 공간이 바로 거기다. 
 세대 차이가 칼로 케이크 자르듯 분명할 때가 있는가 하면, 나이라든가, 남과 여, 사회적 지위 같은 것은 찾아 보려야 찾아볼 수 없는, 실로 감정의 용광로가 되는 공간이 될 때도 있는 곳이 바로 거기다.


 시대상으로는 동요와 가곡, 가곡과 대중가요가 분화되지 않았던 여명기 1920년대의 [오빠생각]과 [황성 옛터]에서부터 시작해서 "I love you baby"의 외래어가 난데없이 중간에 뛰어드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2001년까지 이어지고, 칠갑산에서 소양강을 거쳐 서울의 마포종점까지 이어지는 공간이 바로 거기다.


 "아이구, 재 좀 봐" 하는 놀라움과 찬사가 쏟아져 나오는 것도 거기요, 평소에 조용하기로 소문난 얌전이가 '야수'로 변해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흥을 돋우는 곳도 거기다.
 처음 만난 사람들일지라도 인사를 나눈 후 곧바로 그곳에 가서 한 시간 남짓 있다가 나오면 서먹서먹하던 기분은 싹 가시고 공중목욕탕에라도 함께 갔다 온 것처럼 가깝고 친숙하게 느껴지는 곳이 거기다. 


 [이별의 부산정거장]도 거기에, [사랑은 나비인가 봐], [우리의 소원은 통일], [고향의 봄]도 거기 있고 [돌아와요, 부산항]은 물론 [돌아오라 소렌토로]도 바로 그 좁은 2m x 3m 공간 안에 있다.


 노래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래서 재미있고, 가수 뺨칠 정도로 잘 부르는 사람은 또 그래서 재미있는 곳이다. 


 오직 제 흥에 겨워 손뼉을 치고 웃음이 철철 넘치는 그곳, 남이 노래를 부르는 동안 자신이 부를 노래를 준비해 두어야 하는 예의를 갖추어야 하고, 혼자서 욕심을 부리기보다는 남들에게도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양보할 줄 아는 겸양의 미덕을 배우는 곳 또한 거기이다.


 모든 사람들이 참여한다는 의미에서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공간이며, 작으나마 대중음악에 대한 개인의 잠재력을 키울 수 있는 곳으로 볼 수도 있다. 


 쌓이고 쌓인 감정을 노래를 통해 발산할 수 있는 공간이니 치료적 효과도 만만치 않은 곳. 한 가지 흠이라면 반주가 가수를 따르기보다는 가수가 반주를 따르는 것이랄까.
 실력에 대한 평가도 중간고사 결과보다도 더 빠르게, 바로 그 자리에서 매겨져 나오는 곳이다. 무어니 무어니 해도 그 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 가장 좋은 점 하나는 낙제라고는 없는, 다시 말하면 모든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불어 넣어주는 곳이라는 것이다. 제일 낮은 점수가 "열심히 불렀습니다" 하는 칭찬이다.


 그런 이유 때문인가, 그 곳에서 심리적 상처를 입고 나왔다는 이야기는 아직 들어보질 못했다. 그 공간 안에 몸을 담고 있는 순간만큼은 모든 세상 근심 잊고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즐기는 곳이다. 아, 4천만 겨레가 그 공간 안에서 느끼는 신바람으로 365일을 보낼 수만 있다면...

 

 학교라 불리는 곳도, 그것이 초등학교든, 중.고등학교든, 대학교든 항상 즐거움과 격려가 넘치는 곳, 낙제라는 것이 없는 곳이 된다면 오죽이나 좋을까? (200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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