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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으로 돌아가다
leed2017

 


 시조 시인 백수(白水) 정완영 선생에 따르면 귀향(歸鄕)은 그냥 잠시 고향에 돌아간다는 말이고, 귀성(歸省)이란 부모님께 문안드리고 선산을 살피러 간다는 뜻이며, 귀고(歸故)는 부모님이 안 계시는 옛 고향을 찾는 말이라 한다. 그러면 낙향(落鄕)이란 무슨 뜻인가? 낙향이란 늘그막에 뼈를 묻으려고 부모의 땅에 돌아가는 것이다.


 1999년 7월, 나는 이화여자대학교에 새 직장을 얻게 되어 22년 봉직하던 웨스턴 온타리오 대학교에서는 명예퇴직을 하였다. 33년의 캐나다 생활을 청산하고, 서울로 가는 대한항공기에 몸을 실었다. 김포공항을 떠난 지 꼭 33년 만이다. 다시 캐나다로 돌아올 것인지 아닌지 나도 잘 몰라 어리벙벙한 심정으로--.

 

 

나두야 간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 보낼 거냐
나두야 가련다.

 

 

 위는 1930년 3월 [시문학] 창간호에 실린 용아(龍兒) 박용철 노래의 머릿 부분이다. 


그로부터 69년의 세월이 흐르고 난 1999년 8월, 캐나다 온타리오 주 한 모퉁이에서 나는 염불(念佛)처럼 이 노래를 마음속으로 자꾸 되뇌이고 있다. 어처구니없게도 나는 지금 고국으로 돌아가는 귀향, 엄밀히 말해서 귀고의 사연을 적고 있는 것이다.


 1966년 9월 12일 새벽, 전공서적 몇 권과 낡은 영한사전 한 권, 그리고 신사복 한 벌과 속옷이 가득 든 여행가방 하나를 들고 양복 안주머니에는 전 재산인 미화 60달러를 깊숙이 넣고 밴쿠버 국제공항에 내렸다. 그로부터 33년,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32년 10개월 11일이란 세월을 이 캐나다에서 봄이 오면 이 땅에 피어난 들꽃들을 보고 겨울이면 그 위로 휘몰아치는 눈바람을 보며 달을 보내고 해를 맞았다.


 이걸 두고 운명의 장난이라던가, 불과 몇 주 전 한국에서 걸려온 우연한 전화 한 통이 내 교편생활의 마지막 부분을 고국에서 보내게 된 계기가 되고 말았으니. 인생살이란 이처럼 극히 우연하고 사소한 일이 들어서 희극과 비극으로 갈라놓을 때가 있는 것이다.


 그동안 나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 비바람을 피할 집을 주고 두 아이를 낳아 길러주고, 장모님의 유택(幽宅)을 마련해준 이 은총의 나라, 때로는 신바람과 쾌재가 저절로 터져 나오지만, 또 어떤 때는 이 땅이 소월의 삼수갑산처럼 나를 잡아 가두어두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원망조차 들던 땅. 


 이제 나는 이 땅에서 일어난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33년 전 김포공항에서 비행기에 오르던 그 부푼 가슴으로 귀향(歸鄕)의 트랩을 밟는 것이다.


 많은 신세, 많은 사랑을 주던 그 많은 정든 사람들에게 나는 작별의 손수건을 흔든다. 정(情) 떼어먹는 것이 돈 떼어먹는 것보다 죄가 더 크다는 세상, 이승에서의 정이란 것도 전생에서 맺은 인연 때문이라는데 내 어찌 이 수많은 정든 사람들을 잊어버릴 수 있으랴. 6, 7년이 지나면 다시 돌아오겠다는 스스로의 다짐이지만 한조각 떠가는 구름과 같은 인생행로를 알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이 아닌가.

 

 

. 멀리 떠나가며 손을 흔들 때
정든 산 언덕, 언덕 소나무들은
모두들 사람같이 울어주는구나
아, 아 잘 있거라 잘 있거라
나는 결코 떠나는 것이 아니다

 

 

 광주 봉기 당시 학다리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던 김준태 님의 노래를 빌려 나는 30년 전에 진작 썼어야 할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지금에야 쓰고 있는 것이다.


 잘 있거라, 정든 사람들이여, 그리고 캐나다여, 낯익은 구릉(丘陵)과 시내여, 숲속으로 거닐던 오솔길이여, 그리고 그 위에 무심히 떠가는 맑은 구름이여, 눈바람 휘몰아치던 평원과 산맥이여, 잘 있거라, 잘 있거라. 33년 인연을 더 이어가지도, 끊지도 못하고 나는 떠나간다. 돌아올 때까지. (1999,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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