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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leed2017

  

 지난 4월, 캐나다의 수도 오타와 한인회에서 강연 청탁이 있어 그 도시에 가서 하루를 묵고 이튿날 돌아왔다. '정신 건강'에 대해 얘기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강연 시작 전에 나를 초청해줘서 진심으로 고맙다는 얘기를 했다. 은퇴를 하고 집에만 갇혀 있다시피 하니 오라는 데도 없고 가라는 데도 없는 적막강산… 하도 오래간만에 청중 앞에 서니 말도 잘 안 나왔다.


 교사나 변호사, 성직자는 입을 놀려 생계를 유지해가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관(棺) 뚜껑에 못을 박는 날까지는 부지런히 입을 놀려야 사는 보람을 느끼는 직업이다. 대중 앞에서 강연을 한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10정도를 알면 5정도의 실력을 발휘하는 것이라기보다는, 5정도 아는데 10정도의 실력이나 되는 것처럼 허풍을 떨고 아는 척하기 마련이다. 그래도 청중은 모르고 넘어가기가 십중팔구.


 전라남도 광산이 낳은 전설적인 명창 임방울이 한창 날리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를 모시고 다니던 제자요 역시 명창 강도근을 보고, 한번은 공연이 끝나고 청중의 우레 같은 박수와 환호가 터지자 임방울은 "병신들, 내 목소리가 넘어간 줄도 모르고. " 하며 눈에 눈물이 고이더라는 것. 그 일이 있은 후 그는 목소리를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며 삼 년 동안은 한 번도 무대에 서지 않았다는 것이다.


 엉터리가 되는 길은 분야에 따라 다르다고 할 수 있으나 일반적으로 마음만 먹으면 그다지 어려운 것은 아닐 것 같다. 예로, 내가 한 이삼일 동안 거북이 그림을 그려가며 화학공부를 했다 하자. 흑판에 원소기호를 마구 적어가며 떠들면 화학을 전공한 전문가가 볼 때는 "저 녁석이 엉터리구나." 대번에 판별을 하겠지만 나머지 청중들은 "화학도 아는 실력 있는 강사"로 높이 평가하지 않겠는가.


 선입견이 판정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어떤 심리학자는 심리학자들과 정신과 의사들을 대상으로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다. 콧수염에다 인물 잘 생기고, 말솜씨가 뛰어난 어느 건달을 철학교수로 소개하여 이 엉터리 교수가 30분 동안 즉석에서 꾸며낸 부호를 써가며 엉터리 강의를 했다. 강의가 끝나고 시행된 강사 평가에서 의외로 많은 정중들이 "강의가 퍽 흥미롭고 많이 배웠다"고 답했으며, 강사가 "실력이 대단한 사람"으로 평가됐다는 것이다. 이걸 보면 대중을 속여 가며 먹고 사는 교수, 스님, 목사, 화가, 문필가, 변호사 등 엉터리와 가짜가 생겨나기 마련인 것 같다.


 엉터리의 가장 재미있는 예는 내가 한국 E 여자대학에 있을 때 일어났다. 신문보도에 의하면 비엔나에 있는 어느 실내악단이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초청 공연을 하였다. 그런데 그들의 연주에서 자꾸만 불협화음이 튀어 나오기에 어느 청중 한 사람이 뒷조사를 했더니 그들은 비엔나에서 이름이 알려진 악단이 아니고 길거리에서 연주하는 거리의 악사들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그런데 그 이튿날 권위 있다는 어느 음악평론가가 신문에 평을 쓰기를, "어젯밤에 비엔나 음악의 정수를 맛보았다."고 썼다. 이 음악평론가가 엉터리라는 사실도 만천하에 드러난 것이다. 물론 거리의 악사라고 해서 음악의 정수를 못 낸다는 법은 없지만…


 엉터리 행세를 하기가 가장 쉬운 분야는 어느 분야일까. 내 생각으로는 교육학, 심리학, 종교학, 철학, 정치학, 사회학 등… 이 분야에서 쓰는 말이 일반사람들이 쓰는 말과 비슷한 분야에서는 엉터리 행세를 하기가 특히 쉬운 것 같다. 엉터리가 가장 많은 분야는 성직자가 으뜸, 종교 분야는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훈련을 받은 사람과 받지 않은 사람 간에 쉽사리 구별이 가질 않는다. 이런 분야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엉터리 행세를 하기가 쉽다.


 나는 젊은 시절, 의도적으로 엉터리요 가짜의 주인공이 된 적이 있다. 지금부터 30년 전쯤 가짜 목사증을 하나 구입한 것이다. 그러나 이 가짜 목사증으로 목회를 한 번도 한 적이 없고, 목사로서 행세를 한 적은 친구들 앞에서 장난삼아 해 본 것 말고는 없다.


 이 목사증으로 한 번도 이익을 추구한 적이 없음은 물론 사람들에게 믿으라는 권유도 한 적이 없다. 교회 간판도 내건 적이 없었고, 교회를 창립하려는 어떤 움직임도 없었다. 그러니 가짜치고는 무척 "양심적"인 모범 가짜목사라고 할 수 있겠다.


 가짜인지 엉터리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판결해주는 재판소라도 있으면 나도 한번 가보고 싶다. 아마도 먹고 살기 위해 이런 짓을 한 것도 아니고 순전히 재미로 그 구렁이 알 같은 돈을 낭비한 데다가 성직자의 거룩한 이름까지 더럽혔으니 죄질(罪質)이 나빠서 가짜에다 엉터리라는 언도가 내리고야 말 것 같다. 그러나 시국은 바야흐로 너무나 많은 가짜와 엉터리들이 득실거리는 세상, 나를 잡아 가둘 감옥도 초만원일 테고 또 내 나이가 74세의 고령임을 참작해 훈계 방면쯤으로 그치지 않을까. (20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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