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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d2017

 
 꿈이란 낱말처럼 여러 가지 의미를 갖고 있는 낱말도 그리 많지 않지 싶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민중서관에서 펴낸 <국어 대사전>에 적힌 꿈의 정의다. 두 개만 보자. 꿈 = 1. 잠자는 동안에 생사와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현상을 느끼는 착각이나 환각. 2. 실현될 가능성이 희박하거나 전혀 없는 허무한 바람[願].


 나는 사전에 적혀 있는 대로 잠자는 동안에 꿈을 많이 꾼다. 그러나 깨고 나면 한 가지도 생각나지 않는 그런 개꿈이 대부분이다. 꿈이란 꿈을 꾼 사람이 눈을 뜬 상태에서는 사회적, 도덕적으로 용인될 수 없는 의식, 무의식적 욕구나 동기적 갈등이나 불안이 사회적 제재(制裁) 없이 표현되는 것으로 보는 심리학자들이 많다.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에 따르면 꿈은 환자의 동기적 갈등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중요한 임상적 자료라고 한다.

 

그러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전체가 현대 과학적 심리학에서는 인정을 받지 못하다 보니 덩달아 그의 화려한 꿈 해석도 현대 심리학에서는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러니 요즈음 꿈은 정신분석학 테두리 안에서 임상적으로 이용하는 심리 치료사는 드물다.


 소년기 때의 희망과 포부를 가리키는 의미로서의 꿈은 나에게는 퍽 적었던 것 같다. 여름날, 예안읍에 있는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다가 청고갯마루에 앉아서 하늘에 떠가는 비행기를 보며 무슨 꿈을 꾸었을까. 아마도 "저 비행기 안에 사람이 탔다지. 나도 커서 비행기를 한 번 타 봤으면..." 하는 게 고작 내 꿈이었을 게다. 대학이라는 교육기관이 있다는 것도 모르는 녀석이 어찌 큰 꿈을 꿀 수 있겠는가. 서울에서 학교에 다니던 둘째 형님이 방학이 되어 내려와서 아버님과 대학 가는 이야기를 옆에서 듣고 공부 많이 하는 곳으로 대학이란 데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동렬 시조 이야기> 원고를 쓰다 보니, <꿈에 보는 님이...>, <꿈에 다니는 길이...>, <꿈에라도 좋으니 자주 오소서> 같은 꿈을 갖다 대는 시조가 꽤 여럿 나왔다. 백주(白洲) 이명한 같은 남자가 꿈을 시조에 적은 이도 있지만 꿈을 노래한 시조의 대부분은 여성 쪽, 흔히 많은 남자를 상대하는 기녀직에 있던 여성이 그리워하는 남성에게 보내는 사랑의 연서였다. 소월의 스승 안서(岸曙) 김억이 황진이의 한시(漢詩)를 우리말로 옮기고 김성태가 곡을 붙인 "꿈길밖에 길이 없어 꿈길로 가니, 그 님은 나를 따라 길 떠나셨네." 같은 연심(戀心)을 담은 노래는 억만 정인(情人)들의 가슴을 울리게 하지 않았는가.


 집 떠난 사람이 꿈을 빌려 두고 온 처자식과 매화꽃 피던 고향집을 그리워한 우선(藕船) 이상적의 <꿈[車中記夢]>이 있다.

 

초구 두른 말뚝 잠. ...어렴풋 돌아온 꿈
고향이어라 ...눈 갠 냇가 집엔 아무도 없고
문을 지켜 학으로 선 매화 한 그루.
(坐擁貂?小睡溫 ... 一樹梅花鶴守門)

 

 이상적은 추사(秋史)를 사숙하는 역관(譯官) 출신 시인. 동지사(冬至使)를 따라 수레에 실려 북경으로 가면서 그 포근한 맛에 깜박 잠이 들어 꿈을 꾸었다. 우선은 북경에서 많은 책을 조선에 가져와 제주도에서 귀양살이를 하고 있는 스승에게 책을 여러 번 보내 드렸다. 이에 감복한 추사는 답례로 <세한도(歲寒圖)>를 그려서 우리 우정 변치 말자며 우선에게 보냈다. 집 주위에 소나무 몇 그루를 까칠까칠한 붓으로 그린 듯한 이 그림은 오늘날 한국 문인화의 빼어난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나는 어려서부터 꿈이 많은 아이는 아니었다. 그저 실컷 먹고 마시고 노는 그야말로 행복한 돼지였지 생각하는 소크라테스는 아니었다. 크게 출세한 사람들 중에 자기는 어릴 때부터 큰 꿈을 가졌노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가끔 눈에 띈다. 대통령을 지낸 김영삼 씨는 자기는 중학교 때부터 '미래의 대통령 김영삼'이라는 아홉 글자를 써서 책상 위에 세워 두었다고 한다. 언젠가 임상심리 교과서를 들춰 보니 조울증(manic-depressive) 환자 중에 이같이 턱없이 높은 꿈을 떠들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고 적혀 있었다. 그 당시 내가 김영삼 씨와 같은 학년으로 이 말을 들었다면 "간뗑이가 부어오른 미친놈"으로 웃어넘기고 말았을 것이다.


 나는 중학교 때 배우던 Standard 영어 교과서 맨 처음에 나오는 "Boys, be ambitious(소년들이여, 야망을 가져라.)"라는 문장에도 아무런 일깨움을 얻지 못한 핏기 없는 소년이었다. 큰 꿈이라고는 없었던 나는 고등학교에 가서야 "나도 커서 대학에서 가르쳐 봤으면.." 하는 생각을 해봤다. 이것도 꿈이라면 꿈이겠지. 그래서 대학을 졸업했을 때 아버님 모교에 영어교사로 가보라는 것도 거절하고 말았다.


 세월, 즉 천도의 순환은 꿈이 과연 꿈으로 끝났는지 아닌지를 잘 가려준다. 백묵을 놓고 무위도식한 지가 어느덧 14년. 이제 나는 꿈이고 뭐고 다 지나갔다. 언젠가 가깝게 지내던 K씨가 요새 어떻게 지내느냐고 묻기에 나는 "희망도 없고 그렇다고 절망도 없습니다. 꿈도 없고, 실망도 없고, 눈물도 없고, 웃음도 없고, 기쁨도 없고, 슬픔도 없고- 오욕칠정(五欲七情)이 강 저쪽으로 건너간 무사무념(無思無念)의 생활입니다. 그저 건강하게 살려고만 발버둥치지요." 하고 마치 사설시조를 외우듯 길고 지루한 대답을 했다.


 제법 근사한 대답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집에 돌아와서 생각하니, 이 세상에 식물인간이 된 사람을 빼고 이렇게 사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또 헛말을 했구나, 피식 웃음이 나왔다. (20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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