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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광란(October Madness)
kwangchul

 

 10월의 사나이(Mr. October)라는 애칭으로 불리던 야구선수가 있었다. 레지 잭슨(Reggie Jackson)이다. 21년간 메이저 리그에서 활약하며 14번이나 올스타(All star)에 뽑혔던 전설적인 선수이다. 그는 1977년 뉴욕 양키스 유니폼을 입고 양키스 홈구장에서 거행된 월드시리즈 6차전에서 연타석 홈런 세 방을 터트리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내며 팀을 챔피언으로 만드는 견인을 하였다. 10월에 열리는 가을야구(Play Off)에 출전만 하면 중요한 순간 결정타를 날려 팀을 승리로 이끄는 활력소 역할을 하여 붙여진 애칭이다.

 메이저 리그 야구 선수들은 이른 봄 4월부터 9월말까지 캐나다를 포함한 북미 대륙을 횡단하며 162경기를 하게 된다. 그 긴 여정을 치르는 것은 월드시리즈 챔피언이 되기 위한 가을 야구 플레이오프에 입성하는 것이 목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메이저 리그 야구선수에겐 10월에 열리는 가을 야구의 출전은 꿈의 무대이기도 하다.

 토론토에는 블루제이스라는 아메리칸 리그 동부에 속하는 야구팀이 있다. 금년 시즌은 팔꿈치 부상으로 ‘토미 존’ 수술을 받고 재활 중인 한국선수 류현진의 소속팀이기도 하다. 그 팀이 와일드카드(Wild Card) 1위로 가을야구에 진출하여 지난 2일간 경기를 치렀다. 상대는 와일드카드 2위로 올라온 시애틀에 연고지를 둔 매리너스다.

 두 팀은 1977년 같은 해에 각각 토론토와 시애틀을 연고지로 하여 창단된 팀들이다. 캐나다에는 1969년에 몬트리올에 연고지를 둔 내셔널리그 소속 ‘몬트리올 엑스포’가 있었으나 현재는 블루제이스가 캐나다 국적의 유일한 메이저 리그 팀이다.

 전력 면으로 볼 때 토론토는 타격이 우세하고, 시애틀은 투수를 포함한 수비가 강한 팀이라 할 수 있다. 많은 야구전문가들은 홈구장의 유리한 출전권을 획득한 토론토의 승리를 예견하였으나 블루제이스는 8대1까지 리드하던 경기를 지키지 못하고 10대9로 패배하며 가을 야구에서 탈락하게 된다.

 8회 초, 투 아웃 만루찬스에서 시애틀 선수가 친 공은 중견수(Center Fielder)와 유격수(Short stop) 사이에 떠오른 뜬 공이었다. 잘 맞지 않은 공이었으나 그 위치가 애매한 볼은 센터필더와 유격수의 충돌로 이어졌으며 토론토는 3점을 허용하게 된다.

텍사스 히트라는 야구용어가 있다. 평범한 외야로 향해 뜬 공이다. 그런데 그 위치가 외야수와 내야수 사이에 위치해 엉뚱하게 안타로 이어질 수 있다. 평범한 뜬 공으로 보였던 타구가 토론토에겐 재앙을, 시애틀에겐 행운을 안겨 승리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야구에서 그리고 야구이기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어쩔 수 없는 결과이다. 그런데 불길한 징조는 5회 말, 투 아웃 토론토 공격 때 교체 투수로 등장한 시애틀 투수가 초 구를 토론토 선수 머리를 향해 던졌을 때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지고 있던 경기 이판사판 실투가 아닌 고의적인 빈볼(Beanball)이었다. 100마일로 던져오는 강속구에 속절없이 당한 타석에 있던 메리필드 선수는 조기 교체되었고 큰 격차로 벌어졌던 경기는 그 후 시애틀의 승리로 끝나게 된다. (헬멧이 없었다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었다.)

 토론토 선수들은 최선을 다해 경기를 하였다. 그러나 야구의 신은 토론토 블루제이스에 냉정하였다. 야구 경기를 보면 매번 느끼는 감정이지만 꼭 인생의 단면을 보는 것 같다. 성공이 있으면 반드시 실패도 따라온다. 그런데 그 실패에 연연하여 헤어나지 못하면 낙오자가 될 수도 있다. 참고 기다리며 다시 일어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모든 스포츠 경기는 실력이 있는 팀이 경기를 잘하고 있다고 해서 승리한다는 보장이 없다. 특히, 야구는 행운이 많이 작용하는 경기라 할 수 있다. 빗맞은 공이 엉뚱하게도 안타가 되고 잘 타격한 공이 아웃이 되기도 한다. 지고 있던 경기도 만루 홈런과 같은 변수가 생겨 승리할 때가 있기도 하지만 그 한방 때문에 지는 팀이 있기 마련이다.

 우리의 인생과 흡사한 파란만장의 연속이 야구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징크스도 타경기보다 많은 경기이다. 징크스는 한마디로 어떤 것과 연결만 되면 이상하게 운이 없는 일이 발생하는 것을 말한다. 물론 미신으로 치부하여 떨쳐버릴 수 있으면 좋으련만 꼬리가 길어 징징 엉켜오는 것이 징크스다.

 사람의 일상생활도 잘 풀릴 것 같은데 고전의 연속이 될 적이 있다. 그래서 야구팀 감독들은 이길 수 있는 경기를 지는 경우 선수들에게 빨리 잊어버리고 다음 경기를 준비하라고 한다. 그러나 플레이오프 가을 경기는 지는 경우 내일이 없다. 탈락하여 내년 시즌을 기다려야만 한다. 그래서 토론토 팀의 탈락이 더욱 아쉽다.

 경기 후, 토론토 간판선수인 게레로는 “현재 나의 심정은 형형할 수 없이 슬프다”고 토로하였다. 기다렸던 경기였고 이길 수 있는 경기였다. 잊어버리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김광석의 ‘일어나’를 들으며 조금이나마 아쉬움을 달래본다.

 

가볍게 산다는 건 결국은 스스로를 얽어매고

세상이 외면해도 나는 어차피 살아 살아있는걸

아름다운 꽃일수록 빨리 시들어가고

햇살이 비치면 투명하던 이슬도 한순간에 말라 버리지

일어나 일어나 다시 한번 해보는 거야

일어나 일어나 봄의 새싹들처럼

 

 내년 봄, 내년 시즌 다시 한 번 기다려 봐야겠다. 류현진 선수가 재활에 성공하여 마지막 시즌이 될 수 있는 내년에는 마운드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그려본다.

 

 *참고: 빈볼(Beanball)은 야구용어로 상대선수의 머리를 향해 공을 던지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빈(Bean)은 머리를 의미하는 속어이다. 빈볼을 자주 던지는 선수는 헤드헌터(Headhunter)라고 불리기도 한다.

 

(2022년 10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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