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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의 장막(Iron Curtain)
kwangchul

 

 커튼을 내리는 사람이 있으면 올리는 사람이 있다. 2차 대전 후, 냉전시대에 철의 장막을 내린 소련인이 있었다. 스탈린이다. 40여년 후, 그 철의 커튼을 걷어 올린 소비에트연방의 법관출신 정치인이 있었다. 지난 화요일(8월30일) 91세로 세상을 하직한 고르바초프(Gorbachev)이다.

 철의 장막. 냉전시대에 미국의 자본주의 진영과 소련의 공산주의 진영이 날카롭게 대립하여 서로 물질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벽을 쌓는 것을 표현한 말로, 소련의 진영에 속한 공산국가들을 풍자한 말이다. 하지만 철의 장막이란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나치제국 선전부 장관이었던 괴벨스였다.

 그는 1945년 2월 “지금 독일이 무기를 내려놓는다면 소련이 동남부 유럽 그리고 독일 영토 대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소련 본토를 포함하는 이 거대한 영토에는 철의 장막이 내려지고 그 뒤에선 인종 대학살이 이루어질 것이다"고 했다.

 이 불길한 예언은 그대로 적중하여 철의 장막 안에선 피비린내 나는 대학살이 이루어지게 된다. 그렇다 해도 이 용어가 세간에 알려지게 된 것은 1946년 3월 윈스턴 처칠의 미국 방문 연설에서였다. 그는 소련의 폐쇄적이며 비밀적인 태도를 빗대어 철의 장막이라는 말을 사용하였으며, 그 후 20세기 냉전의 대명사로 쓰이게 된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러시아제국이 혁명으로 멸망하고 소련이 출범하게 된다. 193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미국은 소련을 불법국가로 취급하고 외교관계를 거부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나치독일, 이탈리아, 일본제국 등과 전쟁을 치르며 미국과 소련은 동맹관계를 결성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전쟁을 치르는 소련에 대량의 군수물자를 지원하게 된다. 미국과 소련은 나치독일이 점령했던 지역들을 차례차례 탈환하며 최후의 승리를 향해 전진하였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소련에 의해 탈환된 지역들은 스탈린에 의해 공산주의 국가로 전락하게 된다. 1945년 태평양전쟁 말기 8월에는 교활한 스탈린의 전략에 의해 소련군이 동부전선에 개입하여 만주와 한반도 북부는 물론 사할린 남부와 쿠릴열도까지 진격하게 된다.

 소련군의 한반도 진격은 종전 이후 남북 분단의 비극을 싹트게 한다. 1948년 이후, 미국과 소련은 한국에서 군대를 철수하기로 합의하게 된다. 1951년 1월 12일,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과소평가한 미국의 국무장관 애치슨은 한반도를 방위선에서 제외한다는 ‘애치슨 라인’을 발표한다.

 그 이전 1949년 6월30일, 남한 주둔 미군 7만여 명은 이미 철수를 완료한 상태였으며, 대한민국 국군은 탱크 한 대 없는 빈껍데기 군대로 남아있게 된다.

 결국, 2차 세계대전 후 미국과 소련과의 관계는 애써 만든 물건을 남이 가진다는 속담인 “죽 쒀서 개준 꼴"이 되며 한반도는 냉전 최초의 서방세력인 자유진영과 공산세력의 대리전 격전지가 된다.

 이 모든 것의 배후조종에는 크렘린의 스탈린이 있었다. 권모술수에 능한 스탈린을 삼장법사로 비유한다면 미국은 그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손오공이라 할 수 있다.

 1984년부터 1993년까지 캐나다의 수상이었던 브라이언 멀로니는 토론토스타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8월 30일 서거한 고르바초프를 냉전시대의 인류에 대한 핵 위협에도 불구하고 총 한발 발사함 없이 냉전을 종식시킨 정치가라고 극찬하였다.

 정치적 경제적 몰락에 빠진 소비에트연방을 살리려다 결국은 냉전을 해체하며 철의 장막을 걷어 올리는 데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고르바초프는 1984년 7번째 소련 공산당 서기장에 선출된다. 그의 나이 54세, 최연소 젊은 서기장이었던 고르바초프는 침체된 경제를 회복하고 정치 과정을 효율화하기를 원하였지만 결과적으로는 사회주의 붕괴와 소비에트 연방의 몰락을 초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과 연방내의 공화국들을 억압하지 않고 냉전을 핵전쟁으로 몰고 가는 대신 평화적으로 끝내는 공적을 이루게 된다. 그는 동서관계를 획기적으로 개선시킨 공로가 인정되어 1990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캐나다와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가 냉전시대를 종식시켜 세계평화에 기여한 고르바초프의 공적을 높이 사는 반면 그의 조국 러시아에서는 소비에트연방을 해체시킨 반역자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러시아의 정부 대변인 드미트리 페스코프는 “고르바초프는 냉전을 종식시키는 데에는 기여를 하였을지 모르나 소비에트연방을 지키지 못하였고 러시아에 경제적인 면이나 정치적 평화를 불러오는 실질적인 면에서는 실패하였다”고 하였다.

 푸틴 또한 소비에트연맹의 붕괴를 초래하게 한 장본인으로 고르바초프를 탐탁지 않게 여기며 소련을 세계지도에서 사라지게 한 장본인이라고 비난하였다.

 푸틴의 야망은 스탈린 시대의 소비에트연방의 부활이다. 그것의 첫 번째 단추는 우크라이나 침공이었다. 이제 공은 서방세계로 넘어왔으며 어떻게 응수하여 받아 치느냐는 서방세계의 몫이다.

 1952년 아이크라는 애칭으로 불려진 미국 대통령 아이젠하워는 1953년 한국 전쟁에 휴전을 가져왔으나 그것은 전쟁의 진정한 승리가 아니었다. 7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휴전의 연장일 뿐이다.

 진정한 승리는 멈추어 있는 것이 아니라 창조에 있다. 우크라이나는 민주주의와 자유를 선택하였다. 그리고 이 시간에도 그것을 지키기 위하여 싸우고 있다. 캐나다와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가 우크라이나에게 승리를 안겨줄 수 있는 실질적 도움을 주기 바란다.

 고르바초프가 노벨평화상을 받았던 정당한 이유와 명예가, 푸틴과 같은 전쟁광’에 의하여 빛 좋은 개살구가 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고르바초프의 명복을 빈다. (202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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