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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 눈’(High Noon)
kwangchul

 

사랑하는 그대여 / 나를 버리지 마오 / 오늘은 우리 결혼식 날/

오 마이 다링 나를 버리지 마오 / 제발 기다려 주오/

나는 어떤 운명이 나를 기다리는지 모른다오 /

하지만, 내가 용감하여야만 한다는 것만은 알고 있답니다 /

나는 나를 저주하는 사나이와 결투를 하여야 한다오 /

내가 도망간다면 나는 치욕적인 겁쟁이, 비겁자가 된다오/ ~~

결투의 시간인 정오(High Noon)를 향하여 시계바늘이 가고있소 /

당신은 결혼식 때 나를 버리지 않겠다고 맹세하였소 / ~~

당신은 내 곁에 있어야만 한다오 /

끝까지 기다려 주오 / 끝까지 기다려 주오 /

 

 1952년 '프레드 진만' 감독이 당대의 최고 배우였던 ‘게리 쿠퍼’와 ‘그레이스 켈리’를 주연으로 발탁하여 만든 서부 영화의 주제가를 요약하여 번역한 것이다.

 1870년 어느 일요일 아침. 미국 서부의 '해들리빌'의 보안관 게리 쿠퍼(윌 케인 역)는 그레이스 켈리(에이미 파울러 역)와의 결혼식을 막 끝내고 신혼생활을 위해 다른 도시로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자신이 체포하여 사형 언도를 받게 한 살인범 프랭크 밀러가 주립 교도소에서 사면으로 풀려나 세 명의 부하와 함께 자신에게 복수하기 위하여 온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프랭크 밀러가 탄 열차가 도착하는 시간이 ‘하이 눈’, 하루 중 그림자가 제일 짧은 태양이 직각이 된 시간 바로 정오였다.

 1844년 태어나 56세가 되던 1900년 이 세상을 하직한 철학자 ‘니체’(Nietzsche)가 있다. 그는 19세기 유럽사회를 지배하던 전통사상과 진리와 참이라고 여겨왔던 모든 개념들에 대하여 대대적인 메스를 가하며, 그 자신 스스로 허상의 담벼락을 파괴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왔다 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망치를 든 철학자 혹은 폭발적인 다이너마이트의 철학자로 즐겨 불렀다. 그 니체 사상의 맥락은 ‘초인’(Ubermensch)과 영원회귀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용어가 가지고 있는 밑바닥에는 힘에의 의지(Will to Power)가 있다. 따라서 힘의 의지의 근본개념에는 초인사상이 불가피한 존재로 나타나게 된다. 위대한 정오. 태양과 수직이 되어 그림자가 제일 작은 바로 그 순간 초인은 먹구름을 뚫고 벼락을 잉태한 채 번갯불처럼 등장하게 된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한 가지 잊어서는 안 될 것이 초인을 미국식의 ‘슈퍼맨’(Superman)이라고 번역하는 것은 정확하지 못하다. 니체의 초인개념은 인간적인 것에 철저히 뿌리를 박고 있으므로 영어에서의 표현인 절대적 힘을 가진 슈퍼맨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그러한 차이점은 독일어의 넘어서서 ‘Uber’ 의미가 영어의 ‘Over’와 같은 맥락으로 슈퍼맨과 니체의 초인 사이에는 질적인 차이가 있다. 니체의 초인은 인간 본연의 삶의 체험 속에서 발견되는 것이지 복잡한 이론과 체계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볼 수 없다.

 하이눈의 주인공 윌 케인, 태양이 직각으로 높이 떠 그림자가 제일 짧은 정오 바로 그 순간 생과사의 길목에서 겁쟁이의 비겁자로 그의 이름이 비명에 새겨지기보다 번개를 잉태한 채 검은 먹구름을 뚫고 내려오는 초인의 길을 선택하였다. 비록 그것이 주검을 뜻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의 선택인 번개이며 광기인 초인을 택하였다.

 나는 한때 영화광이었던 적이 있다. 내가 보았던 많은 영화 중 인상깊게 본 영화를 두 개만 선택하라면 주저없이 하이눈과 ‘셰인’(Shane)이라 할 수 있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하이눈이다. 그 이유는 주인공들이 악의 세력을 물리치는 공통점은 같지만 셰인으로 분한 ‘아란 랏드’의 역할이 서부영화 전통의 영웅적인 초점을 맞춘 것에 비해 게리 쿠퍼가 분한 윌 케인은 의무와 사랑의 갈등에 고뇌하는 인간의 연민이 있었다.

 이 영화는 상연시간이 약 90분인데 영화의 스토리 전개도 거의 같은 시간대인 10시40분경부터 시작하여 High Noon 조금 지나서까지 상연시간과 스토리 전개가 거의 같은 시간대로 편집되었다고 한다.

 평범한 스토리 전개로 볼 수 있는 이 영화는 니체의 초인주의가 밑바닥에 깔려 있었다. "나, 너희들에게 위버멘쉬(초인)를 가르치노라! 사람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다"

 주인공은 겁쟁이 비겁자가 되기보다 죽음이 기다리는 정의가 있는 길을 선택하였다. 그것은 자유를 쟁취한 정신의 승리였다.

 니체는 묻는다. 그대들은 이 거대한 밀물을 맞이하여 썰물이 되기를 원하는가? 사람을 극복하여 초인의 길로 가기보다는 짐승으로 되돌아가려고 하는가?

 니체는 말한다. “보라, 나는 번개의 예언자이며, 구름으로부터 떨어지는 무거운 빗방울이다. 그리고 이 번개야말로 초인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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