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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의 칙서(Papal Bull)
kwangchul

 

 나의 조그마한 인디언 기숙학교 가방

“내가 처음으로 기숙학교에 갈 때/어머니는 작은 가방을 챙겨주셨지/어머니는 내가 필요한 모든 것을 사랑과 함께 챙겨주었어/그 안에는 내 장난감도 있었지/나는 그때 여섯 살이었으니까/나는 장난감을 포함한 그 모든 것을 다시는 볼 수 없었지/그 가방은 작았지만 내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랑이 담긴 가방이었는데/여섯 살 때 시작된 나의 여행은 12년의 긴 여행이 되었지/가벼웠던 내 가방은 내가 돌아올 때 아주 무거운 가방이 되었어/내 어머니의 사랑이 담긴 아름다운 가방이 아니었지/그 작았던 가방은 인생에 고통을 안겨주는 무거운 가방으로 바뀌었지/증오, 좌절, 분노, 마약중독자, 술주정뱅이, 인생의 낙오자의 가방이 되었지/ ~~ / 세월이 흘러 나는 그 무거운 가방을 가볍게 만들었어/가방은 다시 가벼워지고 어머니의 사랑이 담긴 가방으로 다시 태어났지/~~ /검든, 노랗든 피부색갈이 어떻든 우리 모두는 같은 하느님의 창조물이니까/"(마르셀 피트퀘이(Marcel Petiquay) 2007년)
 

 1952년생인 마르셀은 금년 70세가 된다. 그는 여섯 살인 1958년 원주민기숙학교로 끌려가게 된다. 12년 후인 1970년 집으로 돌아왔을 때 성희롱과 학대의 피해자가 되어 있었다. 18살 때부터 이미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던 그는 1973년 술을 끊기 시작했으며 마약과 알코올에서 벗어나는데 15년이 걸렸다.

 약 15만 명의 어린아이들이 기숙사에 끌려갔다. 그 중 대략 6천 명 내지 3만 명의 어린아이들이 돌아오지 못하였다고 한다. 정확한 숫자는 아직도 미궁에 빠져있다.

 원주민기숙학교(Aboriginal Residential School)는 1880년-1990년대까지 운영되었으며 원주민 자녀가 6세가 되는 해에 강제로 부모의 품에서 떼어내 기숙학교에 보내졌다. 그 목적은 원주민의 정체성을 말살시켜 캐나다 주류문화인 기독교에 동화시키겠다는 의도였다.

 20여 년 전 내가 웰랜드라는 나이아가라 지역에서 커피숍을 하고 있을 때였다. 친하게 지내던 한 백인 손님과 함께 가게 안에 있던 TV로 ‘죤 웨인’ 주연의 ‘수색자’라는 웨스턴 영화를 같이 보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그 영화의 주인공인 죤 웨인으로 대화가 이어져 내가 좋아하는 배우라 하면서 너도 좋아하냐고 물었다. 그런데 그의 대답은 싫어한다 이었다.

 뜻밖이라 조심스럽게 싫어하는 이유를 물었다. 그는 비록 영화라 하더라도 그가 출연한 작품에서 너무 많은 인디언을 죽여서 싫다고 하였다. 그가 백인이었기에 내겐 뜻밖으로 들렸다. 그 후 그가 생긴 것은 영락없는 백인이지만 그의 친어머니가 인디언이라는 것을 알면서 의문은 자연히 풀렸다.

 인디언, 아메리카 대륙이 인도라고 생각한 콜럼버스의 착각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아무도 언제부터 이 지역에 사람이 살고 있었는지 모른다. 적어도 1만 년 전이라고 어림 계산할 뿐이다. 백인들에 의하여 신대륙이라 명명되었지만 이미 수백만 명 이상의 원주민이 거주하고 있던 지역이다.

 당연히 이 지역에 살던 사람들은 그들을 인디언이라 부르는 것을 싫어하며, 캐나다에서도 그들을 토착민(Indigenous) 혹은 퍼스트네이션(First Nation)이라 공식 호칭한다. 메이저리그 야구팀인 ‘클리브랜드’는 인디언이라는 이름 대신 금년부터 ‘클리브랜드 가디언’(Cleveland Guardian)으로 명칭을 바꿔 불리고 있다.

 1492년은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해이다. 그는 스페인으로 돌아와 새로 발견한 땅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지만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의견이 엇갈리게 된다. 그래서 당시 교황이었던 알렉산드로 6세에게 기독교의 전파와 식민지 소유권을 어느 나라가 가져야 되는지 도움을 청하게 된다.

 그때 등장하는 것이 ‘교황 칙서’(Papal Bull)이다. 결론적으로, 이 칙서를 등에 업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새로 발견한 땅들을 차지하고 지배했을 뿐만 아니라, 피비린내 나는 대학살을 자행하게 된다. 그 교황의 칙서는 이후 등장한 유럽 식민제국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소유권을 주장하며 잔혹한 학살행위를 하는 도화선이 됐다.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병약해 보이는 85세의 프란체스코 교황의 캐나다 참회 방문은 지난 24일을 기점으로 오늘 캐나다 북쪽의 이누잇 지역 방문으로 끝났다. 그의 진심어린 사과는 많은 원주민들의 공감을 주었다. 하지만 핍박과 상처를 받은 모든 사람들을 감싸기에는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 해도 교황에게 가시면류관을 씌우기보다는 교황의 진심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종결해야 한다.

 트뤼도 총리는 말했다. ”용서를 청하여 받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다. 첫 번째 단계로 거쳐야 할 과정일 뿐이다"

 그 첫 번째 단계는 프란체스코 교황의 참회 순방에 의하여 시작되었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도 바뀌어야 한다. 500여 년 전, 유럽 이외의 땅의 식민지화를 합법화하기 위하여 작성되었던 교황의 칙서는 공식적으로 폐지돼야 할 단계가 오고 있다. 프란체스코 교황은 그 첫 번째 씨앗을 이 땅에 뿌렸다. (2022년 7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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