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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파와 비둘기파
kwangchul

 

 1945년 8.15해방과 더불어 38도선을 경계로 남에는 미군이 북에는 소련군이 진주하였다. 그들은 일본의 압제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킨 해방군이었다. 당연히 전체국민의 열렬한 환영을 받게 된다.

 그러나 해방의 기쁨도 잠깐, 뚜렷한 정책의 길잡이 없이 한반도는 불투명한 미래의 혼돈에 빠지게 된다. 당시 민중에 회자된 출처 불명의 유언비어가 있었다. "미국을 믿지 말고 소련에 속지 말라, 일본은 반드시 일어난다. 중국을 경계하라"

또한 “미국에게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 오직 국익만이 존재할 뿐이다. (America has no Permanent friends or enemies, only interests)”. 이는 올해 99세가 되는 헨리 키신저의 말이다. 그는 닉슨 대통령 밑에서 국무장관을 지낸 인물로 1970년대 초 미국 외교정책의 핵심자였다.

 그는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 격전 중인 우크라이나가 이번 전쟁 이전에 빼앗겼던 영토마저 회복하겠다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며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도 전쟁을 더 길게 끌고 가기보단 협상해야 한다는 의견을 표명하였다.

빠른 시일 내에 회담을 통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경계선이 개전 전의 상태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현실정치에 중점을 둔 키신저 전 장관의 발언은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을 비롯한 유럽의 지도자들로부터 냉소를 받는다.

 해방 후 대한민국의 군정시대에 국민의 눈에는 국제정치의 냉혹한 현실이 보였나 보다. 국민들 사이에 퍼진 유언비어는 불행하게도 현실화되어 대한만국을 양분해 놓았다.

 미국은 당시에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과소평가하여 한반도를 방위선에서 제외한다는 ‘애치슨라인’을 발표했다. 그 결과 남한 주둔 미군 7만여 명을 철수시키며, 한국군을 탱크 한대 없는 껍데기 군대로 만든다. 북한에 보낸 남침 초대장이기도 했다. 미국을 믿지 말라는 말은 이때 생긴 것이다.

 소련에 속지 말라는 것은 글자 그대로 소련은 북한에 탱크를 포함한 전시물자를 제공하고 침략작전까지 짜주며 북한을 부추겼던 것에 기인한다. 중국 또한 전쟁 발발 4개월 만에 수십만 군대를 보내 남북통일 목전에서 치명적인 방해를 한다.

 태평양 전쟁의 패전국이었던 일본 또한 6.25 특수 덕에 호황을 누리며 한국전쟁은 일본으로 하여금 경제대국이 되는 발판이 된다.

 결국, 동요처럼 퍼진 불길한 유언비어는 국제정세를 꿰뚫어 본 대한민국 국민의 남다른 혜안으로 밖에는 설명할 수 없게 들어맞았다.

 지난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를 침공한 전쟁 초기에는 누구도 이와 같이 장기전이 되리라고 예측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군대는 기대 이상의 선전을 하였고 오히려 세계 최강 중 하나로 평가됐던 러시아군의 전쟁 수행능력이 도마 위에 올랐다. 7월9일 현재로 135일이 경과됐다.

 캐나다와 미국, 유럽 국가들은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 조치를 포함한 전쟁물자와 최첨단 무기를 공급하며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있지만 상대는 러시아다. 러시아에는 전쟁광 푸틴이 있다. 그는 나토를 앞세운 유럽 연방이 그들 국가의 이익을 위해 우크라이나의 러시아에 대한 적개심을 부추기어 대리전쟁으로 내몰아 결국은 우크라이나를 멸망하게 한다고 경고했다.

 또한 러시아는 아직 전면전에 돌입하지 않고 있으며, 결코 이 전쟁에서 우크라이나의 군대는 러시아를 이길 수 없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독일 유대인이었던 키신저의 가족은 1938년 나치 정권을 피해 미국으로 이주하게 된다. 키신저는 1943년 초 미군에 입대하여 훈련을 받으며 미국 시민권자가 되고 참전 후 하버드대학에 입학한다.

 1954년 같은 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1969년 리처드 닉슨이 대통령이 되자 국가 안보 보좌관에 발탁되어 정치권에 들어간다. 철저한 그의 정치 현실주의는 어떠한 이념에 얽매이지 않는 성향으로 인해 보수, 진보 양 진영으로부터 공격받기도 했다.

 현재 100세를 눈앞에 두고 있는 키신저는 말한다. 푸틴을 곤경에 빠뜨려 그를 난처하게 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푸틴으로 하여금 마지막 카드인 핵무기를 사용하게 한다. 어떻게든 협상테이블에 끌어들여 전쟁을 종식시키라고 충고한다. 전쟁에 강경한 매파가 있다면 평화를 협상 테이블로 올리라는 비둘기파가 있다.

 이 전쟁의 국면은 6.25전쟁과 다름없이 어느 쪽도 양보할 수 없는 극한상황에 도달해 간다. 한국전 당시 대한민국 국민은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권리가 없었다. 작전권은 미군의 지휘를 받는 유엔군의 몫이었다.

 우크라이나의 운명도 당시의 대한민국과 마찬가지로 미국을 선두로 한 세력의 의지에 달려있다. 끝이 안 보이는 전쟁이 되었다. 협상을 통해 더 이상의 무고한 인명피해를 막고, 조속히 전쟁을 끝내야 한다. 비둘기파가 개입해야 할 시점이다. (2022년 7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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