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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의 코로나 바이러스 일기
kwangchul

 

 4월 27일 아침, 지난밤 밤새 기침을 하며 잠을 설쳐 덩달아 처도 잠을 못 자게 하였다. 혹시, 코로나 바이러스가 아닐까 걱정이 되어 Rapid Test를 하였는데 다행히 음성으로 나와 한시름 놓았다.

 이곳 한국에서 만나기로 한 분에게 전화하여 아무래도 만나기가 힘들다고 전달하였다. 오후 3시쯤 전혀 차도가 없어 근처에 있는 이비인후과에 갔다. 젊은 의사였는데 아주 친절하게 진료를 해주면서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 한다. 이곳에 온지 5일 만이다. 청천벽력이다.

 4월 27일 오늘부터 5월 4일까지 정부 지침에 따라 자가격리에 들어가게 되었다.

 4월 28일 2번째 날. 진료비 3만3580원, 조제약값 3만8400원, 한국의 우수한 방역 체계를 느끼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우선 의사의 신속한 정부에의 보고, 그에 따른 정부의 유효한 절차. 우선은 환자의 상태에 따라 구분하여 처리한다.

 Covid-19 확진 후 이틀째. 보건소에서 연락이 와 일반관리군으로 나를 분류하여 주었다. 집중관리군보다는 나은 결과라 해도 외출금지는 마찬가지다. 신속하게 대응하는 보건소 직원들이 믿음직스럽다.

 고국에 가면 무엇을 하며 지내야 좋은 추억거리가 될 수 있을까? 전염성이 창궐하고 있는 대도시에 여행을 와 확진자가 되는 것만큼 더한 추억거리가 있을까.

 내가 묵고 있는 호텔의 11층 창문을 내다보면 남산이 보인다. 하지만 나는 그곳에 갈 수 없다. 적어도 7일 이상은 격리되어야 하고 그때까지 회복이 안돼 PCR Test가 양성이면 음성이 나올 때까지 더 기다려야 한다.

 워낙 큰 빌딩들이 둘러싸여 있는 남산은 작게만 보인다. 그 남산도 내가 갈 수 없는 그림의 떡이 되었다. 코로나 바이러스 귀신아 내 몸에서 훌쩍 나가라.

 Covid-19 격리 3일째. 좀 차도가 있는 것 같이 여겨져 Rapid Test를 해보았다. 예상했던대로 양성이다. 많이 회복된 것 같은데 아직은 전염병이 내 몸에서 나와 함께 거주하고 있다. 흡사 기생충처럼, 코로나여 나 너 싫어한다. 내 몸에서 나가주렴.

 6일째, 내일이면 해방이다. 자신만만하게 Rapid Test를 했다. 아뿔싸, 아직도

양성이다. 오! 하느님. 우스갯소리이지만 재미있는 이야기라 여기 써본다. 어떤 모임에서 바자회를 하게 되어 집에 필요없는 물건을 가져오라 하니까 모두들 남편을 데려왔다 한다. 남편들이여, 바자회에 실려가 팔리기 싫으면 Covid-19에 걸려라. 그 길만이 살아남는 길이다.

 Covid-19 확진 후 10일째. 몸에 아무런 코로나 바이러스 증세가 없다. 그래도 Rapid Test 하여 보면 매번 그 결과가 양성으로 나온다. 이제는 자가 검사를 하면 매번 양성이 나올 것 같아 테스트하기가 두렵다.

 보건소에서도 매일같이 할 필요는 없고 며칠 후에는 음성으로 나올 것이라는 충고가 있었다. 기다리는 거다. 한국에 오기 위해 2년 반을 기다렸는데 그까짓 며칠이야. 헌데 아까운 시간이 간다. 이러다 그냥 캐나다로 돌아갈 것 같아 약간은 불안하다.

 11층 호텔 창문을 열어본다. 남산은 거기 그대로 서서 나를 부른다. 어서 음성 되어 나를 안아달라고. 청계천을 걷다! 아직은 Covid-19 양성이라 마스크를 하고 토론토 랩터스 모자를 쓰고 선글라스를 쓰니 완전히 스타워즈 차림이다. 내가 있는 곳 동묘 근처에서 수표교까지 갔다 오면 약 만보가 된다.

 맑은 개천의 뜻인 청계천에는 고기들이 뛰어 논다. 낚시 금지구역이다. 팔뚝만한 잉어가 헤엄치고 있다. 옛날 중학교 때의 청계천이 생각난다. 중학교 때 다니던 학교가 동대문에 있어 매일같이 걸어 지나간 곳이었다. 그 때도 청계천은 살아서 숨을 쉬고 있었고 많은 서울시민의 생활 터전이었다. 비록 하꼬방 지역이라 해도 그 지역엔 모든게 있었다. 물론 헌 책방도 있었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오늘은 5월 5일 어린이날이다. 그때의 어린이들과 지금의 어린이들 중 누가 더 행복하게 자라고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물론, 물질적으로는 현대의 아이들이겠지만, 묻는 것 자체가 바보스럽지만 정말 그럴까! 왜, 그런데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우리는 어린이 날이 그 어떤 세대보다도 필요한 시대에 살았다. 하지만 시대의 요청대로 버려진 세대였다. 그러나 바쁜 어른들의 생존의 투쟁 틈에서도 그 틈을 비집고 나오는 새싹처럼 끈질긴 여유가 있었다. 우리는 승리자였다. 아스팔트가 귀한 황톳길에서 먼지 속에 피어난 민들레였지만 우리는 분명 생존자였다.

 ‘아빠, 엄마의 찬스’를 적게 받은 승리자였다. 5천 년의 황톳길의 비밀, 우리는 한정판 그렇게 살아온 마지막 세대다. 이제 마무리 단계다. 한정판답게 고고하게 얼굴을 들고 마지막 길까지 우리의 길을 걷자.

 (여행 중 일기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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