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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
kwangchul

 

“여기는 태고의 수풀~~이 고장 사람들은 어디로 가버렸단 말이냐? 소망과 끈질긴 인내로 거룩한 사랑을 믿고 사는 이들아! 여인의 정결의 미와 힘을 믿고 사는 이들아! 들어보라, 아직도 이 수풀의 소나무들이 노래해주는 슬픈 전설을, 들어보라 행복의 고향 땅, 아카디아의 사랑의 말씀을!” -롱펠로(H.W. Longfellow)의 에반젤린 서문에서-

미국은 미국 속에 이질적인 문화가 들어오면 용광로와 같이 한덩어리로 용해시켜 영어권 문화로 만드는 용광로 사회라 할 수 있다면, 캐나다는 모자이크 사회인 복합문화주의의 국가라 할 수 있다.

물론 개척 초기부터 모자이크 사회적인 구성 조직을 보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철저한 프랑스계와 영국계통의 영어권 사이의 식민지 쟁탈 격전지였다. 복합문화주의 사회인 모자이크 시대는 2차 대전 이후 시작된 세계대전의 난민을 받아들이면서 시작되었다고 보면 된다.

 에반젤린의 배경 무대는 영국 세력의 영어권과 프랑스 개척민 사이의 분쟁이 한창이던 18세기 초의 대서양연안의 현 노바스코샤 지역인 아카디아로 불려지던 곳이었다. 미국이 아직 독립을 선포하기 전인 1755년-1757년경 북아메리카는 퀘벡의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영국의 영향 아래 있던 시기였다.

1604년 프랑스 탐험가 샴플레인(Samuel De Champlain)이 이끄는 120명의 프랑스인들은 퀘벡주에서 동쪽으로 향해 대서양연안 현 노바스코샤 지역에 정착하게 된다. 샴플레인은 이곳을 포트 로얄(Port Royal)이라 명명하며 유럽과의 무역 거점으로 삼았다.

 150여년 후 아카디아의 프랑스계 개척자들은 1만5천명 가량으로 불어났으며 자연히 이들은 영국계 정착인들의 눈엣가시가 된다. 선두주자였으나 식민지 패권전쟁에서 밀린 프랑스계 주민들은 자신들이 개척한 땅에서 추방되어 방랑자 신세가 된다.

에반젤린과 가브리엘이 있었다. 축복받아야 할 결혼식 날 그들은 영국군의 총칼아래 무참하게도 서로 헤어지게 되며, 그 후 40여년 동안 서로를 찾으며 미주 전역을 방랑하게 된다.

1793년 전염병이 휩쓸던 필라델피아의 요양소에서 수녀 에반젤린은 늙고 병들어 죽어가는 연인 가브리엘을 만나게 된다.

나는 1974년 3월 토론토에 도착하여 작은 이태리라 불려지던 지역을 방문하였던 적이 있었다. 외국땅에 정착하여 자신들의 정체성을 간직한 채 활발히 캐나다에 뿌리를 내리는 이탈리아인들을 부럽게 바라보았던 경험이 있었다.

3년 후 몬트리올에서 거주하며 Fruit Bowl이라는 그리스 계통의 주인이 경영하던 Fruit Market을 친형님과 함께 인수하여 운영했던 적이 있다. 그때 이미 몬트리올에는 Greek Town이 형성되고 있었다.

비록 퀴벡주가 레인 레벡(Rene Le Begue)이 이끄는 캐나다와 분리하여 독립하려는 분리주의의 운동이 한창이었지만 그래도 그곳 몬트리올의 그리스타운에서 모자이크라 불려질 수 있는 복합문화주의의 불씨를 볼 수 있었다.

4년 전 Stan Cho라는 이민 2세 청년이 온주의원(MPP)으로 출마한다고 하였다. 그것도 당시 집권당이었던 자유당의 텃밭인 윌로우데일서 출마를 결정하였다 하는데 승산이 힘든 싸움으로 보였다.

 개인적으로는 자유당을 지지하는 나였지만 한인들에게 불모지라 할 수 있는 정치계에 우리 아들들과 비슷한 연배의 한국계 청년이 출마한다 하여 모임에 관심을 가지고 참석한 적이 있었다.

당시는 PC(보수당)의 당수가 현 브램턴시장인 패트릭 브라운이었는데, 선거공약이 정통 보수당 정책과는 판이한 진보적 성향을 보이고 있어 진보적 경향성의 나에게 호감을 주었던 때이기도 하였다.

 한국선거, 고향이 한국사람인 한국사람으로서 당연히 관심가질 수 있다. 아니, 가져야만 한다. 방탄소년단, 너무 자랑스럽다. 하지만 잊지 마라! 여러분들의 생활의 근원이며 후손들의 재롱을 보며 죽어 묻힐 장소는 이곳 캐나다라는 것을! 출발점은 한국이었지만 종착역은 캐나다다.

 캐나다 이민의 한인 역사가 해를 거듭하면서 많은 교민 2세들이 활발히 캐나다 사회에 종사하고 있다. 하지만 미래를 위해 가장 관심을 가져야 할 정치권은 아직은 불모지이다. 다행히 여기 Stan Cho 조성훈이 있다.

 스스로 발벗고 나선 개척정신이 고맙다. 제2, 제3의 Stan을 욕심내어 본다. Stan의 분투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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