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 오늘 방문자 수: 60 전체: 7,208 )
일레븐스 아워즈(Eleventh Hours)
kwangchul

 

개띠 삼식이가 신문에서 운수판을 보니 오늘 개띠 운수대통, 재물운이 있단다. 마침 저녁에 고교 동창 부친상에 조문을 가야 하는 그는 “아싸, 오늘은 내가 타자다. 이 노므 짜슥들, 어디 한번 맛 좀 봐라!”

옆에서 그 말을 듣던 마누라가 한마디 던졌다. “이 화상아 니만 개띠고 니 동창들은 다 소띠냐?”

나는 음력으로 1945년 12월 29일 그믐날 태어났다. 양력으로 그 다음 해인 1946년 1월 30일이다. 무슨 띠냐고 물어오면 백발백중 닭띠라고 대답한다. 내 처가 그 말을 듣게 되면 고맙게도 어김없이 개띠라고 정정해준다.

보통은 음력이 이삼 주 늦게 오지만 금년은 하루 상간이다. 생일은 물론 양력으로만 센다. 어김없이 설날은 내 그믐 생일 다음날 온다. 아슬아슬한 시간차 공격으로 와이프는 인정하지 않지만 닭띠의 막차를 탈수 있었다.

"막차를 탄다" 말 그대로 끝나갈 무렵에 뒤늦게 뛰어든다는 관용구이다. 긍정적 이라기보다는 부정적으로 자주 쓰여지는 어귀이다. 예를 들면 잘 되어가던 비즈니스를 막차를 타는 바람에 돈을 다 날려버리게 했다든지, 아니면 늘 한박자 꿈들이게 살다 보니 막장 인생에서 기다려도 기다려도 오지 않는 막차를 기다린다든지 퇴폐적인 반갑지 않은 시추에이션에 쓰일 적이 많은 표현이다.

개띠가 닭띠와 막차를 타 어울리게 되면 당연히 홈 그라운드 이점이 없는 열세 속에 처하게 된다. 그래서 그런지 막차는 절박함이나 간절함을 품은 채 달려와 슬픔을 던져주는 것 같다.

가능한 마지막 시간 혹은 마지막 주어진 기회를 영어로 표현하는 중에 "Eleventh Hour”라는 것이 있다. 당연히 11시를 표현하는 “11 o'clock"과는 구별해 사용해야 한다. "막차를 탄다”와 비슷한 의미이지만 사뭇 긍정적이다.

원래는 성경의 마태복음(20장:1-26) 포도원 품꾼에서 유래한 어귀이다. 한 일꾼이 해질 무렵에야 포도원에 도착하는데 그때가 바로 유대인의 노동시간 기준으로 11th hour였다. 이는 오늘날 기준으로 대략 오후 5시쯤 해당된다.

그는 그때부터 6시까지 한 시간만 일하고도 하루 종일 고생한 다른 일꾼들과 같은 품삯을 받게 된다. 여기서 바로 일레븐스 아워(Eleventh Hour)의 오늘날 의미가 생겨났다 한다. 꼴찌가 첫째가 되는, 겉으로는 너무 늦은 것 같지만 결코 늦지 않은 최후의 가능성이 있는 시간, 첫째가 꼴찌가 되는 시간이다.

1945년, 버려진 땅이었던 아우슈비츠 집단수용소에도 봄은 오고 있었다. 이미 기울어지기 시작한 패전의 기미는 나치의 마지막 발악으로의 포악성을 여실히 드러내 수 많은 유대인들은 집단학살을 당하고 있었다.

살아남기 위해 타투이스트(TATTOOIST)로 부역하며 3년이란 세월 동안 근근이 목숨을 부지해온 수인번호 #32407, 슬로바키아 유대인 라리 소코로보와 그의 애인 타트 넘버 #34902, 지타 풀맨은 헤어져 죽음의 행진을 하게 된다.

후송 도중 제각기 죄수의 신분에서 도망쳐 나온 그들은 우여곡절 끝에 적십자의

도움으로 눈물의 상봉을 하게 된다. 안녕! 문신번호로 불려지던 그녀가 인간으로 되돌아온 "라리“에게 다가간다.

천천히 지타 앞에 무릎을 꿇은 라리는 지타에게 말한다. “공주님! 저와 결혼해 주시겠어요? “네, 왕자님!”

일사후퇴 후 우리가족은 거제도로 피난을 가게 된다. 그곳 장승포애서 닭띠들과 어울려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그 후 그 유명한 서울 가는 십이열차를 타고 그의 가족은 서울로 돌아오게 된다.

전쟁이 끝난 후 피난살이를 했던 생활을 마치고 고향 가는 귀향기차에 12숫자를

붙였다 해서 부친 이름이 십이열차다. 꼭 밤에 떠나 그 다음날 서울에 도착한다는, 남인수가 불러 유명해진 ‘이별의 부산 정거장’에 등장하는 기차이다.

절박함이 듬뿍 담겨있는 막차의 쓰라림이 스며있는 십이열차는 그래서 슬프다.

이제 막차의 개념은 늦은 것 같지만 결코 늦지 않은 일레븐스 아워로

바뀌어야 한다. 꼴찌가 첫째로 바뀌는 신화, 그것을 조국 대한민국은 해냈다.

오천 년의 비바람 속에서도 아니 어떤 가혹한 태풍 속에서도 꿋꿋이 버텨온 백의민족의 저력을 우리 이민세대는 이곳 캐나다에 뿌리 깊게 심어야 한다.

막차는 늦은 것 같지만 결코 늦지 않는 희망의 시간으로!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