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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 라이브즈(Nine Lives)
kwangchul

 

세계를 흔들었다 놓았던 드라마가 있었다. 456억원의 상금을 차지하기 위한 참가자들의 목숨을 건 서바이벌 게임을 다룬 ‘오징어게임’이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의 술래잡기 게임이 시작되었을 때만 해도 참가자도 시청자도 그 게임이 목숨을 담보로 하는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투쟁이라는 것을 예상치 못하였을 것이다.

 80여 년 전 폴란드의 아우슈비츠(AUSCHWITZ)에선 저주의 서바이벌 게임이 비밀리에 진행되고 있었다. 단지 유태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유럽 곳곳에서 붙잡혀 이곳에 집단 수용된 이들은 형용할 수 없는 악조건 하에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가진 고난을 겪게 된다.

AD 70년 경 로마인들의 의해 치러진 유대인들에 대한 예루살렘의 대학살 이후 그들은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살게 된다. 2천년 이후 이번엔 유태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히틀러의 나치에 의해 유럽 거의 전 지역에 걸쳐 연행되어 집단 수용된다.

1942년 4월 슬로바키아의 유대인인 20대의 한 청년이 강제 수용된다. 여러 나라의 말을 구사할 수 있었던 덕택으로 이 청년은 나치 친위대 SS(Schutzstaffel)에 의해 문신을 새기는 타투이스트(tattooist)가 되어 동료 유태인들에게 굴욕적인 숫자 문신을 하게 된다.

입소되던 날 죄수번호 32407를 팔뚝에 새겨졌던 그는 그 후 수없이 많은 타투를 동료 유대인들에게 새기며 인간 이하의 학대를 받으며 죽어가는 수용소의 참상을 목격하게 된다. 비록 원하지 않는 부역이었지만 다른 동료 죄수들에 비해 운신의 자유가 있었던 수인번호 32407는 음식을 몰래 들여와 굶주림으로 죽어가던 유대인들의 목숨을 부지하게 한다.

강제 입소되던 당시 몰수되었던 귀중품들을 다시 훔쳐 외부 세계에서 소시지나 빵 등을 몰래 들여오는 목숨을 건 행위에서 발각되어도 살아나온 그를 본 한 SS대원은 이렇게 묻는다. “너는 인간이 아니라 고양이 임에 틀림없어. 너는 나인 라이브즈를 가진 유일한 사람이야”. 그러니까 그 고문과 악독한 처벌에서 살아 나올 수 있었지!”

 시지프스의 신화를 연상케 하는 아니 오징어게임을 연상하면 더 쉬울 것이다. 일과가 시작되면 죄수들은 한 줄로 한편에 선다. 그들에겐 바위 같은 굴릴 수 있는 무거운 물체가 주어진다. 출발신호가 울리면 다른 편으로 이동한다. 그곳에 도착하면 다시 그 바위를 원 방향으로 돌려와야 한다. 물론 늦게 온 죄수는 오징어 게임처럼 즉결 처분된다.

넘버 32407는 고향인 슬로바키아에서 살던 당시 자신을 유태인이라 여기기보다는 학교 또는 직장에서의 동료들과 같이 슬로바키아인으로 여겼었다. 당연히 주위의 친구들처럼 정부를 지지하며 비록 친 나치정부이지만 정부가 나치의 마수의 손길에서 보호하여 줄 것이라 믿었다.

집단수용소에 감금되면서도 국민(nationality)이 아닌 인종(race)으로 사람이 구분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강한 국가가 약한 국가를 위협하며 침략을 한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더라도 어떻게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한 특종 인종을(유태인 혹은 집시) 강제로 구금시킬 수 있단 말인가?

1974년 이민 온 이래 20년이 지난 1994년 엄청난 향수병을 겪은 적이 있었다. 긴 세월을, 인생의 황금시기인 30대와 40대를 보낸 이곳이 갑작스럽게 생소하게 느껴지며 서울 내가 살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20년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웃사이더라 여겨지는 이방인일 수밖에 없었던 괴리감, 서양사람들의 생활방식에 동화될 수 없었던 나를 바로 그때 다른 내가 나를 향해 충고를 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광철아! 20년 전 가냘픈 가방을 끌고 떠나왔던 김포공항은 더 이상 너의 이민가방을 받아줄 수 없단다. 그 김포공항은 오직 여행가방만 받아 줄 수 있단다. Nine lives란 영어 관용어를 들어본 적이 있니? 생명력이 질기고 강할 때 사용되는 표현인데 아마도 고양이가 어느 높이에서 떨어지든 땅에 두발로 착지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불려진 것 같다. 광철아! 정착하는 장소가 어디든 바로 그곳이 너의 운명의 정착지란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오하라에겐 타라가 있었다. 너에겐 캐나다가 타라이다. 아우슈비츠의 수용소에서 있던 유태인들은 그들의 거소 중 하나를CANADA라 거명하여 불렀다 한다. 엄청난 생존게임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그들에겐 캐나다와 같은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이 있어야 하였다.

 다행히 이곳 캐나다는 여러 인종이 모자이크처럼 엉켜있는 다문화 국가이다. 이민 1세가 할 일은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은 바로 우리가 있는 이곳 캐나다 라는 메시지를 후손들에게 남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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