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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의 여자 ‘제인 에어’(Barefoot Jane in Ayre)(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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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 이어)


불쌍한 여자, 위험에 빠진 여자. 이 여인이 바로 제인 에어다!


그녀는 횡설수설 되는대로 말을 쏟아 냈다.


“아저씨이, 이 동네는 말이에요. 웃기는 동네에요. 나 웃겨서. 계급이 있어요. 한국 사람들 사이에도 대장이 있고 부하가 있어요. 주인아저씨가 퇴역한 장군이래요. 군에 있을 때 사령관이래나 대령이었대나, 뭐 그래요. 그래서 모두 주인아저씨한테 꼼짝 못해요. 웃기지요?”


침대에 앉히자마자 옆으로 픽 쓰러졌다. 흐드러진 가슴골이 슬쩍 보이고 하얀 맨발까지 그대로 내놓은 종아리와 검은 쫄바지 위로 허벅지에서 엉덩이로 이어지는 곡선이 그대로 드러났다. 트럭 안에 낯선 여자와 함께 있는 이 순간이 어처구니없고 난처한 상황이면서도 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내 침대 안에 쓰러진 제인 에어를 보며 만 가지 생각이 상상되었다.


매사추세츠 주의 군부대 옆 조그만 마을에 한국식품과 다방이 있을 만큼 한국 사람이 많이 살고 있고, 그 동네 커피숍에서 일을 하고 있는 여자가 구해 달라고 도움을 요청했다. 대체 제인 에어는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었던 걸까?


외삼촌이라는 주인아저씨, 대령 출신이라고 했는데, 정말로 여권을 뺏고 일을 시켰을까? 진짜 폭력을 휘두르는 폭력배란 말인가? 정말 일만 시켰을까? 다른 일은 없었을까? 제인 에어가 아직 말을 하지 않았으니 모르는 일이다.


이른 새벽, 아침이 밝아오기 전에 트럭을 출발하였다. 누군가 그녀를 쫒아올 것 같은 불안함이 나를 서두르게 하였다. 제인 에어는 침대에서 꼼짝하지 않은 채 일어나지 않았다. 동네사람 모두 그녀를 감시하고 있다고 했고 잡히면 죽도록 맞는다는 말에 계속 주변을 돌아보고 혹시라도 따라오는 차량이 있는지 눈여겨보았지만 다행스럽게 미행하는 차도 없고 아무런 이상한 징후는 보이지 않았다.


두 시간 가량 매사추셋트 주의 턴파이크를 달려 블랜드포드 서비스 플라자에 도착했다. 달리는 트럭 안에서 잠을 자는 것이 어려울 것 같지만 실제로는 아주 편한 꿀잠을 잔다. 묘하게 흔들림이 주는 안정감이 있다. 


해는 이미 중천에 올라 뜨겁게 내리쬐고 있었다. 트럭이 정차하자 뒤에 침대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제인 에어가 일어났나보다. 일부러 돌아보지도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 할 말도 찾지 못했다.


“아저씨, 지금 어디에요?” 머리를 매만지며 그녀가 물었다. 


“블랜드포드 휴게소인데, 이제 안심해도 좋을 것 같아요.” 


그녀가 고개를 내밀어 힐끔 밖을 쳐다보았다.


 “세수도 하고 아침도 먹고 가야지요.”


 “여기서 세수해요?”


 “네 휴게소 화장실에서 다 합니다. 세수하고 이 닦고 볼일도 보고…….”


 그녀는 별로 놀라는 표정도 없었다. 눈동자가 퀭하고 눈두덩이 부었고 얼굴은 푸석거림이 역력했다. 그저 숙취 때문에 머리가 아픈 표정이었다. 맥도날드에서 아침을 사먹을 생각 이었지만 라면을 끓이기로 생각을 바꾸었다.


내가 신는 슬리퍼를 꺼내 주고 우리는 나란히 휴게실 화장실로 향했다.


먼저 트럭으로 돌아온 나는 전기밥솥에 물을 올렸다. 평소에는 밥솥에 라면을 끓이지 않는다. 설거지가 아주 귀찮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웨이브 오븐에 물을 끓이지만 좀 더 진한 국물 맛을 내기 위해서는 전기밥솥이 더 좋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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