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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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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자연의 모자이크를 따라서-성모기념성전의 백합과 종려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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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의 구세주로 오실 예수를 알려주고 그것을 받아들인 예수님 어머니의 고향 나자렛은 예루살렘 북쪽 언덕에 있다. 누가복음서에는 천사 가브리엘이 하느님께로부터 갈릴리 지방의 나자렛 동네로 보내심을 받아 다윗 가문에 속한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에게로 가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 

천사가 안으로 들어가 마리아에게 말한다. "은총을 가득히 받은 이여, 기뻐하여라.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이제 아기를 가져 아들을 낳을 터이니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이 말을 들은 마리아는 놀라고 주저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누가복음1:28) 

이렇게 천사의 통보를 받아들이는 '마리아의 신비'와,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며 메시아이심을 첫번으로 알리는 '예수의 신비'가 깃든 자리에 어찌 기념성전이 없겠는가? 그 성모영보기념성전은 5세기 초에 지었으나 페르시아의 침략과 십자군 시대를 거치는 동안 여러 번 파괴되었다가, 1960~1969년 사이에 마리아의 집터에 현대적인 성전건물을 짓게 된 것이다.

 성모 마리아를 상징하는 꽃이나 식물은 많다. 마리아를 모신 제단이나 마리아를 그린 보티첼리나 티티안의 성화에는 틀림없이 백합꽃이 놓여있는 것을 보면, 이 꽃은 과연 ‘성모 마리아의 백합’이라고 할만하다. 이 꽃은 또한 예수시대부터 정신적인 순결과 신성과 부활의 상징이 되었다. 17세기에는 ‘흰 백합화가 종교적으로 정신적 순결의 상징’임을 교황령으로 공식 발표했다.

 마리아를 상징하는 꽃이 장미라는 말도 있다. 다섯 개의 꽃잎과 그릇 모양을 한 장미는 모태의 상징이며 모성애의 꽃이기도 하다. 장밋빛 피는 구세주의 보혈과 구속 사업 내지 치유의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성모영보기념성전이 멀리 보이기 시작하자 어디선가 백합화 향기가 날아오는 듯 마음이 감미로워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하늘을 향해 피어나는 듯한 백합꽃 봉우리 모양의 성전지붕 양식 때문이리라. 성전 정문 앞에는 여리고에서나 봄직한 십여 미터가 넘는 종려나무가 피곤한 나그네를 환영하며 시원하게 서있었고, 기념성전 안쪽으로 키는 작지만 처음 보는 열매가 탐스럽게 매달린 종려나무가 힘차게 서있었다. 

이 종려나무들과 백합꽃은 너무나 아름답고 정겹고 변함없는 우정을 지닌 부부 같이 보였다. 그래선지 종려나무가 마리아의 상징이라기보다는 시편에 있는 대로, 의인의 상징 즉 마리아의 남편 요셉 같아 보였다.

 

 

좀 어두운 느낌이 드는 기념성전 안에 들어서자 자연히 밝아지는 허공을 올려다보고 다시 한 번 놀랐다. 밖에서는 꽃봉우리가 피어나는 듯이 보이던 성전 지붕이 안에서는 백합꽃을 엎어놓은 듯이 보였기 때문이다. 영원한 통합을 의미하는 둥근 만달라가 천장 꼭대기에 영원을 그리는 하늘이 보이게 만들었고, 그 저변 둘레로 12사도의 모습이 스테인드 글라스에 새겨져 있었다. 

성모 마리아의 조각상이 서있는 제단과 그 둘레엔 온통 백합꽃이 만발한 '축복받은 동산'이었다. 이스라엘을 여행하는 동안 구경도 못하던 흰 백합꽃이 이곳에 모두 모인 듯, 그 향기에 취해 자리를 뜨고 싶지 않았다.

 "모든 일을 깊이 마음속에 잘 새겨 오래 간직하려는"(눅2:19) 모습으로 백합꽃 향기 속에 서있는 마리아의 모습은 내가 마음에 그리며 찾던 성모님의 모습이었다. 두 손을 모으고 생각에 잠긴 창백한 얼굴에서 장차 아들 예수에게 찾아 올 고통과 죽음과 부활을 예감하며 받아들이는 듯한 빠스카의 신비, 부활의 신비마저 느끼게 했다. 그것은 성모로서의 영적인 모습만이 아닌 인간적인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감당할 수 없이 큰 뜻을 가진 아들을 낳은 어머니의 기쁨과, 주께서 나를 통해 훌륭한 아들을 맡기셨다는 사명감으로 내 자녀를 키우며 사역에 참여할 수 있다면 우리가 이 지상의 어머니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자랑스런 일이 될 것이다. 우리의 자녀들을 위한 신앙생활과 바른 교육을 통해 이 땅 위에 하느님의 나라를 이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모 마리아에 대해 가톨릭교회는 지나치게 미화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물론 한국 천주교회의 주보가 성모 마리아임을 알지만, 여러 곳에 나타나는 마리아의 발현과 이적은 좀 더 고증이 필요한 것 같다.

 그렇다고 개신교 기독교회가 성모님에 대해 냉담할 필요는 없다. 16세기부터 루터를 비롯해 칼빈, 쯔빙글리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동정 잉태와 영적 모성을 가르치며 설교해왔다. 그것이 점점 퇴색하여 이제는 성모 마리아에 대한 이야기는 막달라 마리아의 설화만큼도 설교로 들어볼 수 없다. 세상에서 가장 존경과 사랑을 받아야 할 우리 모두의 어머니인 성모님을 묵상하는 영성을 다시 찾아야 하리라 생각한다. 

2천년 전에 성모이셨던 마리아는 지금도 영원히 거룩하고 사랑받으며 본받을 우리 어머니의 원형임을 새삼 깨닫게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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