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yoon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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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자연의 모자이크를 따라서-스톤헨지의 하짓날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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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배우 로렌스 올리비에가 나오는 셰익스피어의 비극영화 ‘리어왕’을 DVD로 보았다. 영화는 인간의 어리석음과 연민과 공포의 절정을 보여준다. 영국의 리어왕은 고너릴, 리건, 코딜리아라는 아름다운 세 딸 가운데 유난히 막내딸 코딜리아를 사랑했다. 

 

 

어느 날 리어왕은 자신이 너무 늙어 딸들에게 국토를 나눠주기로 결심하고 세 딸들을 불러 누가 가장 아버지를 사랑하는가 묻는다. 사랑과 효성이 지극한 딸에게 가장 큰 몫을 주겠다고 말한다. 큰딸과 둘째딸이 마음에도 없는 거짓 사랑을 늘어놓자, 코딜리아는 화면 속에서 관중을 향해 독백한다. “나는 뭐라고 말해야 하나? 그저 잠자코 효성과 사랑을 다해야지.”

 코딜리아가 아버지의 질문에, “저는 아무 할 말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하자 가장 사랑했던 딸에 대한 기대가 무너진 리어왕은 심사가 뒤틀렸다. 저주를 퍼부으며 코딜리아를 내쫓아 버린다. 비극의 시작이었다. 

왕은 거짓 고백한 두 딸들에게 배신당하고, 왕권마저 빼앗긴다. 곁에는 바보 광대와 변장하고 왕을 따르는 신하 켄트, 눈이 먼 옛 신하 글로스터와 그의 아들 에드가만 남는다. 오밤중에 두 딸네 집에서 쫓겨나 히스 언덕 위로 쏟아지는 폭풍우 속에 갈 곳 없어 헤매는 리어왕과 바보광대가 대사를 주고받는다.

 바보: 달팽이가 왜 제 집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

 리어: 그건 왜지?

 바보: 제 머리를 감추려고 그러는 거야. 딸들에게 집을 내주고 나서는 제 뿔을 감출 껍데기가 없으면 되나. 일곱 개 별은 왜 일곱 개 이상 없느냐 하는 건 재미있는 이유지.

 리어: 그건 여덟 개가 아니니까 그렇지.

 바보: 당신은 훌륭한 광대바보가 될 수 있겠다. 아저씨 당신이 내 광대바보라면 때려주겠다.

 리어: 그건 또 왜?

 바보: 똑똑해지기 전에 늙어버렸으니까.

 리어: 오! 자비하신 하느님, 날 미치게 마소서, 미치게 마소서, 미치고 싶지는 않아. 자! 가자.

 

 

이 대화를 보면서 나는 울었다 웃었다 했다. 비극 속의 희극 장면들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리어왕은 자신의 어리석은 판단으로 내쫓았던 막내딸을 다시 만나 용서를 빈다. 

한편 리어왕 복귀를 위해 싸운 코딜리아와 사위인 프랑스왕의 군대가 영국에 패하고 또 다른 음모로 코딜리아는 목숨을 잃고 만다. 이제 그의 분신과 같은 한 가닥 희망도 사라지자 막내딸의 주검을 안고 울부짖던 리어왕은 더 견디지 못하고 삶을 마감한다. 왕국은, 모함으로 쫓겨나 리어왕과 함께 방랑하던 에드가의 것이 된다.

 로렌스 올리비에가 리어왕으로 위세 좋게 등장해서 땅을 분배하는 이 연극의 첫 장면과 사랑하던 딸 코딜리아의 주검 위에 리어왕의 몸도 차가운 돌 제단위에 겹쳐지는 마지막 장면은 실제로 영국 남부의 스톤헨지에서 벌어진다. 

 스톤헨지 안의 궁전은 환한 달밤인데도 음산한 안개에 싸인다. 태양신을 숭배했던 리어왕은 기다리던 태양을 못 본 채 궁전 뜰 한가운데 있는 돌 제단 위에 쓰러진다.

 

 

해마다 하지와 동짓날엔 이곳에 떠오르는 태양을 맞으려고 인파가 몰린다. 두 줄로 빙 둘러 서있는 천년만년 된 고인돌, 스톤헨지는 신비스럽다. 돌의 배치와 그 원을 둘러싼 구덩이들은 태양과 달의 경로를 축소해 놓았다는 것이다.

 스톤헨지의 입구는 하지에 태양이 뜨는 바로 그 지점에 있는 것으로 보아 천문학적 관측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아더왕 시대의 신하이며 현자였던 멀린이 아일랜드에서 바다를 건너 마법으로 옮겨온 것인가? 아니면 땅에 착륙한 비행접시인가? 온갖 추측이 난무했지만 이제 그 구조와 역사의 베일이 차츰 벗겨져 가고 있다.

 오래 묵은 궁금증을 풀기 위해 우리 부부가 지난해에 스코틀랜드 여행을 마치고 영국의 스톤헨지에 간 날이 바로 하지(6월22일)축제 날이었다. 

 그런데 난관이 있었다. 스톤헨지 2km 앞부터 차가 들어가지 못한다는 점. 하는 수 없이 스톤헨지 가까운 아베스버리 호텔에서 묵고 다음날 새벽 5시에 떠나 도보로 접근할 수밖에 없었다. 5리가 넘는 언덕길을 오르자니 숨이 가빴다. 천년만년의 세월을 이겨낸 고인돌 앞에 이르자 마침 태양이 우리를 기다려 준 듯 떠오른다. 

 광장엔 어젯밤부터 벌어진 축제에 밤샘하고 장엄한 해돋이를 맞으려고 기다리는 군중으로 법석이었다. 태양이 거대한 고인돌의 역삼각형 안에 비추기 시작하자 어떤 젊은이는 서로 끌어안고 그들의 사랑을 확인하는 키스를 하고, 영국교회에서 온 청년들은 서로 얼싸안고 기도한다. 갑자기 와~ 하는 환호성과 합창과 춤이 이어진다. 드루이드교 사제들이 큰 태양신 모형 앞에서 춤추며 노래하는 거였다. 

 

 

원시종교인 드루이드교로부터 현대기독교에 이르기까지 골고루 모여든 현장이었다. 우리도 이 신비스럽고 두렵기조차 한 원형의 태곳적 고인돌 앞에 서서 이 만물을 지으신 하느님께 찬양의 기도를 올렸다. 

태양마저 하느님이 창조하셨음을 모르고 태양을 신으로 섬기는 사람들에게, 구약시대의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가 외친 말을 들려주고 싶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그 날개로 치료할 것이니(말라기4:2).” 그 영적치료를 원하는 우리 가족과 친구들을 위해 뜨거운 마음으로 기도했다.

 사람들에게 밟히기 전에 남편 민 장로가 나를 큰 바위 위에 올려주어 편하게 사진을 찍었다. 바위 위에 올라서자 하지의 태양은 서서히 하늘을 가르며 동짓날 이곳에 다시 머물 기약을 하며 떠나고 있다. 이 선사시대의 거석 주위에 두 겹의 원형 냇물과 제방이 있고, 태양이 머무는 지점이 표시되어 천문대였다는 설이 있고, 종교적인 순례자들이 치유를 위해 머문 곳이란 설도 있다. 

 최근에 알려진 것은 이곳에서 2.8km 떨어진 에이번 강가에서 발견한 블루헨지와의 관련이다. 블루헨지의 청석들은 남아 있지 않고 구멍만 자리하고 있다. 에이번 강이 죽은 자의 영역(스톤헨지와 블루헨지)과 더링턴웰스 강 상류의 산자의 영역을 연결시켰다는 것이다. 에이번 강은 이스라엘의 요단강처럼 정신적인 성지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이곳에 다녀온 다음날 아침 신문에 스톤헨지의 하짓날 해 뜨는 현장에 3만 명의 인파가 몰렸다는 기사가 났다. 하짓날마다 비가 와서 사람들이 접근을 못했는데 3년 만에 태양의 축제를 할 만큼 활짝 개였다는 것. 그 속에 우리도 끼였으니 얼마나 우연의 행운인가? 

 돌아서 나오는 우리 발치에 번뇌의 거미줄에 엉켜 그 번뇌가 사라지기를 태양에게 염원하는 듯한 분홍빛 티슬 엉겅퀴 꽃이 보였다. 햇볕을 한껏 쏘이며 “코딜리아의 사랑은 입술보다 무거웠네” 노래하는 것 같았다.

 최근에, “사상 최악의 폭염과 가뭄에 시달리고 있는 올해 2022년에, 스페인의 발데카나스 저수지에 기원 전 5000년 고대 인류가 만든 거석 유적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저수지가 가뭄으로 말라붙으면서 ‘스페인의 스톤헨지’로 불리는 수십개의 거석들이 모습을 드러냈다.”고 한다. 

 셰익스피어도 알지 못했던 스페인의 스톤헨지에 하짓날 떠오르는 새로운 태양이 ‘새 희망의 속삭임’을 들려주려나 찾아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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