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yoon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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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자연의 모자이크를 따라서-코더성의 맥베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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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 이어)

다분히 그리스와 로마의 비극을 닮았다는 평을 듣는 ‘맥베스’는 음산한 색조 위에 핏빛으로 포인트를 잡고, 천둥과 번개가 음악의 효과를 더하는 비극 중의 비극이다. 엄청난 죄를 저지른 공범자가 서로 책임을 전가하며 깊어진 죄의식을 구원해줄 구세주는 없었다. 
 코더성과 맥베스는 실제로 연관이 없다. 다만 셰익스피어가 맥베스를 코더성의 영주로 한 번 언급하면서, 그 성의 아름다움을 묘사했다. 셰익스피어가 글래미스의 호족을 코더의 호족 맥베스로 바꾼 데다가, “이 코더성은 유쾌한 곳에 자리 잡았어. 공기는 빠르게 달콤하게 흐르면서 우리의 오감을 흔들어 놓거든” 읊조렸다. 
 코더성의 안내책자에도 “우리 위대한 셰익스피어가 그 지옥 같은 연극을 안 썼더라면 좋았을걸”하면서도 그로 인해 우리처럼 코더성에 호기심을 가지고 찾아오는 관광객까지 뿌리치진 못하는 듯.
 맥베스가 홀렸던 세 마녀의 수작은 다른 예술가들마저 인용하게 만들었다. 새뮤얼 베켓은 그의 짧은 단막극 ‘Come and Go’에 맥베스의 세 마녀들이 읊조린 첫 구절 “우리 셋이 언제 다시 만나게 될까?”를 “우리 셋이 만난 게 언제였지?”로 재현하고 있다. 
 베르디의 오페라 ‘맥베스’는 삐아프의 절규의 노래를 불러주었고, 고야는 맥베스 왕비가 검정 드레스를 입고 덩컨왕과 뱅코의 죽음 위에서 맥베스를 등에 업고 춤추는 그림을 그렸다. 
 우리 부부는 인버네스에서 12마일 동편에 있는 코더성, 셰익스피어로 인해 ‘맥베스의 코더성’이 된 곳에 가는 차편이 마땅치 않아 택시를 탔다. 외국 손님에게 어디서나 친절한 스코트인답게 자기이름이 제임스 덩컨이라면서 우리에게 이것저것 묻다가, 
 

우리가 에든버러2010선교대회에 온 길임을 말해주자 놀라서 돌아본다. 그러면서 1910년에 그곳에 왔던 한국선교사 윤치호를 안다고 하지 않는가. 이번엔 우리가 놀라서 어떻게 아는가 반문했다. 그는 자신이 나가는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의 회보 ‘Life & Work’에서 이번 대회 기사를 보았다는 것. 오, 하느님 감사합니다. 
물론 택시를 공짜로 태워줄 스코트인은 아니지만, 우리가 코더성을 구경하는 동안 자기 교회에 가서 그 잡지를 가지고 왔다. 
 코더성엔 다행히도 두 개의 쇠사슬 지렛대를 내리면 닫히는 높은 선개문이 개선문처럼 열려 있었다. 어디나 그렇지만 실내의 유물 사진을 못 찍게하는 게 질색이다. 언제 또 오랴 몰래 플래시를 끄고 맥베스 왕과 왕비의 침실, 덩컨 왕을 죽이던 날 새벽을 알리는 장닭과 맥베스 왕 부부가 들고 있는 눈부신 횃불 등을 찍고 있는데 안내인이 다가오더니, 자기가 안내해 주겠다고 친절하게 말한다. 
실은 학교 때 맥베스를 공부한 터라 꼭 보고 싶어 왔다고 했더니, 들고 다니던 휴대폰으로 사무실에 전화하고, ‘여기 셰익스피어런이 한 분 왔는데, 맥베스 책 가지고 올라와요!’ 한다. 그 책을 들여다 볼 새 없이 그 고서극본의 겉장만이라도 사진을 찍자, 그는 세 마녀의 그림엽서 한 장을 내게 선물로 주는 것이었다. 그 감동이라니!
 그는 직원이 아니고 이 성을 안내해주는 자원봉사자 클렌 왓슨인데, 이메일 주소를 준다. 토론토에 돌아와서 고맙다는 메일을 보내자 자신이 선장으로 타고 다니는 배(오웬사운드의 치치먼 같은 배)를 탄 사진을 보내 주었다.
 

비극의 성 같지 않게 정원은 넓고 아름다웠다. 천 년이 넘게 이 성의 지하실에서 자라고 있는 생명의 나무가 이 정원의 햇볕을 쪼일 수는 없을까 생각하며 정원의 미로와 잇대어 있는 오솔길을 걸었다. 큰 청동조각 분수 가에 핀 백리향의 독한 내음이 풍겨오고, 스코틀랜드의 국화인 엉겅퀴 꽃들이 아직 파란 보리 잎새처럼 가시 돋친 화판을 열고 있다. 
네 개의 둥근 화단이 네모난 큰 단지에 들어있는 특이한 정원 한 가운데 서서 우리는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셰익스피어가 노래한 오감이 저리게 맑은 공기를. 
 ‘칼레도니아’를 쓴 역사학자의 말대로, 셰익스피어는 ‘스코틀랜드 연대기’에서 본 맥베스 이야기에 광채를 입혀, 가까이서 보면 아무 가치 없는 유리조각을 멀리서 다이아몬드처럼 빛나게 만든 게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절한 기사 덩컨이 우리를 다시 인버네스에 데려다 주는 동안 맥베스보다 더 피비린내 나는 스코틀랜드와 영국의 마지막 전투, 인버네스성의 플로라가 도피시켜 준 찰스 왕자의 마지막 싸움터, 재코바이트의 마지막 패전지인 컬로딘 벌판을 지나며 긴 설명을 했으나 내 귀엔 절반도 안 들어왔다. 
스코틀랜드의 푸른 앤드루 깃발과 적군이었던 영국군의 붉은 깃발 사이의 싸움터였던 들판에는 전쟁의 역사 대신 평화의 기운만이 서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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