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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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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에세이) 자연의 모자이크를 따라서-인버네스 성의 플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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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가 하일랜드의 스카치위스키 양조장을 구경하고, 영국여왕이 아름다운 도시로 칭찬한 인버네스 마을에 들른 것은 우리들의 친구인 데릭 치셤 박사 때문이었다.

 그의 가문의 한 친척이 전통의상인 킬트 맞춤과 기념품을 파는 옛날상점을 구경하고 오라는 거였다. 그와 결혼해서 토론토에 살고 있는 한국인 화가 김지명씨는 신혼여행을 겸해서 시댁 일가를 방문하려고 이곳에 왔단다.

 

 

동산의 바람이 어찌나 센지 보리밭 사이에 서서 사진을 찍다가 가을바람에 넘어졌다고 한다. 인버네스 마을은 하일랜드의 중심도시다. 마을의 랜드마크인 인버네스 성을 찾았는데 플로라의 동상이 우뚝 서 있었다.

 그녀의 동상 발치엔 그 당시 자코바이트를 도우며 산속을 함께 달렸던 콜리가 꼬리를 흔들며 서 있다. 플로라의 이야기는 월터 스콧 경의 역사책에서 더 유명해졌다.

 1745년에 자코바이트(망명한 제임스2세 지지자들을 일컫는 라틴어)를 이끌고 스코틀랜드를 탈환한 찰스 왕자, 버니는 컬로든 전투에 패하고 컴벌랜드 장군에게 쫓긴다. 그때 플로라 맥도널드는 어머니를 설득해서 토벌대장인 계부 알렉산더 맥도널드경이 찰스를 석 달 동안 숲 속에 숨겨주게 했고, 계부로부터 3명의 통행증과 스카이 섬에 이르는 도강증을 받아낸다.

여자 하인으로 변장한 찰스 왕자와 남복을 입은 플로라와 하녀, 이렇게 세 사람은 여섯 명의 선원이 이끄는 배로 여러 번의 위기를 거쳐 스카이 섬에 닿는다. 그 해안에서 3주 가량 머문 다음 찰스 왕자가 프랑스 함대에 올라 프랑스로 탈주하게 도와준다. 목에 상금이 걸려있는 찰스를 무사히 망명시킨 하일랜드 사람들의 정신과 함께 플로라의 이름도 역사에 새겨진다.

 

 

 찰스를 떠나보낸 스카이 섬 일대는 하일랜드에서도 영국왕실에 불만이 많은 클랜들이 살았던 황량한 지역이다. 찰스가 떠나면서 고마운 악수인사를 받은 휴치셤은 그 성은(?)을 입은 오른손과 팔에 흰 천을 감고 평생을 보냈다고, 에든버러에서 그를 만나 친구가 된 월터 스콧 경이 ‘스코트인 할아버지의 이야기’에 썼다. 플로라의 동상이 서 있는 네스강 하구의 인버네스 성은 원래 기원전 픽트인이 쌓은 성인데 1875년경에 벽돌집으로 개조하고 지금은 지방재판소가 돼있다.

 

 

성채 주위를 둘러보고 있는데 경찰호송차가 한 대 들어오더니 재판 받을 미결수들을 성 안에 들여보낸다. 그들을 호송한 젊은 경찰 팀 남녀가 우리를 보며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그리고는 들고 있던 수갑을 만져보라고 내밀기에 팔목 대신 손가락만 하나 끼고 사진을 찍었다. 명랑한 경찰관과 무슨 인연인지 다음날 아침에 우리와 같은 호텔에서 또 만나 반가웠다.

 스코틀랜드 특히 하일랜드를 사랑했던 월터 스콧이 남긴 일화 중에 남자가 입는 킬트(타탄(Tartan) 체크치마) 이야기가 있다. 자코바이트가 패배하면서 영국통합왕국은 스코틀랜드의 상징인 킬트와 백파이프 연주를 못하게 했다. 

 1822년에 잉글랜드의 조지아 왕이 스코틀랜드를 방문했을 때 월터 스콧경이 왕의 환영행사 진행을 맡았다. 그는 하일랜드 사람들의 문화를 소개하면서, 백파이프를 부는 악단이 당시에 길게 입던 킬트 모직치마를 짧은 타탄 체크치마로 개조해 입고 연주하게 했다. 

스코틀랜드의 상징인 그 전통의상에 왕이 관심을 보이면서 타탄이 다시 보급됐다. 지금도 영국과 스코틀랜드 전통행사에는 남자들이 술 달린 흰 양말에 짧은 체크무늬 타탄치마를 입고 백파이프를 불며 행진한다. 

우리가 다니는 킹스웨이 세인트 자일스장로교회에는 스코틀랜드에서 이민 온 할아버지 한 분이 계신데, 창립기념 주일이면 녹색 체크무늬의 타탄치마를 입고 나와 백파이프를 불며 향수에 젖는다.

 

 

‘전통 킬트메이커 치셤 상점’이란 간판이 있는 큰 상점 문을 밀고 들어서자, 33대째의 주인인 덩컨 치셤이 우리를 반갑게 맞는다. 

 남편은 셜록 홈즈 모자를 사고, 나는 치셤 가문의 그린 체크무늬 조끼를 꼭 사고 싶었으나 맞춤만 가능하기에 치셤 가문의 여름모자만 샀다. 넓은 가게 안은 한산했다. 그의 조부가 사냥해서 걸어 놓은 박제한 뿔 달린 큰 사슴 두상이 박제된 시간의 유물처럼 보인다.  

남녀가 모두 주머니처럼 허리에 차고 다니는 스포란이라는 양가죽 주머니는 에든버러의 세인트자일스 교회에서 우리에게 내밀던 스포란 헌금주머니를 생각나게 했다.

  덩컨 치셤은 바로 옆집에 아들이 스페인 식당을 한다고 안내해줘 맛있는 스페인 저녁 요리와 올리브를 실컷 대접받았다. 식당은 바로 인버네스 성채 아래 있어서 인버네스 강 건너에서 바라볼 때보다 플로라 동상이 더 잘 보였다. 

 플로라는 잠시나마 목숨보다 더 아꼈던 찰스 왕자, 버니 찰리가 혹여 다시 돌아올까 손을 이마에 대고 지금도 인버네스 강 너머를 멀리 살피며 서있다. 하일랜드의 여걸 자코바이터, 플로라의 용기와 고난의 극복을 찬양하는 듯 킬트를 입은 용사들이 그 옆에서 백파이프를 부는 모습이 저녁노을에 아름답게 비쳐 왔다. 

고딕 교회의 곡선과 인버네스 강 교각의 곡선, 기둥마다 걸려있는 꽃 기둥 밑에 정겨운 옛날 빨래터가 그림처럼 어울리는 인버네스 시. 꽃보다 더 아름다운 플로라로 인해 마을의 이름을 플로라 시라고 바꾸는 게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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