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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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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 자연의 모자이크를 따라서-에든버러 2010 세계선교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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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개의 언덕이 있는 스코틀랜드의 옛 수도 에든버러. 에든버러의 면류관인 양 시내 어디서나 지붕이 돋보이는 세인트 자일스 교회 안에 들어서면, 16세기 스코틀랜드 교회 개혁의 아버지인 존 녹스가 왼편에 서서 우리를 반갑게 맞아준다. 들고 있는 성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오직 말씀만을!”하면서.

 서울의 한국일보는 에든버러에서 열린 '2010 세계선교대회'를 보도했다. -- 6월3일 개회 이후 분과위원회들의 토의가 이어졌다. 6월6일 폐회예배 아침설교는 바로 이 세인트 자일스대성당에서 한국영락교회 이철신 목사가 맡았고 ‘평화와 복음의 전파자’가 주제였다. "개인적으로도 큰 영광이지만 한국 교회가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았다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둡니다. 우리가 이제는 선교의 대상에서 벗어나 선교를 하는 입장이 된 것이며 한국교회의 위상을 보여준 것이지요."는 설교 후 이목사님의 소감이었다. --

 

 

나는 이 목사님과는 다른 관점으로 그날 저녁 폐회잔치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에든버러1910선교대회재조명>을 쓴 에든버러 신학대학 브라이안 스탠리교수는 에든버러선교대회 100주년을 회고하는 아셈블리 홀(스코틀랜드장로교총회의장)에 100 년 전 조선대표로 ‘토착교회의 위치’(THE PLACE OF THE NATIVE CHURCH)를 연설한 윤치호의 종손녀(그 당시 참석대표들 가운데 유일한 후손)인 나를 초청했다. 

 

 

함께 초청받은 남편 민석홍 장로는 윤치호가 갑신정변 때 상해로 망명하여, 그곳 미국 남감리교 선교부의 중서학원에서 본넬 박사에게 세례를 받고 기독교인이 된 경위와 한일 합방이 된 조국에 돌아와 남 감리교회를 조선에 처음 도입하고 7 교회 창립을 도운 일, 그리고 그 후손 약 600명이 그리스도인이 된 가족선교를 얘기했다. 대회 간사를 맡은 로스 목사가 “윤치호가 백 년 후의 오늘 이 자리에 다시 왔다면 한국교회에 대해 뭐라고 말했을까?"하고 내게 묻기에 “그분은 한국교회가 은혜를 ‘받기만 하던 교회’에서 그리스도를 영원히 증거하며 ‘주는 교회’로 발전할 줄 알았다고 말했으리라”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이어서 아프리카 소녀들이 춤으로 보여 준 기도와 아이오나 공동체에 속한 인도청년들의 워십 댄스가 뜨겁게 이어졌다. 무엇보다도 말씀을 선포한 영국성공회의 죤 센타무 요크 대주교, 축도를 한 그리스 정교회 주교, 세계복음연맹(WEA)과 로잔세계복음화위원회(LCWE), 에큐메니칼 진영의 세계교회협의회(WCC), 오순절교회와 로마 가톨릭교회, 그리스 정교회까지 개신교와 한 자리에 모였다는 점에서 세계교회 일치의 모습을 보여주는 기독교 역사상 의미 있는 대회가 되었다. 

 1910년 세계선교 대회에는 1,250명의 많은 대표들이 모인 데 비해 이번 에든버러대회에는 250명이라는 적은 숫자가 모였다. 그러나, 도쿄2010 세계선교대회, 에든버러2010 세계선교대회, 보스턴2010 세계선교대회, 남아프리카2010 세계선교대회 등 올해 안에 네 번 나눠서 모이므로 전체 숫자는 비슷하다. 10월의 남아프리카2010대회에는 토론토 영락교회의 송민호 목사님이 참가할 계획이라고 한다.

 

 

백 년 전 이 아셈블리 홀에서 열변을 토한 젊은 윤치호에 대한 회상은 걷잡을 수 없는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우리나라 애국가를 작사한 윤치호. 곡이 없어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랭사인 곡에 맞춰 불러야 했는데, 그 애국의 국가를 이 자리에서 부르고 싶은 충동을 지긋이 눌러야 했다.

 1945년, 우리나라가 해방이 되던 날, 자신이 1907년에 지은 애국가 가사를 따님(문희)에게 붓글씨로 적어주며, 이젠 마음껏 애국가를 부르라고 해서 어린 우리들은 나눠주신 태극기를 흔들며 애국가를 목이 터지게 부르며 골목을 누비던 일이 어제일 같기만 하다. 

애국가 작사자가 윤치호 임에도 아직 작자미상으로 남아있는 게 현실이다. 어떤 이는 도산 안창호 선생이 지은 거라고 주장하지만, 최근에 독립기념관 연구원 이명화 박사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안창호 선생이 발간한 신한민보(1910년 9월 21일자)에 현재 부르는 애국가의 1절부터 4절까지 똑 같은 내용인 '국민가'가 윤치호 작으로 실린 것을 찾아 발표했다. 

 

 

그 이전 1907년에, 윤치호가 세운 개성 한영서원에서 발간한 작은 찬송집 '찬미가' 14장에 애국가가 들어 있다. 그 후 일본의 초대총독인 데라우찌를 암살하려 했다는 이른바 105인 사건에 윤치호를 주모자로 투옥하면서, 그를 ‘애국가를 작사한 윤치호’로 기소한 재판기록이 일본도쿄 외교문서보관소에 명시돼 있다. 

좌옹 윤치호 문화사업회는 국내에서 <애국가 작사자 윤치호 공인화>는 물론이고, ‘세계적인 중요성, 고유성, 대체불가능성’을 지닌 <윤치호일기 1882~1943> 61년사, 한국개화기 풍운아의 산 기록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에든버러2010대회 마지막 순서는, 이번 대회에 모인 250여 명 지도자들의 이름으로 만든 ‘공동의 사명(Common Call)’ 선언문 낭독이었다. 

교회는 세계의 복음화를 위해, “21세기 다양성의 세계 속에서 선교를 이끌어갈 새로운 세대의 지도자들을 육성하는 일에 부름 받았고, 교회는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이 세상에 처음 계획하신 사랑과 선, 정의를 드러내는 일 즉, 복음(구원과 죄 사함, 하느님 안에서의 풍요로운 삶, 가난한 자와 억압된 자의 해방)을 구현하고 전파하는 일에 부르심 받았음을” 비롯한 9가지 선언문을 각 대표들이 낭독함으로써 ‘세계교회 공동의 사명’을 다시금 다짐했다. 그리고 “주님의 나라가 임하소서, 오, 주님, 곧 오소서”를 노래하며 헤어졌다.

 뜨거운 열기 속에 백 주년 선교기념대회가 끝나고, 우리 부부는 계획한 대로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를 여행했다. 우리 여행 배낭 안엔 컴퓨터 노트북 외에도 친지들의 이런저런 부탁들이 들어있었다. 우리가 스코틀랜드의 세인트 자일스 교회에서 예배드린다고 하자, 스코틀랜드 후손이 많은 우리 교회(이름도 세인트 자일스 장로교회)에서 어디 어디 가보라고 주문이 많았다. 르노와르가 세인트 자일스 교회 안에 자기 조부 Dr. Jamison이 봉헌한 스테인글라스를 꼭 보라고 한 일. 

 

 

한국인 화가를 아내로 둔 치셤 박사는 자신의 고향인 인버네스에 있는 친척 클랜(Clan)이 타탄양복점을 하는데 꼭 가보라고 한다. 그곳에서 가까운 스코치 위스키 공장 중에 제일 유명한 곳의 주소와 약도까지 그려주면서. 

어떤 문학가는 내게 월터 스콧이 살던 애봇포드와 맥베드성에 안 들린다면 나는 글쟁이도 아니라고 엄포를 준다. 그리고 우리와 친하게 지내는 Lamb목사님은, 그의 조상인 Lamont가문이 더 세력이 막강했던 캠벨(Campbell) 가문에게 패하여 여러 곳으로 흩어지면서 그의 성을 Lamb로 바꾼 것이란다. 그래서 캠벨 상표 음식은 안 사먹는단다. 그 현장인 High Land를 꼭 가보라고 성화다.

 이래저래 우리 교회친구들의 소원을 들어주며 우리는 스톤 헨지까지 갔다. 간 날이 마침 하지날이어서 내가 원하던 사진을 얻긴 했지만, 3만 명이나 몰려온 사람들에 치일뻔한, 일생일대의 모험을 견뎌야 했던, 험한 여행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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