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yoon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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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에세이: 자연의 모자이크를 따라서-스위스 엥가딘계곡 ‘니체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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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하느님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창조해 놓은 스위스 땅에 오셨다. 한 목장에 앉아쉬면서 목장주인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느님은 역시 스위스가 세계에서 으뜸가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조화를 지니고 있다고 새삼 자신의 창조의 힘에 감탄하자 목장주인도 그 사실을 수긍했다. 그리고 이렇게 아름다운 강산을 만들어 준 것을 고마워했다.

 이제 다른 나라를 더 둘러보기 위해 다시 길을 떠나야 한다며 그에게 목이 마르니 우유 한 잔을 달라고 해서 마신 다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때 목장주인이 하느님을 불렀다. 왜 그러느냐고 묻자 스위스인이 대답했다. "우유값을 주고 가셔야죠."

 관광국임을 자랑하면서 관광객에 인색한 스위스인을 누군가 빗대 한 이야기지만 비취같이 맑고 아름다운 계곡과 비단을 풀어놓은 듯 한없이 이어지는 강물의 속삭임을 듣게 해준 하느님에게조차 우유 한 잔의 청구서를 내미는 그들의 합리성을 나무랄 수 없을 만큼 그들은 산천과 문화유적지를 잘 가꾸는 경제부국이며 민주국가이다.

 스위스의 티치노주에 속한 도시 루가노. 밤이면 세레나데의 여왕처럼 낭만적인 분위기로 시끄럽고 새벽엔 적막한 호수 위로 온갖 새들의 노래로 깨어나는 루가노 호반(Lugano Bay)에서 50차 국제PEN대회가 ‘경계선상의 과제’를 논의하고 무사히 끝났다. 

 다음날 이른 아침 주변을 더 구경하고 싶어하는 70여 명의 회원을 태운 두 대의 버스가 미려한 숲이 보이는 간드리아 마을을 지나 이탈리아 코모호숫가의 메나지오 별장과 지금은 미술관이 된 샬로테 별장을 구경하고 생모리츠 호반에서 하룻밤을 지냈다. 

스위스에서 이탈리아로 다시 스위스로 국경선을 넘을 때마다 검문이 있었지만 우리를 안내하는 피우자양의 미소와 몇 마디 말로 검문이 통과되곤 했다. 이번 대회의 주제가 ‘문학의 경계선 및 사회 정치 심리적인 경계선문제’를 다룬 탓인지 경계선에 이르면 소수민족인 헝가리대표와 나는 제일 먼저 신경을 곤두세웠다.

 버스는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가 ‘은색으로 빛나는 나라’로 찬양한 흰 눈 덮인 삼각형의 실버프라나를 지나 그리송 주의 좁고 가파른 길에 들어섰다. 옛날 대관령 고개처럼 좁은 산길인데도 행진곡을 휘파람으로 멋지게 불며 운전하는 명랑한 운전기사 덕에 별로 위태한 줄을 모르고 신나게 달렸다.

 우리는 좁은 길을 벗어나 말로야쿰의 아담한 식당에서 점심을 들었다. 1천 미터가 넘는 고지에 하얀 꽃가루 같은 눈이 오월의 하늘에 날리고 있었다. 푸른 하늘과 말로야의 흰 눈 덮인 산 밑에서 나는 소매 없는 빨간 티셔츠에 밀짚모자에 태극선을 들고 이탈리아 시인 친구 루이자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환상적인 겨울 속의 여름을 연출하려고 했는데 집에 돌아와 보니 필름을 잘못 써서 컬러사진이 아닌 흑백사진으로 나와 버렸다.

 꿈 속 같은 말로야쿰에서 이성의 나라인 니체의 집에 도착하자 햇살이 산골짜기를 빠져나갈 차비를 하고 있다. 흰 눈 덮인 계곡을 내다보는 이층집 창문 앞에 반듯하게 자리잡은 그의 책상 위엔 그가 쓰던 펜과 잉크병, 책들과 파이프 담뱃대가 우리 펜 회원들을 기다린 듯 놓여 있었고. 나는 그의 판화 초상화를 한 장 샀는데 방 한가운데 그 초상화와 똑같이 콧수염을 기른 니체의 석고 흉상도 아주 멋졌다. 

핀란드 대표가 그 조각작품을 부러운 듯 쳐다보기에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하자 손으로 자기 콧수염을 만들어 보이며 포즈를 취했다. 그는 유명한 소설가이며 목사인 핀란드PEN 라시 누미(Lassi Numi) 회장인데 부부동반으로 왔다. 여행 중의 대표들이 부부동반이 많은 것을 보고 놀랍고 부러웠다. 

 나는 니체가 쓰던 낡은 책상을 다시 한 번 만져 보았다. 엥가딘 계곡 실스마리아의 작은 집 바로 이 책상에서 그는 그의 걸작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쓴 것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마치 약속의 땅에 와있는 것 같다. 처음으로 구원을 느낀다”고, 그의 누이에게 편지를 쓴 자리, 그가 신의 어릿광대인 양 '초인론’을 쓰며 ‘신은 죽었다’고 한 광기어린 울부짖음이 들려오는 듯했다.

 그러나 철학자일 뿐만 아니라 시인이며 음악가였던 니체가 '광기의 파도 속에서도' 아름다운 곤돌라의 뱃노래를 그의 에필로그로 불렀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를 다시 한 번 평가해 보아야하지 않을까.

 마침 누군가 버스 안에서 허밍으로 부르는 산타루치아 노랫가락에다 니체의 집에서 얻은 그의 뱃노래를 실어서 불러보았다. 그동안 버스는 우리를 생모리츠 호텔에 내려주었다. 

"어느 날 갈색의 밤 나는 다리 곁에 서있었네. 아득히 먼 곳에서 들려오는 노래 황금빛 물방울 넘실거리는 바다 위로 솟아올랐네. 곤돌라 등잔불 음악- 취한 채 어슴푸레 황혼 속으로 헤엄쳐 사라져 갔네. 나의 영혼 하나의 현악연주 은은히 감동하여 은밀히 곤돌라의 뱃노래를 불렀네. 현란한 행복에 겨운 내 노래 그 누가 들었으리. 산타루치아(Santa Luc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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