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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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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에세이: 자연의 모자이크를 따라서(8)-센트럴파크의 셰익스피어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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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맨해튼 복판에 있는 공원. 세계에서 가장 큰 공원의 하나인 센트럴파크는 식물원, 동물원, 미술관, 그리고 울창한 숲과 호수를 안고 숨가쁜 뉴요커들에게 오아시스가 돼 준다.

 


 

여러 해 만에 다시 들어선 이 공원 안에 셰익스피어 꽃동산과 재클린 호수가 있음을 처음 알았다. 이 공원조성을 위해 많은 봉사를 한 1914년 당시의 뉴욕 시장 존 미첼의 기념동판을 지나 왼편 층계로 오르자 재클린 호수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케네디 대통령 부인이었던 재클린은 오나시스와 재혼하고, 오나시스마저 세상을 떠나자 뉴욕 번화가인 애비뉴 5번가에 있는 아파트에 살았다.  

2킬로미터가 넘는 이 호숫가 산책길을 매일 산보했다고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 호수란 이름이 붙었단다. 이 공원에 기부금을 낸 흔적도 없는데도 그렇게 이름 붙인 뉴욕 시민들을 이해하기 힘들다.

 저수지의 용도로 더 많이 쓰는 이 호수 북편에 ‘여인의 호수’라고 부르던 자그마한 호수가 있는데, 겨울엔 스케이트 타는 사람들로 법석이고, 여름엔 보트장이 되어 노를 저으며 지나가는 젊은 남녀들이 보인다. ‘기쁘고 즐겁게, 기쁘고 즐겁게 노를 저어라!’는 옛 노랫가락이 울려오는 듯 했다. 호수를 끼고 도는 산책로엔 요가를 열심히 하는 중국여인, 조깅과 자전거 타는 이들, 관광객을 태운 옛날 마차가 떠들썩하게 지나간다.

 

 숲 한가운데 우뚝 솟아있는 것은 고대 이집트 왕조 때 태양신의 상징으로 세웠던 오벨리스크. 네모난 화강암 기둥이 21미터 높이로 올라간 첨탑의 받침대 네 귀퉁이엔 구리로 조각한 바닷게가 튼튼하게 받쳐주고 있다. 이집트의 투트모세 3세가 만든 한 쌍으로 ‘클레오파트라의 바늘’이란 멋진 이름의 이 쌍둥이 탑이 런던과 뉴욕으로 이산가족이 되었고, 정작 이집트엔 6개만 남아있다고 한다.  

나폴레옹은 파리 콩코드 광장에, 영국은 런던 박물관에 신비스런 암벽화가 그려있는 이 조각작품을 모셔갔다. 미국도 질세라 1879년에 이집트에서 이 공원까지 양국 친선의 명분으로 끌어왔다. 그 어마어마한 운반비용은 미국철도회사 사장인 밴더빌트가 맡았다.

 


 

어디선가 나리꽃 향기가 코에 스민다. 셰익스피어 꽃동산이 가까워진 것 같다. 1916년에 녹지조성을 한 셰익스피어 정원 입구엔 셰익스피어의 고향인 영국 스트랫포드 에이번 강에서 이식해 온 하얀 뽕나무가 서 있다. 돌무지 산책길 가에 놓인 금빛 동판엔 셰익스피어의 ‘한여름밤의 꿈’ 2막에 나오는 오베론의 대사가 적혀있다.

 

‘들판에 핀 백리향 내음 풍기는 꽃동산을 나는 아네/ 그곳엔 앵초와 보랏빛 제비꽃들 자라는 곳/ 달콤한 사향장미와 들장미꽃 어우러져/ 인동잎 덩굴져 올라간 닫집이 있는 곳을 나는 안다네.’

 

 통나무 층계를 올라 다리를 건너기까지, 온통 백리향꽃과 제비꽃들, 붉은 오디 열매들이 셰익스피어의 외갓집이며 그의 연극에 나오는‘아덴의 숲’에서 이곳에 옮겨와 다시 등장한 듯 정다운 옛 이야기 나누며 향기를 뿜고 있었다. 

 


 

셰익스피어가 자신의 연극이 온갖 꽃으로 만발한 꽃밭을 내려다보며 다음번 연극을 꿈꾸는 듯한 동상을 지나자 데라코테 극장이 옛 모습 그대로 나타났다. 이 극장에선 해마다 유월과 칠월 여름철이면 셰익스피어 연극을 무료로 공연하는데 관객이 공원 문 앞까지 줄을 지어 기다린다고 한다.

 극장 왼편엔 셰익스피어의 희극 ‘템페스트’에 나오는 퍼디난도와 인간세계를 잘 몰라 어릿어릿한 미란다의 동상이 서 있고, 우편엔 ‘로미오와 줄리엣’ 동상이 시원한 백양나무 그늘아래 아주 화끈하게 껴안고 서 있다. 토론토에 사는 우리 친구의 아들이 캐네디언 약혼녀와 비행기를 타고 와 이곳 동상 앞에서 다이아몬드 반지를 바치며 구혼했단 이야기가 생각나 우리 부부는 한참이나 웃었다.

‘아덴의 숲’ 향기에 취해 길을 잃을 뻔 하다가 남쪽으로 내려와 공원 남문 출구 가까이에서 로버트 번즈의 동상과 월터 스콧의 동상이 마주 보고 서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들은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에서 이곳까지 관광을 온 것일까? 하긴 유럽밖에 모르는 스코틀랜드 국민시인이며 낭만파 시인들이라 이 신대륙에 관심을 가질 만하다.

 


 

스콧의 동상은 에든버러 프린스공원 기념탑 속에 앉아 있던 모습과 똑같이 시공을 초월한 듯 앉아있는데, 흰 대리석이 아닌 밤빛 동상이어서 좀 피곤해 보인다. 그의 아봇츠포드 집 거실에 걸린 그림 속에서 15세의 어린 소년이던 스콧이 자기보다 열 살이나 더 많은 번즈와 토론을 벌이더니, 만년에 이 개화한 미국 뉴욕 맨해튼 섬 한가운데에 있는 센트럴공원까지 와서도 이야기가 안 끝난 듯 마주보며 열을 올리고 있다.

 월터 스콧 경: 번즈형, 내가 지은 시 ‘호반의 여인’ 세 번째 연에다 슈베르트가 곡조를 붙인 ‘아베마리아’라는 노래 들어보았어요? 소녀 엘렌이 호반의 바위에서 성모상에 이마를 대고 아버지의 죄를 용서해주시라는 기원이었죠. 한 번 불러볼게 들어보세요. 알면 같이 불러요.

 

아베 마리아, 이 어린 소녀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당신은 이 험한 세상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고통 가운데서 우리를 구해 주십니다/ 쫓겨나고 버림받고 욕 받았을지라도/ 당신의 보살핌으로 우리는 편히 잠듭니다/ 동정녀여, 이 어린 소녀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성모여, 이 어린 아이의 간구를 들어주소서. 아베 마리아. 

 

 로버트 번즈: 알고 말고. 성모님을 사랑하는 이라면 누구나 부르고 있지. 

자네는 우리 스코틀랜드 민요에 내가 가사를 붙인 ‘올드 랭사인’을 해마다 그믐날 밤에 부르던 생각이 나겠지? 에든버러 선술집에서 스카치위스키에 하기스를 먹으면서 말이야. 

 

 어찌 옛 친구를 잊으리요/ …우리의 우정은 지금도 변함없다네/ 내 그리운 지난날이여/ 어릴 때 우리 둘은 언덕에서 뛰놀며 예쁜 데이지 꽃을 따 모았지/ 하지만 우리는 지친 발로 여기저기 헤매 다녔어/ 내 믿음직한 친구여, 자네 손을 주게나/ 우리 우정의 잔을 함께 드세. 그리운 그 시절을 위하여….

 


 

그런데, 이보게, 스콧. 이 노래곡조를 조선의 윤치호라는 양반이 1907년에 자신이 지은 대한제국 애국가에 붙여서 그 나라의 국가가 되었다지 뭔가. 1936년에 가서야 안익태가 윤치호의 국민가에 곡조를 붙여서 지금 부르는 대한민국 애국가가 되었고….

 아이반 호, 하트 오브 미들로디안, 스코틀랜드 역사이야기를 쓴 월터 스코트 경과 이태 전에 가장 위대한 스코틀랜드인으로 뽑힌 사랑의 시인 로버트 번즈의 대화는 하루이틀 사이에 끝날 이야기가 아니다. 그들끼리 실컷 회포를 풀게 놔두고 우리는 남문 출구 쪽으로 부지런히 발을 옮겼다.

 남문 가까이 있는 터틀 호수, 이 호수의 자라들이 뉴욕 주민들에게 생명의 식수를 제공하는 모양이다. 숲 사이로 뻐꾹새며 딱새며 온갖 철새들의 노랫소리가 들린다. 여러 가지 악기를 연주하듯 울려오는 소리를 들으며 센트럴파크 문을 나섰다.  

구겐하임 미술관 건너편의 86번가에서 시작하여 공원 남쪽 출구인 W59번가로 빠져나오면서 이틀을 두고 센트럴파크 구경을 했는데도, ‘미운 오리새끼’를 끼고 앉아있는 앤더슨의 동상을 못 본 아쉬움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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