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yoon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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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 자연의 모자이크를 따라서(6)-뉴욕의 구겐하임미술관과 그라운드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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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뜨겁고 긴 올해 여름, 두 번째 찾아간 뉴욕 시가지 한복판에 평화롭게 자리한 구겐하임 미술관과 맨해튼 남단의 월스트리트는 아주 대조적인 풍경을 보여주었다.

 

 

지금 전세계로 확산된 “점령하자!”는 데모의 진원지인 트리니티 교회 마당의 젊은이들, 바로 그 길 건너편에 10년 전 9.11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자리에 다시 세우고 있는 ‘원 월드 트레이드 센터(1 WTC)’, 그날의 테러행위를 온 세계인들이 잊지 않게 하자는 ‘Never Forget!’ 구조물과 희생된 사람들을 기리는 동판이 조각된 소방서 외벽, 센트럴 파크의 셰익스피어 꽃동산과 재클린 오나시스 호수도 다시 찍었다.

 하얀 둥근 섬 같은 솔로몬 구겐하임 뉴욕 미술관 안에 들어서자 하늘이 보이는 멋진 돔 천장과 달팽이처럼 벽을 따라 전시하는 회랑엔 뜻밖에 한국 조각가 이우환씨의 75세 생일기념 회고전인 ‘무한을 향한 제시: Marking Infinity’(6월24일~9월28일)가 열리고 있었다.

 

 

“그림을 안 그렸으면 시인이 되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이우환(Lee Ufan)은 1936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서울대학 미대를 다니다가 일본 니혼대학 철학과에서 니체와 하이데거를 공부했다. 1970년 전후로 일본에서 일어난 모노하(物派)에 대한 이론을 확립하기에 이른 그는 설치미술가, 저술가, 철학자로 유럽과 일본을 오가며 이름이 알려졌다. 

 프랭크 리오이드 라이트의 걸작 예술품으로 1959년에 이 자리에 다시 탄생한 솔로몬 구겐하임 미술관의 이우환 전시회는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이 열린 이래 개인전으로 최대 규모이며 백남준의 미술전 이래 두 번째 한국조각가의 전시회여서 한국뿐 아니라 전세계 미술계의 관심을 모았다. 그가 대표적인 작품으로 내놓은 ‘철판과 바윗돌’은 물질에서 영원한 보물을 찾아내는 작가의 얼굴 같았다. 둥근 로비에 ‘Relatum 관계있는 이야기’란 제목을 달고 앉아있는 바위 세 덩어리가 심상치 않게 눈에 들어왔다. 달팽이처럼 둥글게 설치한 회랑을 언덕 오르듯 오르는 층마다 그의 작품이 걸려 있다. 작가의 말대로 보통 하얀 사각형 전시실이 아니어서 애를 먹었다지만, 관객들이 ‘먼 여행을 떠나는 느낌으로’ 언덕을 오르며 ‘관계’가 있어 보이는 바윗돌 한 개 혹은 두개를 만나게 해주었다. 우연히도 산보길을 마련해준 구겐하임의 비탈길을 한 시간 남짓 산보하면서 일상을 떠나 우주여행을 한다고 생각하란다. 그리고 의미를 생각하지 말고 몸으로 느끼라고!

 

 

7층 꼭대기에 올라 만나게 되는 작품이 ‘대화-공간’이다. 그 앞엔 베일처럼 하늘한 천이 걸려 있다. 보일듯 말듯 베일까지 친 그 속에서 ‘보일듯 보이지 않는 따옥 따옥 따옥새의 노래’가 그의 고향 산골에서 울려오는 듯했다.

 나도 우주를 생각하며 걸었을까? 아마 내 사진작품이 잘 나오기만 생각하며 걸었으리라. 내 잇속만 차리지 말고 드넓은 우주를 더 생각하라는 반성의 기회인양 내 사진 필름칩이 모두 날아갔다가 하느님의 자비로 컴퓨터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이우환의 그림처럼 재생한 건 아닐까.

 기념품 하나라도 사려면 완강히 말리는 내 옆의 님 때문에 겨우 내가 좋아하는 추상화가 칸단스키의 동그라미 그림들이 우주처럼 그려있는 손바닥만한 달력 하나만 사들고 나왔다. 일본 나오시마 이우환 미술관을 설계한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타다오가 내년에 한국의 고향에 이우환 미술관을 짓는다니 그때 가서 기념품을 많이 사야지. 

 

우리는 40불 주고 산 일주일 치 시티패스로 지하철을 타고 월가(86스트리트)에 내렸다. 2001년 9.11테러 현장을 보기 위해서다. 2001년 여름에 우리 부부는 딸네 식구 초청으로 토론토에 이주했다. 천당 반만큼 온 것 같다고 느긋해 할 무렵, 뉴욕에서 제일 높은 무역센터 쌍동이 빌딩이 테러리스트들의 비행기 자폭테러로 어이없이 푹석 주저앉아버렸다는 뉴스와 빌딩이 붉은 쇳덩이로 변하며 가라앉는 모습이 9월11일 아침 TV 화면에 비쳤다.  

소름이 끼쳤다. 세상 높은 줄 모르고 지은 바벨탑이 무너지는 모습이 저랬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미국은 이제 끝장난 거란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미국은 망하지 않았다. 십 년의 세월이 지난 올해 그 현장을 보고 더 느꼈다. 

그 피폭현장인 그라운드 제로엔 네모난 연못 두 개, 사우스 메모리얼 풀(South Memorial Pool)과 노스 메모리얼 풀(North Memorial Pool)이 들어섰고, 연못 둘레의 동판에 그날의 희생자 2983명의 이름을 새기고, 한없는 눈물인 양 쉼없이 흐르는 눈물의 폭포가 'Never forget!' 소리내며 연못 속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방문자센터에 들어가 그 날의 참혹한 현황중계와 녹아내려 조각작품 같이 된 쇳덩이들을 보면서 이게 어찌 남의 일일까 싶었다. 두 개의 연못 주위로 미국민이 싫어하는 번호 6번을 제외한 1번부터 7번까지의 원 월드 트레이드센터, 다른 말로 프리덤 타워(Freedom Tower)가 그 자리에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케네디공항, 한국 여의도 63빌딩, 토론토 공항 등을 설계한 SOM(스키드모어, 오윙 & 메릴린) 회사의 건축가 대빗 차일드가 설계한 월드 트레이드 센터의 7번은 2006년에 이미 완공됐다. 그 옆엔 1번 WTC 공사가 2018년에 문을 열기 위해 망치소리가 드높았다. 이 빌딩에 창문 없는 네모진 받침대가 56미터나 올라갔을 때 시민들의 반발을 샀다고 한다. 내 눈에도 탱크의 공격에 끄떡없게 지은 검붉은 받침대가 요새 같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위로 미국독립 연호를 상징하는 1,776피트의 높이로 정삼각형과 역삼각형을 잇대어 특수 유리벽으로 쌓아 올린 1번 WTC 건물은 맨 꼭대기에서 8각형 돔을 만들어낸다. 하늘을 상징하는 원형의 돔과 영원을 상징하는 팔각형이 겹친 첨탑은 미국의 회생을 상징하는 듯 푸른 하늘 아래 진줏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우리는 그 모습이 석양에 짙푸른 색이 되도록 길 건너편에 있는 오하라 식당에 앉아 흑맥주를 마시며 내다보았다.

 전쟁의 비극을 겪을 때 참회기도가 따르듯이, 9.11테러사건은, 신앙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모든 미국민을 영적으로 깨우쳐 주는 사건이기도 했다. 9.11테러 10주년을 맞아 희생자들을 추모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기념사가 그러했고, 테러 현장에서 주운 쇠붙이 십자가를 추모기념관에 놓지 못하게 한 소송 피고인의 한 사람이 된 뉴욕 시장이 “이런 종교적 상징물은 사람들에게 힘을 준다. 박물관은 그것이 역사물이면 보여주어야 하고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게 해야 한다”고 말한 것은 참 잘한 일이었다.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 고요히 앉아 있는 이우환의 바위 조각작품이, 전쟁터 같이 살벌한 월가의 비극을 넘어서는 평화의 염원임을 기억하면서, 이 도시에 주는듯한 시편기자의 시 한 구절을 떠올렸다. 

“내 영혼아, 야훼를 찬미하여라. 베푸신 모든 은덕 잊지 말아라.” -시편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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